청각장애인의 또 다른 이름 ‘재난약자’

#한은숙(48, 지진 경험)
“그때(포항지진) 이후로 아파트 창문 곁에 서서 밖을 자주 확인해요.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고 있는지, 또 지진이 난 건 아닐까... 주위에도 그날 이후로 자다가 죽을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농인들이 많아요. 무섭고 불안한 거죠. 마치 바다에 빠져서 혼자 허우적대는 느낌입니다. 물속에 있으면 말도 못 하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잖아요."

#정연화(37, 지진 경험)
“TV에서는 지진 났다고 방송하는데, 농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어요. 자막은 보도를 위한 자막일 뿐이라 급하게 지나가버리고 수화통역도 있다가 없다가 방송사 마음대로인지. 너무 화가 나서 방송국에 전화도 했지만, 변화는 없더라고요."

#전혜영(30, 화재·산사태 경험)
“불이 났을 때 새벽 2시 반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고 없는데, 저만 뒤늦게 나왔더라고요. ‘나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 깨워준 친구가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재난사고를 경험한 청각장애인들은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극도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장애인을 위한 효과적인 재난대응시스템의 부재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좌절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을 겪은 한은숙씨는 “실제로 재난을 당해서 119나 112에 문자를 보내면 99%는 ‘거기 어디냐’고만 문자가 온다. 하지만 농인들은 대부분 글을 몰라 답을 보낼 수가 없다”며 "재난상황을 빠르게 인지하고 구조를 요청해도 이런 식”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를 경험한 전혜영씨는 “농인은 겉만 보면 장애를 알 수 없어서 재난이 발생하면 대응이 더 힘들다”면서 “재난 대피 훈련을 받아도 이론 중심이라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난 발생 시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의 경우 초기 인지부터 대응 방법, 구조 과정, 예방교육 등에서 ‘재난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과 비교할 때 재난 발생 시 청각장애인은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청각장애인의 경우 재난을 초기에 신속히 인지하는 데 불편함이 있고 구조과정에서 정보전달이 용이하지 못하다.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2017 장애인백서’에 따르면, 주 활동 공간에 재난 발생을 알려주는 장치(시각경보기, 신호알림기 등)가 설치돼 있다고 답한 경우는 18.7%, 그렇지 않은 경우는 66.3%에 달했다. 또한 구조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제약사항을 스스로 알릴 수 있다고 평가한 청각장애인은 23.9%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의 필요를 반영하지 않은 재난관리 정책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승완 국립한국복지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장애인 욕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재난대응 관련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받은 청각장애인은 18.9%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재난대응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답한 청각장애인은 75.5%에 달했다.

재난처럼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더욱 실효성 있는 재난대응시스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수연 한국농아인협회 기획부장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재난까지 고려하는 여유가 없는 것 같다”며 “실제로 농아인들이 다양한 재난상황을 미리 학습하고 이런 재난에는 이렇게 대피할 수 있는 정확한 매뉴얼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미국의 경우 예방 차원에서 초기 인지부터 발생 당시, 사후 관리까지 장애인법(ADA)과 매뉴얼로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주로 복지시설이나 주 담당자인 소방공무원 임용 전부터 장애인 재난 대응 과정을 숙지토록 하고 있다”며 국내 장애인 재난관리 정책의 변화를 바랐다.

(취재·영상편집 / 조민웅 기자)

ⓒ조민웅 | 2018.02.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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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실하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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