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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전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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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기자말]
요즘 연달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여행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다. '집콕'을 권장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여행이 웬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방역수칙을 지키는 선 안에서 이루어지는 적절한 소비, 거리두기를 만족하면서 소박하게 즐기는 가족과의 여행 등이야말로 문화적으로 척박한 이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하다.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면 된다.

외할머니는 구순을 바라보고 계신다. 5년 사이에 부쩍 걷는 것이 힘들어지셨다. 암 수술도 하셨고 기력도 쇠하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른 봄부터 닥쳐온 코로나19에 집 앞마당 밖으로 거의 나서지 못하셨다. 하루의 낙이었던 기름집 아낙들과의 수다 역시 반년이 넘도록 재개되지 못했다.
 
칡꽃과 할머니 (645N/Portra400) 보령호 옆으로 칡꽃이 만발해 있었고 할머니는 말 없이 바닥의 꽃을 주워 모으셨다. ⓒ 안사을
 
9월 13일,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느껴지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짤막한 여행을 계획했다. 올해 들어 외할머니와의 세 번째 동행이다. 언제나처럼 '드라이브 스루 여행'이 가능하도록 면밀히 동선을 살폈다. 위성지도와 로드맵 등을 활용하여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착오가 없도록 했다.

구불구불 차로 올라간 금지암

부여와 보령의 경계선에 있는 금지암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절이다. 자세한 연혁이나 기록은 나와 있지 않지만 18세기 조선의 문건에 명칭이 등장한다. 월명산 꼭대기 능선이 눈앞에 보일 만큼 높은 곳에 있다.

현재도 이곳에는 신도들이 제법 있다. 붐비지는 않지만 찾을 때마다 꼭 한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는 된다. 40번 지방도에서 '금지사'라는 이정표를 보고 작은 산길로 들어선 뒤 5km를 올라가야 한다.
 
금지암 요사 앞에서 내려다 본 풍경 (645N/Ektar100) 건물들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오백나한전'이 보인다. ⓒ 안사을
산신각에서 본 극락전 (645N/Ektar100) 당시 극락전은 공사중이었다. 멀리 동쪽 산 능선들이 보인다. ⓒ 안사을
 
개가 요란하게 짖었다. 요사 안에서 개를 조용히 시키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의 개는 어지간히 시끄러워서 새벽 일찍이나 저녁 늦게는 이곳을 찾으면 안 될 것 같다. 경내에 이르는 길이 길지는 않았지만 외할머니의 걸음으로는 짧지도 않아, 아버지와 함께 얼른 사진만 담았다.

외할머니께서는 혹시나 바로 앞까지 차로 갈 수 있을까 하여 시주용 지폐도 준비해두셨는데 직접 가지는 못하셨다. 어차피 극락전이 단청 공사를 하고 있어서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고 전해드렸다. 어머니와 함께 그늘에 앉아 도란거리는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 못지않게 평화로웠다.
  
풍경과 뒷모습 (645N/Ektar100) 높은 위치 덕에 어느 곳을 보아도 풍경이 수려했다. ⓒ 안사을
금지암 주차장 (645N/Ektar100) 아들과 남편, 사위와 손자를 기다리며 그늘 밑에서 대화를 나누는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 ⓒ 안사을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사건은 금지암을 내려가면서 있었다.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튼실한 알밤들이 마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알밤 좀 주워가자는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일부러 조성한 밤밭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 있는지 찾아서, 알밤을 좀 사가자."
"여기서 그냥 살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차 좀 세워봐."


일요일이었는데도 다행히 밤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내려가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실례합니다. 밤 살 수 있어요?"
"못 살 게 없지요. 얼마치 드릴까?"
"한 2만 원어치 될까요?"


아주머니는 햇밤이라 시세가 1kg에 5천 원이라고 했다. 혹시 밤을 옮겨 담는 손길에 풍성함이 더해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주에서 왔어요. 외할머니가 곧 구순이신데, 걸음이 좀 힘드셔서 차로 갈 수 있는 금지암에 왔어요. 기도도 하실 겸 구경도 하실 겸 해서요."
"아이고. 효자시네. 저도 금지암에서 기도해요. 넉넉하게 드릴 테니까 맛있게 먹어요."


2만 원어치면 4kg이 분명한데 자루에 담긴 알밤은 어림잡아도 8kg이 넘어가는 듯했다. 낑낑대며 차까지 올라가니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표정이 함박웃음으로 똑 닮았다. 양도 양이지만 알이 참 실한 밤이었다.
 
뜻하지 않은 알밤 (645N/Ektar100) ⓒ 안사을
 
한낮의 풍경만 담기에는 너무 아쉬운 곳이라 1주일 뒤 주말에 한 번 더 찾았다. 별 사진을 찍고 차박을 했다. 아래 사진은 휴대용 적도의와 필름카메라를 이용한 별사진이다. 오리온자리가 떠오르기 전이라 화려한 별자리는 없지만 무수한 별들의 공간이 끝이 없다. 아침에는 황홀한 운해가 펼쳐졌다. 
 
북동쪽 하늘 (HorsemanSW612/Portra400) 20분 노출 ⓒ 안사을
능선, 운해, 나무 (67ii/Portra400) 사광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후드를 빼고 플레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 안사을
 
은근히 괜찮은 드라이브코스, 보령호

금지암 주차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마쳤다. 아침에 미리 주문해놓은 김밥과 돈가스를 포장해왔고 아무도 없는 산정 레스토랑에서 가장 행복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뒤처리를 하면서, 올 때부터 있던 쓰레기 하나를 얼른 봉지에 넣었다.

금지암에서 내려오면 보령호가 지척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은근 괜찮은 드라이브코스가 된다. '은근'이라고 한 것은 호수가 작고 코스가 짧기 때문이고 '괜찮다'고 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치가 간결하면서도 운치 있기 때문이다.

대청호나 용담호처럼 호반길이 수십 킬로 미터 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다. 대신 산 깊은 곳에 위치하지 않아서, 동네 옆으로 무심히 마실 나갈 수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다. 어떤 곳은 흰색 실선 옆으로 공간이 있어서 합법적으로 주정차를 할 수도 있다. 두 군데에 쉼터와 카페 등이 있으나 사람들이 꽤 많아 보여서 들르지는 않았다.
 
호수와 하늘 (645N/Ektar100) 공기의 질이 최고인 날이었다. 햇빛이 강해서 그늘진 곳은 까맣게 실루엣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을 정도였다. ⓒ 안사을
향기에 끌려 (645N/Ektar100) 꽃내음을 코 끝으로 따라가보니 칡꽃이 한창이었다. ⓒ 안사을
 
차로 호수 전체를 도는 데에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보령호는 웅천천과 성주천이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고 주산면 동오리에 있는 댐에서 끝난다. 호숫가에는 애향박물관이 있어서 실향민들의 아픔을 기리고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고 전체 길이가 적당하여 자전거 코스로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차량 통행이 적은 편이지만 지방도의 넓이에 비해 커다란 차들이 가끔 다니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으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대규모의 라이딩은 차량 통행에 심각한 방해가 될 수 있다.
 
반대편에서 (645N/Ektar) 위 사진들의 반대편에서 담은 사진 ⓒ 안사을
 
가을이 막 물들어가기 시작할 때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여름만 보일 정도로 풋가을이었다. 보름이 넘게 지났으니 지금은 좀 더 울긋불긋한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 
 
빼먹으면 섭섭한 바다 풍경

보령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고르라면 단연코 대천해수욕장일 것이다. 메인 코스로 두지 않고 디저트 정도로 넣은 이유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두기가 가능한 곳에서는 잠시 내려서 바닷바람을 쐴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이날의 가시거리는 몇 해 동안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우 길었다. 성주터널을 나오자마자 보령시내와 바다가 선명하게 보였다. 못 보던 곳에 다리가 있어서 눈을 의심했다. 필름을 스캔하며 지도와 함께 확인해보니 안면도와 원산도를 연결하는 교량이었다. 
 
보령시와 바다 (645N/Ektar100) ⓒ 안사을
 
역시 대천은 대천이었다. 식당가 앞에는 차를 댈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여름이 지난 뒤라 모든 식당은 통유리를 활짝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고 테이블 간의 거리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차로 천천히 지나쳐 분수광장으로 가니 그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스크를 다시 튼튼하게 눌러쓰고 잠시 차에서 내렸다. 여름 바다보다는 가을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의 색과 공기의 온도가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치되는 것 같아서이다. 공기가 좋아서 과감히 해를 마주 보았다. 역광이지만 먼지나 수분으로 인한 빛의 산란이 없어서 깔끔하게 담겼다.
 
대천해수욕장 (645N/Ektar100) 조리개를 22까지 조이고 해를 날카롭게 표현했다. ⓒ 안사을
응시 (645N/Portra160) ⓒ 안사을
 
대천에서 장항까지 해안을 타고 가다 보면 무창포와 춘장대, 홍원항, 비인해변 등을 지나게 된다. 서천쪽은 모래펄이 넓지만 그곳에서 어민들이 조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조개 등을 캐는 행위를 제한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펄을 뒤집는 모습들이 정겹게 지나갔다.

대기가 청명하고 구름이 적당하여 석양빛이 기대되었지만 저녁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대신 홍원항을 들렀다. 다행히 일요일 오후여서 사람들이 적었다. 갈치와 전어, 꽃게를 사서 전주로 내려왔다. 마음속 경치뿐 아니라 알밤과 해산물이 남은 알찬 여행이었다.
 
춘장대해변 (645N/Portra400) 언젠가 이곳에서 캔 조개로 1년 동안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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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