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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죽령을 막 넘어 희방사역으로 도착하는 중앙선 기차. 12월 중순부터는 이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 박장식
 
남한강 상류를 넘어 죽령고개를 한 바퀴 둘러가고, 다시 낙동강의 윗마루를 거쳐 안동을 지나가는 낭만 철길이 커다란 터널로 변모한다. 철길을 따라 사계절을 바라보는 낭만이 사라지는 아쉬움 대신, 지역에는 꿈과 같은 KTX가 들어온다. 오는 12월 13일을 시작으로 선로 이설을 거치는 단양과 안동 사이 철길 이야기이다.

[관련기사 : 속도를 얻는 대신, 정겨움을 잃게 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가는 죽령의 루프터널이 사라지고, 충주댐으로 인해 단양 주민들의 애환이 서렸던 단성역이, 소백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첫 번째 경유지와도 같았던 희방사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일제가 작정한 듯 이리저리 산허리를 비틀었던 안동 일대의 철길도 한 길로 쭉 펴진다.

1941년 개통 이래로 무려 79년의 세월 동안 육중한 열차를 건사하다가, 이제는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중앙선의 단양과 안동 사이 95.6km 구간은 어떤 모습으로 가을맞이를 하고 있을까, 79년의 임무를 마치고 사라지는 중앙선의 사백리 철길을 지난 11월 중순 다녀왔다. 

물 때문에 역 빼앗긴 '구 단양', 선로도 빼앗기네
 
단성역의 모습. 단양역에서, 구단양역, 그리고 다시 단성역까지 역이 오갔던 질곡이 참 큰 역이기도 하다. ⓒ 박장식
 
중앙선 열차를 타고 제천역을 출발하면 도담삼봉 앞의 시멘트 공장으로 인해 진작 복선화가 완료된 철길을 지나 단양역에 도착한다. 단양역에 서면 한창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신선로가 보이는데, 열차는 방향을 틀어 구선로로 들어선다. 잠시 터널 안을 지난 열차는 충주호와 죽령천이 맞대는 곳에서 터널 밖으로 나온다.

사람을 태운 열차가 멈추지 않고 잠시 스치는 역이 있다. 이 역의 이름은 단성역. 지금의 단양역과 5km 남짓 떨어진 이 역의 원래 이름은 '단양역'이었다. 충주호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이 역이 단양의 중심지 노릇을 했기 때문. 원래 역의 위치도 남한강을 건넌 지점이었지만 역 인근이 수몰되며 언덕배기 중턱으로 옮겨야 했다.

그 이후 '구 단양'을 거쳐 '단성'이라는 이름을 얻은 단성역과 단성면 일대이지만, 절반이 넘는 시가지가 물 속에 잠긴 데다 역마저도 원래의 읍내와 멀어진 단성역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단성역은 2006년부터 승객을 태우지 않게 되었고, 어느새 역무원도 사라진 채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소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기관차의 성능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화물열차들이 단성역에서 보조기관차를 달기 위해 멈추곤 했는데, 기관차의 성능이 높아진 지금에도 아직도 화물열차는 단성역을 자주 들르곤 한다. 마주 오는 열차를 비키기 위해서, 열차 시각을 맞추기 위해서 멈추곤 하는 기관차는 죽령을 오를 만반의 채비를 하고 다시 출발하곤 한다.
 
단양호반의 모습. 지금이야 관광명소로 단양에 관광객이 찾게끔 하는 일등공신이지만, 과거에는 소중한 고향을, 고향역을 호반 아래 잃게 한 수마였다. ⓒ 박장식
 
단성역과 단성 일대는 물로 인해 실향민이 되어야 했던 단양 사람들의 아쉬움이 담겨 있다. 아직도 단성면 일대에는 물에 잠기지 않은 구단양 일대의 시가지가 그대로 면소재지로 남아 있고, 가뭄이 들어 물이 빠지면 단양천과 남한강을 오갔던 중앙선 옛 철길의 교각이, 사람들이 오갔던 시가지의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이름이나마, 그리고 역의 내력으로나마 '구 단양'을 상징했던 단성역은 2020년 12월 중순이면 사라진다. 그런 단성역은 이제 자신을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공사의 사업소가 되어 직원들의 일터가 되고 있다. 역의 내력으로나마 철길 위에 간직되었던 수몰 이주민들의 역사 중 하나가 이제는 아예 사라지는 것. 

1942년부터 '단양역'으로, 1985년 수몰 이후에는 '구단양역'으로 보냈던 80년 가까운 세월을 묻고 역도, 선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선로는 단성역 바로 뒷산 아래 터널이 되어 지나간다. 수마에 빼앗긴 고향에도 봄이 오느냐고 묻는다면, 터널 속에 갇혀 봄을 보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만 같다.

한 바퀴 돌아가던 죽령고개, 꼭대기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죽령 기찻길의 한가운데에서 지친 열차가 잠시 숨을 돌린다. 매일 화물열차가, 승객을 태운 열차가 쉬었다 가는 죽령역의 모습이다. ⓒ 박장식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예로부터 세 곳이 있었다. 좌로에는 추풍령 그리고 정중앙의 문경새재 조령 그리고 우로의 죽령이었다. 죽령은 세 길 중에서도 가장 험한 길로 이름을 알렸는데, 이름에 '죽'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과거 가는 선비들도 떨어질까 봐 무서워 들르지 않는 휑한 길이었단다.

이 길에 철도가 처음 들어온 것도 80년 전의 일이다. 죽령을 넘기 위해 가장 먼저 지나는 길은 단성역을 지나 바로 대강 쪽으로 가는 길인데, 대강을 넘어서면 바로 철길이 한달음에 가기 어려운 고갯길이 나온다. 이 길은 치악산처럼 한 바퀴 돌아가는 루프 터널인 대강터널로 오른다. 

이 루프 터널은 과거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죽령을 넘던 만원열차가 터널 한가운데에 멈춰서면서 객차에 증기기관차의 가스가 유입되어 51명이 사망하고 36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고는 한국전쟁 후 중앙선에 빠르게 디젤기관차, 나아가 전기기관차가 오갈 수 있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어느새 벤치의 키만큼 자란 풀이 벤치를 덮고 있다. 죽령역 역명판은 색이 바랜지 오래다. ⓒ 박장식
 
루프 터널을 넘으면 지친 열차가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곳도 나온다. 중앙고속도로와 죽령옛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죽령역. 역 앞의 은행나무가 인상적인 이 곳은 대강터널과 죽령고개의 사이에 위치해 영남에서, 청풍호반에서 온 열차가 서로 비켜가곤 한다.

2001년부터 역무원이 사라졌고, 2007년부터 열차가 멈추더라도 문을 열고 손님을 받지 않는 죽령역은 어느새 승강장 벤치 키만큼 자란 풀이 역무원이 되고, 햇빛에 하얗게 바랜 역명판이 역장이 되어 이따금씩 오는 열차를 반긴다. 역을 이용하는 고객도 용부원리 동네 사람들이 되었다. 역 광장이, 화물 플랫폼이 공원으로, 주차장으로, 아니면 건넛마을로 오가는 통로로 활용되곤 한다.

죽령역에서 멀어진 열차는 4.5km 길이의 죽령터널을 지난다. 소백산 아래를 지나는는, 한때는 한국에서 가장 길었던 열차 터널이기도 하다.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전에는 단양의 마지막 모습이 폭포수의 모습으로 지나간다. 안동방향 열차를 타고 왼쪽 창가에 앉으면 보이는 죽령폭포는 사계절 언제나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모습이 일품이다. 죽령폭포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승객들의 이정표 역할을 더 수행한다.

영남의 첫 번째 기차역, 터널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아침햇살을 받은 희방사역의 모습. 오는 12월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박장식
 
죽령고개를 긴 터널 두 개로 넘은 기관차가 숨을 고르기 위해 처음 들르는 역은 희방사역이다. 영남의 첫 번째 기차역으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희방사역에는 매일 서울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위해 아침에 안동 방향으로 하루 두 번, 저녁에 서울 방향으로 하루 두 번의 열차가 멈춰선다.

희방사역이라는 이름, 얼핏 들으면 알기 힘들다. 그래서 한때 이 역의 별명은 '소백산역'이기도 했다. 오히려 역 건물에 '소백산역'이 더 크게 붙어 있던 때도 있었다. 역을 나서면 사과농장 사이 샛길을 지나 소백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한나절 등산객들에게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희방사라는 사찰도 이력이 독특하다. 한글로 씌여진 최초의 종교서적인 월인석보의 중간본을 소장하고 있고, 한국전쟁 때 절이 불태워지기 전에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목판도 소장하고 있었단다. 당시 영주군수 등이 목판을 지키려 애썼으나, 목판을 옮길 쌀 열 가마 값이 없어서 절을 태워야만 했다는 이야기는 몹시 안타깝다.
 
그런 역사적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 지어진 희방사는 지금도 소백산 정상으로 가는 여행객에게 역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인근 부석사와는 다른, 고즈넉한 매력도 넘친다. 절 앞에서 시원하게 흐르는 희방폭포도 볼만하고, 대웅전과 부속 건물들이 소백산의 한 중턱에 마련된 조그만 암자같은 모습같은 느낌도, 절 앞 희방폭포의 훌륭한 위용도 마음에 든다.

희방사역의 승객은 많지 않지만, 죽령을 넘어온 열차에 문제가 있으면 쉬어가며 점검을 할 수도 있는 중요한 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역은 역무원이 없지는 않으나 역장이 혼자 배치되어 모든 일을 본다. 역을 찾는 승객들에게 서울행 표도 내주고, 열차가 오고갈 때에는 신호를 알리는 일을 본다. 열차가 들어올 때에는 승강장으로 나와 길손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죽령역에서 희방사를 거쳐 풍기까지 가는 철길은 이제 한 줄의 장대터널로 이어지는데, 빠르면 12월 중순부터 새 길이 개통된다. 터널의 길이는 11km. 원래 20분이 넘던 단양과 풍기 사이의 거리를 10분도 안 되게 좁히는 것은 좋지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소백산, 그리고 단양호반의 모습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이다.

(- 2편 가수 진성이 부른 '안동역에서', 이제 추억이 되겠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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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