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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도솔천 건너 숲속은 마치 붉은 카페트을 깔아놓은 듯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김숙귀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어난 숲속을 거닐며 '슬픈 추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떠올려본다.ⓒ 김숙귀
 
먼 산은 성큼 다가와 있고 하늘은 반뼘만큼 높아졌다. 초가을 이맘때 특히 아름다운 절집이 있다.

선운사(전북 고창)는 지금쯤 꽃무릇으로 붉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지난 해 가보지 못하여 그리움은 두배로 쌓여있다. "지금 한창 피는 중인데 주말쯤 오시면 예쁘게 보실 수 있어요." 전화를 받은 종무소 스님은 이렇게 말했지만 주말에는 태풍이 온다지 않는가. 그래서 서둘러 달려간 선운사.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솔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개울 건너 숲속에 꽃무릇이 보인다. 맑은 개울가에 핀 꽃무릇은 그림자를 드리워 물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워낸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마치 붉은 카페트를 깔아놓은 듯하다. 선운사 꽃무릇의 최대 군락지는 일주문 근처이다. 일주문에 다다르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카메라에 꽃무릇을 담느라 열심이다.
 
선운사 꽃무릇의 최대 군락지인 일주문 근처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김숙귀
  
사람들은 만세루에 앉아 스님들이 키운 차잎으로 만든 차를 마시며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김숙귀
 
 빼어난 자연경관과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는 선운사는 원래 동백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곳의 아름다움은 꽃무릇이 피는 가을에 정점을 이룬다. 무더운 여름 끝에 소슬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숲 곳곳에서 가을볕을 받아 동백만큼이나 붉은빛을 토해내는 꽃이 하나둘 피어난다.

선운사 외에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의 꽃무릇 군락지도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유독 절집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는 바로 꽃무릇 뿌리에 있는 독성 때문이다. 절집을 단장하는 단청이나 탱화에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바르면 좀이 슬거나 벌레가 꾀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이파리 한 장 없이 껑충한 줄기 위에 빨간 꽃송이만 달랑 피워낸 모습을 보노라면 어쩐지 마음이 애틋해진다. ⓒ 김숙귀
 
 
유명한 선운사 동백림. 동백이 떠난 자리에는 선혈처럼 붉은 꽃무릇이 피어났다.ⓒ 김숙귀
 
많은 사람들이 꽃무릇과 상사화를 혼돈한다. 상사화는 여름, 잎이 없는 꽃자루 위에 4~8송이씩 무리지어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 잎은 꽃이 피기 전에 말라죽는다. 석산이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서해안과 남부지방의 사찰 근처에 주로 분포한다. 초가을에 붉디붉은 꽃을 피우고 잎은 꽃이 진 뒤 나와서 다음 해 5월쯤 진다.

붉게 물든 절집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숲속에서 홀로 외롭게 피어있는 꽃무릇을 만났다. 가녀린 연초록 꽃대 끝에 작은 이파리 한 장 없이 빨간 꽃송이만 달랑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애틋한 마음이 든다. 꽃은 잎을, 잎은 꽃을 평생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안타깝다. 

'이 가을, 그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마세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곱다고 쓰다듬지 마세요. 그 손길은 늘 기다리게 하는 눈물이 되니까요. 동백꽃 처연히 진 이른 봄부터 흙발로 정진해온 선운사 목탁소리 붉게 여물어가는데 한 뿌리에서 태어나도 만나지 못하는 그대와 나, 차라리 절망을 익히게 해 주세요.' 

목필균 시인은 그 아픔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픔과 그리움 속에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

 
아늑한 선운사의 모습. 명부전앞 배롱나무는 아직 꽃을 피운다. 선운사 경내에는 4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각각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특히 대웅전앞 배롱나무는 참으로 우람하고 멋스럽다.ⓒ 김숙귀
 
선운사에 오면 대부분 대웅전을 비롯해 절집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선운사 위에 자리한 도솔암에 가보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같다. 대웅전을 지나 도솔암에 이르는 숲길 곳곳에도 꽃무릇이 툭툭 모습을 드러낸다.

군락을 지어 피어난 꽃무릇이 화려함의 진수를 보인다면 호젓한 숲에서 하나둘 만나는 꽃무릇에서는 묘한 신비감이 느껴진다. 도솔암으로 오르며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과 수령 6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을 보고 도솔암 왼편 가파른 벼랑에 양각된 마애불상(보물 제1200호)을 만난 뒤 좁은 계단 끝에 있는 내원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절집의 멋진 풍경을 조망한다면 선운사 여행을 제대로 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선운사는 선혈처럼 붉게 피어난 꽃무릇으로 꽃멀미가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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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