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2 12:08최종 업데이트 24.03.2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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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3월 셋째 주를 지나고 있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개별화교육회의로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텐데요. 정신없는 3월이 지나고 나면 곧 안정적인 4월이 올 거예요. 4월이 되면 통합교육 현장에서는 장애이해교육을 준비합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 전후로 장애이해주간을 만들어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을 하기도 하고 이벤트성으로 강연을 듣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합니다. 교실 내 TV로 관련 영상을 보며 교육을 받기도 해요. 특수학교에서는 따로 장애이해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학부모인 저는 그 여부까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장애이해교육이요. 혹시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장애인은 다르지만 같은 존재인가요. 같지만 다른 존재인가요. 같은 말 아니냐고요? 아니요. 둘은 엄연히 출발점이 다릅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도착지도 달라집니다.

같지만 다르다? 다르지만 같다?

수년 전 이야기입니다. 아들에 관한 책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교육부에서 교사 연수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일반 교사들에게 제 경험을 이야기하면 되는 자리인 줄 알고 가서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싸한 거예요. 알고 보니 그날 모인 수백 명이 일반 교사가 아닌 특수교사들이었더라고요.

"네에엣? 여러분, 특수교사 선생님들이셨어요?" 강연 중간에 그 사실을 깨닫곤 진땀을 뻘뻘 흘렸죠. 방향을 바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발달장애가 있는 우리 학생들을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이 봐달라고 했어요. 키워보니 똑같더라고. 쌍둥이인 아들(자폐성 장애)과 딸(비장애인)을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아들이 삶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는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곤 했다고. 열심히 호소했습니다.

한 특수교사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마이크를 받아 들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셨어요.

"저는 어머니 말씀에 반대하는데요. 장애가 있는 우리 애들은 다른 게 맞잖아요. 그런데 왜 다르다고 하면 안 되죠? 장애로 인한 다름을 일단 인정한 다음에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다'는 점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요?"

당황한 저는 어쩔 줄 몰랐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이제 막 장애계에 첫발을 디딘 '어린이의 엄마'였거든요. 내공이 약했던 거죠. 반론을 펼칠 만한 근거를 찾아 머리를 굴렸어요.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인가. '같은 것'(학연, 지연)에 유독 더 집착하는 사회다. 공통점이 있어야 무리 안에 받아들인다. 그런데 장애인은 다르다는 점이 먼저 강조되면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장애 학생들은 겉돌게 된다. 아웃사이더가 된다...' 맞는 말이었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진짠데… 같은 게 먼저여야 하는데… 다른 게 먼저 오면 문제가 생겼는데…' 더 확실한 답변을 기다리며 저를 바라보는 수백 개 눈동자 앞에서 저는 진한 패배감과 솜에 젖은 듯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같다'는 게 '다르다' 보다 먼저 와야 하는 근거를 찾아 헤매던 중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책을 만나게 됩니다. 한겨레 출판에서 출간한 윌리엄 피터스의 <푸른 눈, 갈색 눈(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수업 이야기)>입니다. 책 일부를 축약해 잠깐 언급하고 가도록 할게요.

제인 엘리엇의 차별 수업
 

책 <푸른 눈, 갈색 눈> 겉표지 ⓒ 한겨레출판

 
1968년 4월 5일, 마틴 루서 킹이 살해된 다음 날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엇은 이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교에 출근해요.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3학년 학생 28명에게 고통스러운 실험을 할 생각이었어요.

갑자기 불거진 인종차별의 잔혹함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킨 뒤 그것을 삶의 일부분이 될 기억으로 각인시키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이죠.

학교가 있는 시골의 마을 주민은 모두 백인으로 구성돼 있었어요. 그동안 학생들은 흑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엘리엇이 학생들에게 (평생 본 적도 없는) 흑인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물었어요.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똑똑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자주 싸운다". 동정과 혐오가 혼재한 고정관념. 엘리엇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우리 반을 푸른 눈과 갈색 눈 두 그룹으로 나누면 어떨까?" 엘리엇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오늘은 갈색 눈을 가진 그룹이 푸른 눈을 가진 그룹보다 우월한 날이라고 합니다.

갈색 눈은 푸른 눈보다 똑똑하고 멋있기 때문에 운동장에 먼저 나가 놀고, 급식도 먼저 먹으며, 교실에서도 좋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아요. 반대로 푸른 눈은 열등하기 때문에 자세도 지적을 받고, 줄반장도 할 수 없으며, 초대받지 않는 한 갈색 눈 친구와 놀 수도 없어요.

아이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엘리엇이 말합니다. "정말이야. 진짜로 그렇거든(진짜로 갈색 눈이 푸른 눈보다 우월하거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함께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 눈 아이들은 푸른 눈 아이들을 깔보는 '잔인한 우월감'에 사로잡힙니다. 게다가 즐겁고 행복해지며 학업 성취도까지 높아져요. 우월한 존재가 됐으니까요.

반대로 푸른 눈 아이들은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평소에 잘하던 일까지도 버벅거리며 실수해요. 그렇게 푸른 아이들에게 잔혹한 하루가 지납니다.

다음날이 됐어요. 엘리엇이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갈색 눈이 푸른 눈보다 낫다고 말했잖아.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 사실은 푸른 눈이 갈색 눈보다 훨씬 똑똑해". 엘리엇의 말에 따라 두 그룹의 처지는 곧바로 뒤바뀝니다.

푸른 눈을 가진 몇몇 아이는 복수를 다지며 이를 갈기도 하죠. 불과 몇 분 사이에 갈색 눈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전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푸른 눈 아이들이 갈색 눈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전날 갈색 눈 아이들이 푸른 눈 아이들을 대했을 때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해졌다는 것이었죠.

이틀간의 실험이 끝납니다. 결론을 낼 시간이죠. 엘리엇이 말합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사실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이틀 동안의 실험으로 교실 안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어떤 아이들은 울음까지 터트려요. 그리고 단지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느낀 점을 아이들이 저마다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차별이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차별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차별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평생 화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작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경계, 편견, 차별, 실천

제인 엘리엇의 차별수업 이야기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행해졌지만 푸른 눈과 갈색 눈을 장애와 비장애에 대입해 바라봐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 실험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에요. 어제까지 함께 놀던 친구에게 다르다는 '경계'가 지어진 순간, 그로 인해 한쪽은 우월하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는 '편견'이 머릿속에 입력되자, 아이들이 기꺼이 '차별'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에요.

장애 이해, 장애 공감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교육에 '장애인은 다르다'가 강조돼선 안 되는 이유이며 장애인을 도와줘야 할 안타까운 존재로 레이블링 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장애이해교육을 하면서 이런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관점에 대한)까지 신경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하지만 특수교육대상자를 교육하는 특수교사나 양육하는 학부모라면 우리들의 장애인식은 그 출발점이 '같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발달장애인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이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알잖아요. 우리 학생들(특수교육대상자)이 똑같은 감정과 마음과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거나 낯설(다를) 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 학생들에 대해 모르고 사는 이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게 장애이해교육의 참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덧붙이는 글 *위 내용 중 일부는 이전 연재작인 한겨레21의 ‘더불어, 장애’에서 발췌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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