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8 12:04최종 업데이트 24.03.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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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학문적 지식이 개인의 신념으로 굳어질 때 여러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는데, 공공부문의 민영화 이슈에서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경제원론에서 극히 제한된 조건 하에서 완전경쟁시장은 하나의 이상적 체계로, 그리고 독과점 시장은 고쳐야 할 체계로 부정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사가 실제로 이렇게 선명하고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좋은 독점시장과 나쁜 독점시장을 구분하는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전기요금과 통신요금을 생각해 보자. 이 두 시장은 독점 또는 과점 시장 구조로 인해 원가와 가격 간 차이가 크지만, 그 양상은 다르다. 전기요금은 정부의 가격 결정 개입으로 원가 이하로 가격이 책정되어 한국전력공사가 적자를 보는 구조이다.


반면 통신요금은 SK, LG, 그리고 한국통신(KT)이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설정하여 큰 흑자를 보고 있다. 선거철마다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통신요금 인하를 주된 공약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민생을 위한 통신요금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 두 요금체계의 주된 차이는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것과 통신사들은 영리기업이라는 것에 있다. 만약 KT가 민영화되지 않고, 예를 들어 2만 원짜리 기본요금 체계를 제공한다면 다른 통신기업들이 3만 5000원짜리 기본요금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에너지 가격 급등, 가스공사와 한전 책임?
 

서울 시내 한 건물의 가스계량기 모습. ⓒ 연합뉴스


2022년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현재의 전력시장 구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민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사는 LNG 가격이 상승하면 직도입을 줄이고 발전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전기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감소한 만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는 손해를 감소하더라도 LNG를 더 수입하여 발전량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2022년에 실제 발생하였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민간 발전사들이 악해서, 아니면 가스공사가 바보라서? 아니다. 그들은 조직 논리에 의해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LNG 발전사들은 가격 상승과 하락에 따라 LNG를 선택적으로 구매(Cherry Picking)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그 부담은 가스공사에 전가되어 가스공사 부채 증가로 나타났다. 이것은 현재 LNG 직도입 제도 하에서는 당연한 필연적 결과이다.

가스공사는 민간 발전사의 LNG 발전량 감소분을 채우기 위해 더 비싼 가격으로 LNG를 구매하니 가스 도입 비용이 그만큼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비싸게 도입한 가스로 발전하니 원가 상승 압박을 견딜 수 없어서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 통제 하에 있는 가스 및 전기요금체계는 원가 증가분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었고, 인상폭 또한 크지 않았기에 가스공사는 2022년 미수금 누적 금액이 주택용만 8.6조 원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영업 적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가스공사의 독특한 회계처리 원칙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전력을 구매하는 한전 또한 전기요금을 현실화할 수 없었기에 같은 해 32.7조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관련 기사 :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전 적자, 함께 풀어야 http://omn.kr/21vir).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으려는가

한전 적자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어지자, 한전은 2023년 11월 8일 적자 해소를 위해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한 자구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한전케이디엔(KDN) 지분 20% 매각, 인재개발원 부지 매각, "고정배당금이 확보되어 수익성이 양호하고 매각 제한조건이 적어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필자 강조)" 칼라타간 태양광사업 보유지분 38% 전량 매각, 본사 조직 20% 축소, 초과 현원 488명과 디지털 서비스 확대 및 설비관리 자동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700명 수준의 운영 인력 추가 감축, 그리고 약 700명의 인력이 필요한 사업들을 인력증원 없이 본사 및 사업소 조직 효율화를 통한 해소 계획 등을 담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전 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은 원가를 반영하지 않은 전기요금 결정 체계에 있다. 그러나 한전의 자구안은 에너지 전환과 미래 성장동력에서 꼭 필요한 공공성을 아무 생각 없이 훼손하고 있다.

실례로 한전케이디엔(KDN)은 향후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의 토대가 되는 스마트그리드 구축의 주요 역할을 할 공기업이다. 이런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시대의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관련 공공서비스의 효율적 제공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인력 확보는커녕 오히려 구조조정하거나 기존 인력으로 "몸빵"하겠다는 계획은 자학에 가깝다.
 

서울의 한 전기차 주차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 연합뉴스

  
20년간 표류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잠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로 돌아가서 현재와 같은 전력산업 구조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자.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에 반발해서 파업에 돌입했던 전국전력노동조합이 2000년 12월 파업을 철회하면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1년 4월 한전의 화력발전부문은 사용연료와 용량에 따라 현재의 5개 발전자회사로 분사되었고, 수력발전부문과 원자력발전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할되어 분사되었다.

이후 2002년 4월 김대중 정부는 2003년까지 한전의 배전부문을 지역별로 분할하고, 발전부문의 1단계 민영화로 남동발전 매각과 함께 발전과 배전 간 판매 경쟁체제 도입을 발표하였다. 이에 2002년 2월 25일 발전·철도·가스 3사의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맞서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가스공사노조는 4시간 만에, 철도노조는 50여 시간 만에 협상을 타결한 반면 발전노조는 38일 동안 파업을 전개하였다.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같은 해 4월 입찰회사들의 입찰 포기와 남동발전의 우회상장을 통한 매각을 중단하였으며, 같은 해 9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진행된 노사정 공동연구단의 배전분할 중단이라는 최종 결론을 받아들여 2004년 6월에 배전분할을 중단하였다. 이렇게 민영화를 중단하여 현재와 같은 발전자회사 체계로 남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대신 2006년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이하 공운법)을 통과시킨 후 이를 근거로 기획재정부는 공기업의 경영관리와 경영평가를, 산업자원부는 전력산업정책을 통해 공기업들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발전자회사들을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하여 경영실적평가제도를 적용받게 함에 따라 이들의 상호경쟁을 강화시켰다.

발전자회사들은 이런 환경변화에 맞춰 2013년부터 연료·환경설비 운전 부문과 연료·환경설비 운전 부문의 외주화로 효율성을 높이려 했으나, 2019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이던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외주화로 인한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났다.

한전 수직재통합이 답이다
 

2022년 5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2 대구세계가스총회(WGC) 개막식에 참석, 한국가스공사 전시장에서 LNG-LH2 하이브리드 인수기지 모형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지난 20년간의 전력산업구조 개편과 민영화는 추진과 표류를 반복하다, 현재는 멈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최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민영화가 중단된 현재 상황은 그나마 다행이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연결된 전력망을 통해 전력을 구매할 수 없다. 만약 2000년대 초반에 발전 및 배전 민영화가 완료되었다면 민영화된 발전사들에 전력 생산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한전의 적자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했다면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여러 조건을 달았겠지만, 민간 발전사가 원가 반영과 이윤 보장 없이 전력을 공급하지 않을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곧 우리나라 민간 기업의 이윤으로 이어졌을지도 미지수다. 가스와 전력은 물론 상수도와 철도, 통신 등을 적극적으로 민영화했던 영국의 경우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스와 전기는 프랑스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프랑스 전력공사(Électricité de France)가 공급하고, 버스와 철도는 네덜란드 정부가 대주주인 아벨리오(Abeillio)가 운영하고 있다. 아벨리오는 사실상 공기업으로 네덜란드의 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거대한 런던 지하철은 홍콩 메트로 운영사이자 홍콩 정부가 대주주인 홍콩철로유한공사(MTR)가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에너지 가격 폭등의 교훈은 민영화된 전력산업 구조로 에너지 안보를 담보할 수 없으며,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전력산업의 구조 개편이 아닌 수직재통합을 대안으로 고민해야 한다.

한전 수직재통합은 여러 장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중복투자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한 원가 절감과 안정적인 전력 생산, 유가 및 LNG 가격 급등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한 위험 감소, 탄소중립, 분산 전원과 스마트 그리드 등 현재 진행 중인 에너지 산업의 변화에 대해 효과적이고 통합적으로 대응하고 추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의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며, 국민의 저항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도 답이 아니고, 현재 구조는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 방안에는 에너지 취약층에 대한 보호부터 에너지 전환에 발맞춰 미래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과감한 투자까지 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함께 대안을 마련하고 국민의 지지와 이해를 얻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대통령과 여야의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석사를 받은 후 미네소타대학교에서 HRIR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경영학부에서 조직행동과 고용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2~3년 동안 공공 부문의 고용 관계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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