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9

'의대 2000명 증원이 진리'라는 정부의 아집

[주장] 강행 일변도 정부의 문제점 셋... 이대로면 3월 의료대란이 더 걱정이다

24.02.23 15:55최종 업데이트 24.02.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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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유지명령.'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대응이 필수의료 살리기가 아닌 '필수의료 생태계 파괴'로 치닫고 있다. 연가 사용을 불허하고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발동해 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들의 발목을 묶겠다는 강제 행정력이 오히려 필수의료에서 버티고 있는 의사들을 현장 밖으로 내몰아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 되었다.

환자 진료에 차질을 우려한 정부의 강경책이 당장은 의사들을 '잠시 멈칫' 하게 하는 데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피부과·안과·성형외과와 같은 인기과와 비인기과인 필수의료의 양극화 현상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정부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브리핑과 언론 대응을 과도하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강경대응의 노출로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게다가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미흡해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문제점 세 가지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법무부-행안부 합동브리핑이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봉식 경찰청 수사국장, 윤희근 경찰청장, 신자용 대검찰청 차장검사, 박기동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 권우성

 
첫째, '의사 추계 근거 연구의 부실함'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27일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통해 그동안 근거자료로 활용됐던 보건사회연구원, KDI, 서울대 교수 등의 의사 인력 추계 연구에 대해 검증의 시간을 가졌다(전체 영상 보기). 앞서 언급한 정부 주장의 근거가 된 자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2020),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의사 인력 전망'(2023), 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의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2020)다. 

당시 전문가들은 추계 연구의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각 연구마다 변수 차이로 추계의 결과가 상이해 신뢰도가 낮다 ▲과거보다 지금의 고령인구의 건강상태는 좋기에 의료수요가 과다추계 될 수 있다 ▲의사들 또한 건강노화로 인해 은퇴시기 연장과 노동 생산성 증가에 대한 요소는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과잉 의료를 대체할 지불 보상제도 개혁으로 인한 의료 수요의 변화가 연구에 반영되지 않았다 등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관련 연구자들이 '의사 부족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2000명을 한꺼번에 늘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고 '의료시스템의 변화가 병행될 필요'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외면한 채 정부가 연구와 근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지 묻고 싶다. 

둘째, 부실 의대 교육의 우려다. 정부는 '의대 수요조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의대 수용 가능성을 확인했고, 부실교육 문제는 없고, 의과대학 인증평가에도 충족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의 의과대학 학장을 포함한 교수들과 의학교육평가인증원에서조차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9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서울대 의대 교육관에서 성명을 내고 "지난해 교육부 주관 수요조사 당시 각 대학(원)의 실제 교육여건에 비춰 봤을 때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교육당국에 제출했던 점을 인정한다. 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증원 규모 재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정부질문(22일)에서 '교육의 질 저하'와 관련한 우려를 묻는 말에 "그렇지 않다. 의대가 40개인데 2000명이면 한 대학에 50명 정도 더 늘어나는 것"이라면서 2000명이라는 증원 수치에 대해선 타협점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관련 기사 : 선 그은 한 총리 "의대 정원, 협상할 수 있는 일 아냐" https://omn.kr/27j0q ).

정부가 자신이 있다면 현장 수요조사와 검증자료를 공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를 검증하기 위한 '국회 정부 자료 요구'는 무시당하고 있어 현장 조사 과정에서 논의됐던 부실 문제 지적사항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참여 위원들의 증언만 있을 뿐이다. 불리한 자료는 가리고 유리한 점만 내세우는 바람직하지 않은 소통 방식이다.

셋째, 부실한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의대 2000명 증원으로 대표되는 양적 확대가 아니라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좋은 의사들이 충분히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의료 패키지에 담겨 있다고 주장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 정책 발표 전에 시행했어야 할 정책들이었다.

소위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는 오래된 문제인데 왜 이제야 필수의료 지원을 발표하고 아직 이행조자 하고 있지 않는가? 필수의료에 대한 더욱 강화된 지원부터 시행하면서 정책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2000명 의대 확대가 총선용 인기영합주의 카드가 아니라면 말이다.  

소통에 근거해 앞뒤가 맞게... 지금 필요한 해결책
 

의대증원 맞서 의협-전공의 집단행동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 이정민

 
필자는 정부의 대응이 의료대란의 해결이란 방향으로, 진정성 있게 전환되길 바란다.

첫째, '의사 수요 추계 거버넌스 수립'이 필요하다. 현재부터 미래의료까지의 적재적소의 의사 수급 근거체계를 갖추길 바란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합리적인 계획들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제시되길 바란다. 의대 정원이 정치에 의해 매번 휘둘리며 결정되는 것이 아닌 전문가들의 독립적 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 시스템을 바탕으로 늘릴 때 늘리고 줄일 때 줄이는 선진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둘째, 탄탄한 의학교육 체계를 갖추고 평가인증을 강화해 사전에 부실 의대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의학, 임상의학, 수련 교육의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교수요원과 인프라가 갖춰진 대학에만 증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대학의 이익을 위해 정부엔 정원 확대를 요청하고 실질적인 준비가 부진해 학생 교육에 차질이 생긴다면, 꼼꼼한 인증과정을 바탕으로 오히려 정부가 강경하게 대학을 제재해야 한다. 지금의 사후 검증 인증 과정에 더해 사전 인증 과정을 수립해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미리 조치가 취해야 한다.

셋째, 필수의료 처우 강화에 대해 정부가 국민, 의료계와 함께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나라는 직업을 강제할 수 없다. 필수의료를 선택하고자 하는 의료인력들의 처우 개선과 함께 유인책을 획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응급의학과·소아과·산부인과·외과를 선택해도 의료 소송 안전망이 있어 환자 진료에만 총력을 다할 수 있는 근무 환경, 일과 개인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노력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신뢰 등을 어떻게 만들수 있을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끌어내야 한다.

국민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보건복지부가 의료인을 탄압하는 방식이 아닌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부처라는 믿을을 얻기 위해 진솔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과 같은 정부 방식은 선의를 빙자한 권위적·강압적 방식이다. 이는 필수의료 붕괴를 가속화해 당장 지금 아픔 환자들부터 입원이 취소되고 수술이 밀리는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인턴과 전공의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3월이 더욱 걱정이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 국민들이 함께 소통과 설득을 통한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 논의하는 순간을 기대해 본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번엔 밀리면 안 된다'는 태도가 아닌 '협상의 여지가 열려 있다'는 모습을 정부가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들과 의료대란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자료사진). ⓒ 신현영 의원실 제공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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