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4 07:16최종 업데이트 24.02.1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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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개봉한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작전부터 파독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 등 온갖 격변기를 몸소 겪으며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덕수(황정민 분)를 주인공으로 그 시대를 조명한 영화이다. ⓒ JK필름


이번 연재의 큰 제목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 정했다.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고 마음에 든다. 순서를 내 임의로 바꾼다면, 먹고는 '일'이고, 사랑하고는 '사람'이라면, 기도하라는 '가치와 초월'이다.

본격적인 첫 이야기를 '사랑하라', 곧 '사람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이유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건(사고)을 만나고, 그걸 대처(일)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거기에 관계된 사람을 만나기 전에, 상황, 사건, 일을 먼저 다루고, 바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중세 이후 서구가 발전시켜 온 이성 중심적 사고로, 일 처리가 빠르고, 효과적이며, 경제적이다. 이를 통해 서구는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19세기 이후 온 세계의 일반원리가 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거기에 관계된 사람(존재)을 쉽게 놓친다는 것이다.

사람을 말하지 않는 사건(상황, 일) 이야기가 얼마나 살벌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는 최근 한 연예인의 죽음을 통해 목격했다. 세세한 내막을 확인도 하기 전에 각자 입맛에 따라 한 사람을 멋대로 예단하고, 일단 뉴스거리로 만드는 검사시대 습성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건과 사태 이전에 사람을 알자. 내가 아무리 목사이지만, 사람인 이상 신을 논하더라도 사람의 자리에서밖에 할 수 없으니 그래서라도 사람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사람을 아는 여러 방식이 있겠다. 나는 그중 세대(동년배)를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택하려고 한다. 그들이 어떤 시대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세대적 서사만큼 유용한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룰 첫 번째 세대는 70대 이상 주로 8090세대다. 나는 이 세대를 제법 잘 안다. 1931년생, 1934년생 부모를 비롯해 1930년대, 1940년대생들을 친지로 두며, 50년 이상 늘 가까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경험까지 기억하는 분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전후로 전쟁과 절대빈곤 속에서 미군 구호품 얻어먹은 것까지 잘 기억하는 영화 <국제시장>(2014년) 세대다.

사실 우리 세대(5060)는 입만 열면 전쟁과 가난을 지겹게 설교했던 부모 삼촌 이모인 그 세대와 오랫동안 불화했다. 나는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국제시장>의 서사와 함께 그 세대를 이야기해 보련다.

그들은 무조건 살아야 했다
 

영화 <국제시장> ⓒ JK필름

 
사람은 언제나 그 시대의 자식이다. 누구도 시대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들은 식민지 말기 일제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게 삶에 깊이 각인되기엔 너무 어렸다. 어쩌면 이들이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만들어진 남북분단의 살얼음 끝에 무려 3년이란 엄청난 세월 동안 전쟁을 겪었다.

전쟁을 겪지 못한 전후 세대는 세 번이나 해를 바꿔가며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10 넘는 사망자를 낸, 가뜩이나 가난한 민족을 철저히 잿더미로 만들며 평생 두려움과 증오를 담고 살게 한 그 기억을 어림잡기 힘들다. 그들은 무조건 살아야 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군사 독재든(1961~1993년), 미국의 용병이든(1964~1973년 베트남 파병), 잘 살 수만 있다면 안될 게 없다고 여겼다.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개혁과 진보도 좋은 얘기인 줄은 알지만, 항상 죽느냐 사느냐, 먹느냐 굶느냐의 선택 끝에 내몰린 자신의 처지와는 멀어도 아주 먼, 배부른 이야기라고 느꼈다. 실제로 20세기 한국 현대사 100년, 그중에서도 1940~1990년대까지 세월은 정말 살벌하고 가혹했다. 자기가 잘하고 못하고, 뭘 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줄을 잘못 서면 죽을 수 있고, 엉뚱한 소리 했다가는 잡혀갈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고, 자식들을 자신과는 다르게 배부르게 먹이고 입히며 대학 보내는 게 전부였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고, 사회 불안이 없는 가운데,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는 것이 인생 목표의 전부였다. 친일파든, 군인이든, 안정적 선택이 우선이 되었다. 젊은 시절 내게 부모 세대의 그런 모습이 그렇게 천박하고 못나 보일 수 없었다.

바로 여기에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공작이 끼어들 틈이 생겼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국제시장> 주인공 같은 삼팔따라지(한국전쟁 후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와는 다른 금수저들은 친일에서 반공으로 갈아타며, 반백 년 세월 동안 철저히 동년배들의 두려움과 증오심을 이용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온갖 기득권을 장악하며 주류로 살아왔다.

1960~70년대 낯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고, 베트남에서 미국 용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1980년대 중동 사막 한복판에서 죽음 같은 더위와 싸우고,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철야 작업한 것은 바닥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동시대 금수저들은 바닥 사람들의 대가로 받은 피땀 맺힌 외화를 종잣돈 삼아 정치·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업적 삼아 은인인 듯 큰소리를 쳐왔다.

<국제시장>의 감성을 통해서도 결국 "그래. 우리나라는 저렇게 위태하고 가난했다. 우리 어르신들은 저렇게도 힘들게 열심히 일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지금 독재니 민주니 하는 소리도 다 배부른 얘기야!"라며 아전인수적 교훈을 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 변명에 대해서는 치를 떨면서도, 아무런 원한 없던 이국땅에서 억지 총질했던 베트남전쟁만큼은 여전히 '자유를 지켜주기 위한 대한 남아의 기개'로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영화는 담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국제시장 세대는 평생 제대로 사람 대접 한번 받지 못하고 시골 촌놈, 공순이와 공돌이, 돈 벌어오는 기계(남편)와 밥순이(아내)로 살았으면서도 상당수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표밭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광훈의 열광적 박수부대가 되어 주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부지, 이만하믄 내 잘 살았지예?"
 

영화 <국제시장> ⓒ JK필름

 
가장 큰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너무 위험하고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와 자기 가족의 목숨과 생존을 달랑 지키기에도 너무 버거웠다. 안전과 안정만이 살길이라 믿었다. 나는 갈수록 그들 시대에 태어나 같이 살았다면, 나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는 너무 빨리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착시현상도 크게 작용한다. 그들이 그토록 박정희, 박근혜에 목말라 하고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것은 진짜 그들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다. 이미 흘러가 버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젊고 건강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다. 

어른들은 항상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그때는 정이 있었고 참 좋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나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를 가난에서 구했다"는 말도 한다. 그들은 다시 그 가난과 배고픈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신 차려 돌아보니 어느새 몸은 늙고 가족들에게조차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들이 가장 젊고, 건강하고, 목표와 성취가 있었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하늘 같은 존재였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가난과 배고픈 시대가 탈출해야 할 과거이기도 하지만, 돌아가고픈 추억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 시절에 박정희가 있었기에 그들에게 박정희는 자신의 최전성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내가 어떤 옷을 입든 머리를 기르든 말든 왜 단속하냐", "박정희가 혼자 다 해 먹는다"고 불평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그리울 뿐이다. 저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동네 골목이나 친족결혼식에서 얼마든 만날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죽지 않았다고 큰소리치지만, 소중한 것들이 이미 다 떠나버렸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은 아닐까? 굳이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외롭다, 서럽다, 그립다'는 뜻이다. 그들의 서글픈 미련함, 한 많은 어리석음을 우리가 조금 더 젊었다고, 가방끈이 좀 더 길다고, 제법 교양이란 걸 더 갖췄다고 함부로 매도하긴 힘들다. 나도 이제 중년을 지나 보니 그저 함께 아플 뿐이다.

굳이 죄라면 그 시절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죄, 가난하고 배우기 어려웠던 죄인데, 그게 정말 그들의 죄일까? 누구도 자기의 출생을 정한 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세대에 대한 이야기의 목적은 섣부른 판단 이전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해 보자는 데 있다. 그들 생각의 옳고 그름 이전에 우리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제시장 세대'와 이제 화해해야 한다. 그리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보면 좋겠다.

영화 <국제시장>은 노인이 된 '덕수'(황정민)가 1.4 후퇴 때 헤어진 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혼잣말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아부지, 이만하믄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우리는 우선 그들을 위해 울어주어야 한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열왕기상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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