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6 11:41최종 업데이트 24.02.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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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났던 날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울었고, 분노했고, 행동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 뒤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기억의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가보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견뎌온 이야기들도 풀어냅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기자말]
단원고. 세월호를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이름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은 총 325명. 수학여행을 떠난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학교에 돌아온 생존 학생은 그중 75명. 9년이 흘러 이제는 20대 후반이 된 유가영·설수빈님을 지난해 11월, 경기 안산에서 만났다.

대학 4학년 때부터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가영님은 서울에, 수빈님은 직장이 있는 안산에 살고 있다. 단원고 생존자 인터뷰는 한참 동안 나서는 이가 없었고 그래서 함께 인터뷰에 응해준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다.


"다른 반이었어요. 서로 1학년 때는 아예 본 적 없고 2학년 때는 친구의 친구 정도로 얼굴 본 거 같은. 세월호가 학기 초였으니까 알게 될 시간도 없었죠. 그러다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다른 애들은 다 병동이 비슷했는데 저는 병실이 없어서 산부인과 병동인가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친구 있는 병동으로 건너가곤 했는데 그때 친해졌어요." (수빈)

"저도 처음에는 외부인 많은 병동에 있었어요. 그러다 옮기긴 했는데 아무튼 그때 수빈이가 아는 친구 따라 제 병실에 왔더라고요. 그때 같이 입원했던 친구들끼리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까 그렇게 무리가 형성됐던 거죠." (가영)

따로 또 같이 함께한 우정
 

운디드힐러에서 제작한 그림책 ⓒ 유가영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된 친구들은 그 뒤로도 상담이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처럼 75명의 생존 학생들이 어떤 이름으로 뭉쳐있지는 않았다. 진학이나 취업 등으로 더 이상 안산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쉼터였던 공간 '쉼표'의 선생님들이 가끔 부르면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들러 얼굴을 보기도 한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수빈님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주변의 제안으로 안산에 있는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다. 행사를 기획하는 일이 주 업무지만 디자인이나 홍보, 영상편집까지 많은 일을 해낸다. 가영님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이번에 친구들이 말하기 모임 같은 거 만들어서 몇 번 하더라고요. 올해 초부터인가 중반부터인가 해서 꾸준히 하는 것 같긴 한데 저는 처음에 한 번 참여하고 나서는 안 했어요. 서울이나 안산 어딘가에서 했는데 시간이 잘 안 맞기도 했고 가서도 뭔가 이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꼭 해야 될까 싶기도 하고 저는 제 나름의 마음 정리도 다 끝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영)

가영님은 2023년 4월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세월호 생존학생의 이야기를 알렸다. 책이 나온 이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거나 북토크 자리를 가졌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책을 쓰면서 정리된 것도 있고... 인터뷰도 하다 보면 생각 정리가 좀 되거든요. 사람들이 와서 질문하는 게 다르기도 하지만 비슷비슷한 질문도 많아서. 반복해서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알게 되면서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가영)

하지만 수빈님은 아직 친구의 책을 읽지 못했다. 먼저 책을 읽은 다른 친구가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자신도 책의 앞부분을 조금 읽었지만 결국 다 읽지는 못했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슬플 거 같아서요. 울어버리면 후련해질 수도 있지만, 후련해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처음에 세월호 약전인가요. 친구들 얘기가 쭉 담겨있던, 그 책이 세월호 관련해서 읽은 유일한 책이에요. 1번부터 책꽂이에 순서대로 쭉 꽂혀있었는데 그때도 많이 울었거든요. 그 뒤로는 읽지 않았어요." (수빈)

4월 이전 그리고 이후의 삶
 

화성 북토크 사진 ⓒ 유가영

 
수빈님도 취업 전에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메모리아'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기별로 기억하는 물품이나 엽서를 만들었다.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4.16가족협의회 일을 잠시 하면서 세월호 관련 기록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취업한 이후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모임도 뜸해졌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고잔동 마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단원고와 그 주변을 시민들과 함께 투어하면서 단원고 학생들의 실제 등하굣길을 둘러보기도 하고 거리에서 연극을 하기도 한다. 연극의 주인공은 단원고 학생과 이웃 할아버지, 이런 식으로 구성해 그들이 누렸을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려 했다. 시민들이 한 번 더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도록, 단원고에 다녔던 학생들이 그해 봄, 4월이 있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또 비영리 단체 '운디드힐러(Wounded-Healer)'에서 어린이들에게 트라우마를 교육하기 위한 그림책 <괜찮아질 거야>를 제작할 때 수빈님은 그림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운디드 힐러는 심리학을 전공한 가영님이 마음건강센터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단원고 생존자 친구들과 함께 만든 단체다. 현재는 세월호와 무관하지만 개인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거나 트라우마에 관심 있는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모여 활동한다.

진지하게 연구하고 여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만든 그림책으로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진행하기도 했고 지금은 심리치유용 보드게임을 제작, 출시 준비 중이다. 지난 2022년 이태원 참사때도 함께 참사 현장과 분향소를 방문하고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어 추모하고 기억하는 글을 남겼다.

"운디드힐러 안에서도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도움을 줘야 될 것인가. 이런 얘기도 많았어요. 비슷한 또래이기도 하고." (가영)

"국가가 뭘 해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보상도 저희가 노력해서 쟁취한 거죠. 이태원참사를 봐도 여전히 국가가 저희를 지켜준다, 보호해준다, 그런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수빈)
 

쟁취했다고 표현하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도 어려웠고 많은 결정들 역시 당사자보다는 보호자, 혹은 대리인을 통해 이뤄지기도 했다. 트라우마가 심했던 미성년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아쉬움도 있다. 참사 당시만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정신적 치료나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세월호참사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영구적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적절한 의료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소송 중이다.

"적극적으로 해준 건 없지만, 저희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만이라도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근데 거의 10년이 돼가는데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또 똑같은 반응을 한다는 게 회의감이 들죠. 그런데 주변에 젊은 세대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래도 긍정적으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 반복해서 참사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든 잘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가영)

세월호 이후 변한 것들
 

메모리아 활동 때 만든 엽서그림 ⓒ 설수빈

 
세월호 이후 이태원까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또 분명하게 변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수빈님과 가영님이 단원고 생존자라는 정체성은 영영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에 특히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했지만 얼굴이 공개되는 것만은 극구 거부했던 가영님의 이유가 궁금했다.

"책 나오고 인터뷰를 진짜 많이 했는데 정면이 안 나오게 하려고 엄청 애썼어요. 그냥 싫었어요. 개인 정보 얻기도 정말 쉽고 털리기도 쉽고... 저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싫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부질없긴 해요. 요즘 다들 책을 안 읽잖아요. 제 이름이 흔하지 않아서 알아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웃음)" (가영)

운디드힐러를 운영하면서 국제 NGO단체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지만, 그곳에 지원하려면 운디드힐러 활동을 경력으로 적어야 하고, 그러려면 세월호 이야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고.

"이 사람들이 결국엔 나를 알아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회사 사람들 모두가 제가 세월호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거든요. 또 이게 만약 특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세월호 특별법 논의 당시 단원고 생존 학생들에게 대학 특례 입학을 허용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로 인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유가영님은 자신의 책에서도 이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던 기억을 다뤘다.) 그래서 그냥 아예 깡그리 다른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좀 숨기고 싶고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생존자 유가영이 아니라 그냥 회사 동료 유가영.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가영)

묻지 않는 사람에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 숨길 일도 아니다.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동안은 안산에 산다든가 단원고에 다닌다고 말하기만 해도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는 걸 느껴야 했던 당사자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생존자라는 정체성이 나에게 엄청 크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살아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라는 건 있어요. 그래서 막 기쁘다가도 내 친구들 생각 한번 하게 되고. 내가 지금 이렇게 뭐 취직을 하고 성인으로 살 수 있고 해외여행을 한다던가 이런 것도 살아있으니까 할 수 있고. 근데 내 친구들은 못 해봤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되는 건 분명히 있죠." (수빈)

열여덟 살에 멈춰 선 친구들이 앞으로도 해볼 수 없을 일들을 가영님과 수빈님,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73명 역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어쩌면 무심하게 열심히 살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수빈님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하는 일들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영상편집이나 디자인, 모두 제대로 배운 적 없이 필요해서 하는 상황이라 만족스럽지 않아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 그리고 대학 때 써둔 스토리로 그림책을 하나 내고 싶은 꿈이 있다. 담당 교수님에게 칭찬받기도 했고 스스로 생각해도 꼭 세상에 내놓고 싶은 이야기다.
 

화성 북토크 사진 ⓒ 유가영


가영님은 당장은 다시 외국으로 나가고 싶기도 하고 '운디드힐러'를 통해 더 많은 활동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길게는 언젠가 다시 책을 쓰고 싶다. 시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10년 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지도 모르겠다.

"딱히 작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요. 이 책은 그냥 내고 싶었기 때문에 낸 거고. 다만 또 낸다면 10년 후, 그때쯤 이 책의 2화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왜냐면 10년 후, 제 나름의 인생이 또 있을 거잖아요. 그런 거를 써보지 않겠냐고 어느 대학교 교수님이 물어보더라고요.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었던 분들도 젊었을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몇 번씩 썼다고 하면서요. 좋을 것 같더라고요." (가영)

가영님은 책 속에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 갔던 이야기를 썼더니 '딸기농장에서 일한 얘기'는 왜 썼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세월호 생존자에게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세월호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304명의 사건이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원고 생존자들 역시 75명의 각각의 삶으로, 묵직하지만 반짝이는, 때로는 사는 게 너무 피곤하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오늘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그래서 언젠가는 가영님이 쓴 10년 뒤의 이야기와 수빈님이 만들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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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힐튼호텔옆쪽방촌이야기>, <우리지금이태원이야>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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