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7 15:22최종 업데이트 23.12.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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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알 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 의장(가운데)이 12월 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8)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AP/연합뉴스

 
한국을 서양에 구체적으로 알린 최초의 책으로 <하멜 표류기>가 꼽힌다. 이 책을 쓴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직원이었다. 그는 1653년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항해하던 중 난파하여 35명의 동료와 함께 제주도 해안에 도착했다. 이후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돼 겪은 일을 엮어 낸 책이 <하멜 표류기>인 것이다.

하멜이 조선 앞바다에 표류했던 시기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16세기 유럽의 향신료 시장은 규모가 큰 만큼 치열하기 짝이 없어서 같은 나라의 군대와 상인이 함께 움직이며 더 큰 이윤을 두고 국가 간 경쟁을 벌였다.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밀리던 네덜란드는 동양의 향신료를 더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여 1602년 동양 무역의 독점권을 보장받은 회사를 세웠는데, 그것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다.


이들이 얼마나 모질게 밀어붙였는지는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육두구의 저주(The Nutmeg's Curse)>에 잘 나온다. 육두구는 검은색의 작은 열매로, 전염병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나서 비쌀 때는 한 움큼만으로 배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하멜이 조선에 도착하기 30년 전인 1621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육두구의 원산지인 반다 제도(현재 인도네시아 반다해의 섬들)에 도착했다. 이들은 네덜란드 해군과 함께 이곳 주민 가운데 필요한 자는 노예로 삼고, 필요 없는 자들은 죽이며 육두구를 독점했다.

다니엘 크레이머(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평화안보학 연구자)에 의하면 하멜이 조선을 탈출한 3년 뒤 즈음인 1669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만 명의 직원과 1만 명의 사병을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일찍이 인류가 본 적 없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동시에 이 회사는 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주식이란 증서를 통해 지분을 다른 이와 거래할 수 있으며, 그 증서를 통해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부터 배당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였다.

힘과 돈을 앞세워 무한 확장하려는 제국주의 정치 체제와 이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초기 회사들은 새로운 기술과 기회를 놓치지 않았는데, 18세기 등장한 증기기관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사람이나 말의 힘을 대체한 이 막강한 동력원은 철도와 증기선으로 응용되었다. 군대는 전보다 멀리 보낼 수 있었고, 재화는 더 빨리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시장은 세계 구석구석으로 확장되었고 '육두구의 저주'는 사방으로 뻗어 갔다. 조선 역시 더 이상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제국은 서구 열강의 욕망 열차에 서둘러 올라타며 1910년 강제로 한일병합조약을 맺었다.

이즈음이면 확장의 주동력은 석유로 넘어가고 있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석유는 이미 자동차, 전투기, 전함 등 각종 전쟁 무기의 연료로 쓰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면 이미 석유는 심지어 승패를 결정지을 만한 중요 요소였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추축국(Axis powers)이 확보한 석유 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시베리아와 동남아에 진출하려다 자원이 풍부했던 미국, 소련, 영국 등의 연합국에 패했다는 시각도 있다.

빅 오일로 이어진 이중의 착취
 

빅 오일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가장 유사한 부분은 그들의 비즈니스가 ‘이중의 착취’였다는 점이다. ⓒ 셔터스톡

 
미국은 앞서 1870년 이미 '석유왕' 존 D. 록펠러가 스탠더드 오일 회사를 설립하며 왕성하게 검은 황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이후 가장 상징적인 초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며 공격적으로 경영을 펼쳤다. 이런 지위는 1911년 미국 대법원이 반독점법 위반으로 이 회사를 34개 회사로 잘게 쪼개기 전까지 이어졌다. 쪼개진 회사들은 현대의 엑슨모빌, 셰브론, BP 등 이른바 '빅 오일(Big Oil)'로 성장하며 경제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BP, 셰브론, 에퀴노르, 엑슨모빌, 쉘, 토탈에너지스 등 6개 회사가 지난해 올린 수익은 총 2190억 달러(약 285조 원)였고, 배당금 등으로 주주에게 지급한 돈은 1100억 달러(약 144조 원)에 이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특수' 덕에 수익이 전년 대비 갑절로 뛰어올랐다.

빅 오일을 주식회사의 시초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다르게 볼 시각은 여럿 있겠지만 가장 유사한 부분을 꼽으라면 그들의 비즈니스가 '이중의 착취'였다는 점을 꼽겠다. 이들이 판 화석연료는 채취와 사용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를 뿜어낸다. 그리고 과학은 우리가 자신은 물론 다른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뿜어낼 수 있는 온실가스의 한도가 사실은 정해져 있었음을 밝혔다. 즉, 빅 오일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처럼 누군가를 괴롭히며 자원을 착취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 지구의 공동 자원인 '이산화탄소를 뿜을 권리'를 정당한 권리 없이 먼저 쓰기도 한 셈이다.

물론 이는 그들이 뽑아 쓴 정유 제품을 받아쓴 현대 문명 공동의 죄과라 볼 수도 있다. 조선 역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비영리 매체 카본브리프(Carbon Brief)에 의하면, 한국은 1850~2021년 누적 배출량(재화 소비 기준) 세계 20위의 나라이다. 착취자들과 등치 할 순 없을지 모르지만, 피착취자들과도 결코 등치 할 수 없다.

지난 11월 30일~12월 12일 기후위기를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회의라 할 수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8)가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다. 구속력 있는 지구온난화 대책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결론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이중 착취를 바로잡기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이 출범하는 등 뜻깊은 진전도 있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예정된 총회의 마지막 날 마침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네덜란드 국왕과 만찬 자리에 있었다. 과거 하멜 일행을 만난 효종과 당시 사대부는 그들의 노래나 춤 등에는 큰 관심을 보였지만 동인도 회사가 벌이는 일들에 대해선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한다. 그 이후로 우리는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 권오성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오성은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 데이터저널리스트, 미디어전략팀장 등으로 14년을 일했습니다. 이후 LG AI연구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책임으로 일했으며, 현재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에서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과정 중입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부른 생각치 못한 영향에 관심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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