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4 17:37최종 업데이트 23.12.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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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십오 년 넘게 편집자로 살며 매일 투고원고를 받기만 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내가 작가로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는 일이 일어났다.

둘 다 글을 다루는 일이지만,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들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분명 질투가 아닌 경외였다. 편집자와 작가는 엄연히 다른 장르니까. 


가끔 작가의 허락 없인 조사 하나 손댈 수 없는 글을 만나면 편집자는 작가의 발끝 어딘가에 있는 사람인가?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기획과 홍보, 교정교열, 보도자료 작성, 작가 섭외를 넘어 제작자에 협상가까지 되어야 하는 편집자의 팔방미인적인 활동치를 새삼 확인할 때면 또 편집자로 사는 삶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쓰기의 시작

그랬던 내가 에세이랍시고 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3년 전이다. 사교육 현장을 취재하는 '노워리기자단'(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후원하는 회원들 중에 지원자를 모아 기사 쓰는 법도 알려주고, 교육 관련 기사도 작성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민참여활동)에 덜컥 지원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기자가 멋져보여 지원한 내 열정에 비해 글 실력은 바닥이었다. 이래 봬도 편집잔데? 오히려 맨날 프로페셔널 작가님들의 잘 쓴 글만 보다가, 그 와중에도 단점을 찾아내 남의 글 까대는 게 일이었던지라 내 글이 더 한심해 보였다.
 

누군가 평가 없이 순수하게 읽어주고, 댓글로 칭찬과 지지도 받아본 그때의 경험이 나를 계속 쓰게 해준 첫 번째 원동력이 된 것 같다.? ⓒ elements.envato

 
운영자는 1년여의 독서모임을 진행해본 뒤 본격적으로 왕초보 기자단의 글 실력을 높이고자, 당시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하던 '100일 글쓰기'를 제안했다.

마침 새해였고, 개인적으로 운동선수 출신 남편과 십여 년을 바람 잘 날 없이 살다 보니 할 말이 넘쳐나던 때였다. 여섯 명쯤 되는 우리는 모두 무슨 자신감인지 "까짓거, 고고!"를 외쳤다.

독서모임으로 어느 정도 친밀해진 기자단끼리만 읽는 폐쇄형 글쓰기카페가 오픈되자 나는 사교육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나의 결혼생활 에세이를 폭풍처럼 써대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자단 쌤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셨고 댓글도 정성스레 달아주셨으며,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며 나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했을 글을 마음껏 써보고, 누군가 평가 없이 순수하게 읽어주고, 댓글로 칭찬과 지지도 받아본 그때의 경험이 나를 계속 쓰게 해준 첫 번째 원동력이 된 것 같다. 

'100일 글쓰기'에 한창 재미가 붙었을 때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수업' 공고를 보게 되었다. 에세이 쓰기에 대해 맨바닥에 헤딩하던 참이라 당장 수업을 신청했다.

그때 정지우 작가는 페이스북에 상당한 완성도의 글을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매일 올리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글도 좋지만, 공들여 쓴 글을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SNS에 올리는 그의 태도에도 반해 마치 연예인처럼 팬층이 형성된 상태였고, 물론 나도 그의 팬이었다.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수업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가 돈 내고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글쓰기 수업이었다. 수업료는 아주 적었고, 내가 받은 가르침은 너무 컸다. 개념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개념으로, 예시는 세 개씩 들고, 비교가 되는 대구 문장을 써주면 전달력이 배가 되고 등등 작법에 대한 가르침도 마음에 박제시켰지만, 나는 정지우 작가에게서 가장 중요한 '글쓰기의 태도'를 배웠다. 

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내 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동안 내 글을 빛나게 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았던 적은 없는지 통렬한 반성이 일어났다. 내 글을 읽은 언니가 그때 섭섭해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글을 읽은 엄마가 아무 이야기 없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글을 읽고 친구의 마음이 멀어진 이유가 그거였구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유독 한 사람, 남편인 탁구관장 김관장만은 내가 자기를 글에 어떻게 갖다 쓰든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예 읽지를 않았다(원래 책을 잘 안 읽는다. 여보, 미안). 그냥 나를 믿어줬다. 나를 턱 믿어버리는 통에 더 조심하게 되었다. 내 글은 주로 남편이 등장하는 결혼 에세이였기에 남편의 그런 대책없는 믿음이 또 나를 계속 쓰게 했다.

쓰고 싶은 글 실컷 썼더니

정지우 작가는 몇 차례의 글쓰기 수업 후 글쓰기 수업으로 만난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어 했다. 계속 자기가 가진 무언가를 우리에게 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글쓰기네트워크'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서약 같은 걸 시키진 않았지만 네트워크에 속한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숨 쉬듯 글을 썼다. 누군가의 출간 소식을 듣거나 북토크 소식을 알게 될 때마다 서로서로 '나도 할 수 있어' 자극을 받았고 '나도 하고 싶어' 꿈을 키웠다. 

네트워크 내에서 여기저기 글쓰기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정지우 작가가 진두지휘하는 책 쓰기 프로젝트 모임도 있었고,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도 모집했고, 합평 모임들도 있었다. 격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합평' 모임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느새 책 출간에 대한 꿈이 생긴 터라 용기 내어 도전했다. 그게 정확히 8개월 전이었다. 

내가 참여한 합평 모임은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여덟 명의 여자들로 구성되었다. 나는 여전히 결혼 에세이를 주로 썼고, 합평을 하다가 내 속 깊은 남편 욕에 감화된 다른 분들이 각자의 결혼 생활을 털어놓는 바람에 함께 울고 웃었다.

진짜로 합평하다가 두 번이나 엉엉 울었다. 과거의 부부싸움을 소환해낸 글일 뿐이었는데 그 지점에 맺힌 울혈이 있었던지 혼자서도 쓰다가 몇 번을 울고, 합평에서도 또 운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후 맺힌 부분이 뚫리며 치유가 되는 경험을 했다. 

마침 합평 모임에 결혼을 코앞에 둔 스물아홉 처자가 있었는데 합평 때마다 '언니들, 결혼이 대체 뭐예요?' 묻기 시작했다. 착한(?) 언니들은 그 후로 '결혼'을 주제로 온갖 글을 써서 합평에 가져오기 시작했고 8개월간 쌓인 글들을 모아 보니 제법 훌륭했다.

가는 길이 달라 중간에 하차한 두 명을 뺀 여섯 여자들은 모두의 꿈인 '출간'을 도모하기로 했다. 며칠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에서 흰눈이 폴폴 날리기 시작한 오늘, 원고 투고 메일을 보낸 지 하루 만에, 우리가 함께 쓴 <언니들 저 결혼해요 말아요>(가제)를 계약하고 싶다는 한 출판사의 전화를 받았다. 

"출간기획서 흥미롭게 봤어요. 원고 재밌네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저희랑 책 내시죠!" 

한 해의 마무리를 '출간 계약'으로 할 수 있다니 꿈만 같다. 글은 써도 정식 작가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시절마다 나를 계속 쓰게 해준 건 함께 글 쓰고 읽어준 동료였다. 첫 원동력이 되어준 노워리기자단 쌤들께 감사하고, 정지우 작가에게 감사하고, 글쓰기네트워크의 모든 '쓰는 사람'들께 존경을 바치고,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이제는 운명이 된 여섯 여자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올림픽 금메달 땄냐고? 꼭 이런 수상소감 같은 감사 인사를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다. 그렇다. 무엇이 되고 싶을 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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