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9 19:16최종 업데이트 23.12.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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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우리 국민은 필요한 돌봄을 제때 돈 걱정 없이 받을 수 있는가. 돌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복지국가가 이러한 기대를 실현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 12일 정부는 복지국가의 미래를 안내할 지도를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처음 마련된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은 사회서비스원법에 따라 수립되는 5개년 기본계획으로 사회서비스 분야의 최상위 계획이다. 사회보장위원회가 심의한 기본계획(안)은 '국민 누구나 필요할 때 누리는 질 높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상반기에 이미 정부가 발표한 '사회서비스 고도화'의 추진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다양한 서비스 확충, 질 높은 서비스 제공, 공급 혁신 기반 조성 등 세 가지 영역에서 구현한다.


기본계획이 마련된 법적 근거인 사회서비스원법의 제정 취지로 보건대, 목표와 추진 방향은 사회서비스 인프라 확충과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은 그러한 취지에 부합하는가.

'다양한 서비스 확충'은 인구·가족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여 사회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사회서비스의 대상과 범위를 중산층 이상까지 확대한다는 방향을 담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 즉 이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은 원칙적으로는 긍정적이다.

저소득 취약계층 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에서 출발한 우리의 사회서비스 정책은 그 이용자를 넓혀 왔다고는 하나, 중산층 이상은 아예 공공 사회서비스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어린이나 어르신, 장애인 등에 돌봄 서비스가 집중되고 청·장년층은 돌봄이 필요하지 않다고 전제했다. 이들에게도 일상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면, 부모나 조부모를 돌보는 '영케어러'의 돌봄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에 상관없이 질병과 사고 등 누구나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공공 서비스는 취약 계층에게만 열려 있었다.

만족도로 서비스 품질 평가할 수 있을까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차 사회보장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의제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령, 소득, 가족 상황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회서비스 공공성의 근본적 원칙과 방향을 천명한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상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재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거나 질 좋은 서비스 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전달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이용자가 체감할 만큼 서비스가 확충되었다고 느끼기 어렵다. 사업을 몇 개소, 몇 명에서 좀 더 확대하겠다는 계획 말고는, 서비스 접근의 권리와 대상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할 법적 근거나 전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말은 없다.

대신에 정부는 전 국민으로 서비스 제공 대상을 확대하면서 재정 부담 가중을 서비스 이용료의 자부담을 확대하여 해소하려는 것 같다. 나는 서비스 무상 제공이 공공성 강화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수용할 만한 수준의 질 좋은 공공 서비스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자부담도 공공성 강화에 어긋나는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본인 부담 차등화가 자칫 서비스 전반의 시장 가격 상승과 품질 차등화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돌봄 서비스는 그 특성상 가격과 품질의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 가격이 올라갔다고 해서 품질이 올라가리란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돌봄 서비스의 투입과 산출을 측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실제로 돌봄 서비스를 받기 전에는 돌봄 노동자가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지, 어떤 내용의 서비스를 구매했는지 알 수 없다. 공급자가 노동자의 서비스 제공 행위를 쉽게 감독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용자가 가격을 더 지불한다고 해서 서비스의 질이 올라갔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 이럴 경우 공급자는 '눈에 보이는' 품질의 차이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며 고가의 설비와 장비 투자에만 열을 올릴 것이다.

정부는 품질평가 지표를 이용자 만족도와 정성 평가 등 이용자 중심으로 개선하여 질 좋은 서비스를 보장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자의 만족도로 품질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 이용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돌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돌봄 노동자가 하는 일이 이용자의 단기적 편안함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일을 받아들이게끔 단기적으로 이용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용자의 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양질의 기관을 육성하고, 역량 있는 공급자의 진입을 촉진하고, 소수 공급자의 부정적인 영향을 방지하겠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시장에 역량 있는 공급자가 진입을 못 했고 공급자가 적어서 이용자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것이 낮은 서비스 품질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사회서비스원법에서 강조하는 공공성 강화는 사회서비스 공급 구조의 민간시장 의존이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2년 사회서비스 공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서비스업에 해당하는 3500여 개 사업체 중 종사자 규모가 10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체가 절반 이상인 59.4%이었고, 그중 개인사업체가 54.7%를 차지했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사업체는 48.9%였다.

영세 공급자의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 과당 경쟁을 방치한 것은 정작 정부였다. 공급자는 돌봄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돌봄 노동자는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생계 불안에 시달리고, 이용자는 필요한 양질의 돌봄을 제때 구하지 못했다.

형식적이고 실효성 없는 품질 평가로 부실 공급자를 퇴출시키지 못했던 정부는 서비스 질 제고를 핑계로 금융자본이 사회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서 지역사회 소규모 공급기관을 퇴출시키는 역할을 맡기려 한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대기업 공급자가 영세 공급업자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해 독과점이 된다면 이용자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사회서비스 시장에서 소비자 주권은 환상
 

사회서비스는 시장 경쟁과 가격의 작동만으로 모든 국민이 필요할 때 양질의 서비스를 보장할 수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 셔터스톡

 
무엇보다 정부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용자 선택권은 이상에 불과하다. 사회서비스 시장은 소비자 주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완전한 정보와 무한한 선택권이 있는 한, 공급자의 기회주의를 배격하고 질 낮은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업자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비자 주권은 사회서비스 시장에서는 환상에 불과하다.

서비스를 선택하는 '이용자'는 돌봄을 직접 받는 사람인가,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부모나 자녀인가, 서비스 이용료를 부담하는 정부와 보험회사인가. 돌봄을 직접 받는 당사자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정보나 경험,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가족이나 정부, 보험회사는 돌봄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서비스 품질이 아니라 오로지 가격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본계획은 이용자 선택권을 강조하느라 간과했던 돌봄 노동자의 보수 적정화 및 권익보호 강화 등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권 강화도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돌봄의 국가 책임과 공공성 강화를 외면하고 사회서비스 시장화와 산업화를 위한 제도와 규제 개혁이 주가 된 내용을 발표했다.

사회서비스는 시장 경쟁과 가격의 작동만으로 모든 국민이 필요할 때 양질의 서비스를 보장할 수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인프라 확충, 돌봄 공백을 방지하는 지역사회 전달체계,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 분담 등 공적 전달체계가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국민이 원하는 사회서비스가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을 다시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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