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7 09:40최종 업데이트 23.11.17 09:40
  • 본문듣기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이 10월 18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렸다. ⓒ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 중에 오호통재(嗚呼痛哉)가 있다. 오호는 탄식하는 소리를 표현하는 말과 통은 비통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재는 감탄을 더 깊게 표현해 주는 어조사로 지금의 언어로는 '아아, 슬프도다'의 의미이다. 오호통재라는 표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 자 <황성신문>에 게재된 장지연의 논설로 '시일야방성대곡'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작금의 사회적경제를 오호통재라 칭하고 싶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사회적경제 사업을 추진하는 주요 부처의 2024년 예산을 대폭 삭감 예고하였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관련 예산은 올해 2022억 원에서 내년에는 786억 원으로 59%를 삭감하였으며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활성화 등 예산은 무려 91% 삭감하였다. 심지어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액 삭감하였다. 정부가 제시하는 예산삭감 이유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의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발표를 해왔다.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2021년 말 기준 사회적기업 고용인원은 6만 3034명으로 장애인 등 노동취약계층이 3만 8597명(61.2%)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적기업의 전체 고용인원 중 인건비를 지원받는 비율은 10.7%에 불과하다(참고로 인증 사회적기업은 고용의 일부에 대해 인건비 지원을 3년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제시한 삭감 이유에 대해 사회적경제 현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회적경제 현장 사람들은 예산삭감 이유를 정치적 판단으로 보고 있다. 즉, 보수 정치권의 몰이해로 사회적경제를 좌파 이념으로 프레임을 덧칠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 도대체 사회적경제는 무엇인가?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사회적경제를 공부할 때는 호혜경제, 공동체경제, 살림경제, 우애경제, 행복경제, 보살핌의 경제 등 다양하게 불렸다. 그러다 정부에 의해 사회적경제가 제도화되면서 이윤추구를 하는 시장경제와는 동기가 다른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는 경제로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명사화되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활기업,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과 같은 조직을 통칭하여 사회적경제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적경제 연구의 선구자였던 고 장원봉 박사는 사회적경제가 국가와 시장에 의해서 충족되지 못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필요에 대응한다는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폭 넓은 시민사회의 주도성과 그것들의 결속을 보장하는 참여주의 모델으로서 사회적 소유를 실천하며, 호혜와 연대의 상호주의 원리를 토대로 축적되는 사회적 자본에 기초한 경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정치사회적 개입전략으로 보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경제운동으로 사회적경제를 설명하는 연구자도 있다.

필자는 여기에 더해서 삶의 방식 혹은 생활 속의 작은 움직임으로 정의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협력, 연대, 배려 등을 자신의 삶 속에서 녹여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느냐를 묻고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운 경험을 확장하는 것으로 개념적 설명을 한다.

'시민경제'로의 '사회적경제' 개념의 해체·재구성

사회적경제를 보수학계에서는 지속가능경제로 용어를 변경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진보학계에서도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로 용어를 변경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은 설명하기(측정하기) 어려우며 사회주의와 연결되는 몰이해(어느 국회의원이 몇 년 전 사회적경제는 사회주의경제라고 한 발언이 떠오른다)와 더불어 2023년 4월 18일 제77차 유엔(UN) 정기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Promoting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for Sustainable Development)' 결의안을 근거로 삼고 있다.

논의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대안 혹은 보완이라는 두루뭉술한 개념제시로 '사회'만 강조되고 경제주체에 대한 논의가 무시되어 왔다. 또한, 양적확대를 위한 정부지원방식으로 인한 공동체 지향·연대·협력 등의 본질이 훼손되고, 지원을 위한 법률 및 지침 등에 의해 실존하는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주체가 배제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해 왔다.

이에 필자는 '시민'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주체와 참여를 위한 '시민경제'로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해체·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시민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어진다. 또한 시민성은 시민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가치관,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을 의미하는데, '시민성' 개발은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시민경제'는 바로 이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사회성과 호혜성을 중요시하며, 관계에 기반한 삶의 전통을 계승하고 경제와 공동체 사이의 연계를 보다 통합적으로 재구성하여 좋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경제로 정의된다.

이에 시민경제로서 사회적경제는 지역(생활문제) 기반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경제로 정의된다. 시민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와 함께 살맛 나는 더 나은 공동체를 통해 공동선을 이뤄가야 한다. 따라서 시민경제로서 사회적경제는 시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영역(돌봄, 교육, 주거 등)에서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시민이 주체화되어 시장경제와 구분되어 사회적경제 제도권 내 조직 외에 마을공동체, 소상공인 등의 여러 주체들을 포함해야 한다.

그간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과정은 성과를 확인하기 쉬운 일자리를 몇 개 만들었는지, 몇 개 사회적경제 조직이 만들어졌는지와 같은 창업(설립)에 포커스를 두어 시민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형 사회적경제 조직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만약 '시민경제'의 개념을 기존의 '사회적경제' 개념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확장된 개념이라고 볼 때, '시민경제'의 틀 내에는 비즈니스와 직결되는 조직이나 활동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맹아를 제공하는 다양한 조직이나 활동들이 포함될 수 있다.

즉,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와 같이 비즈니스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상호 네트워크 조직을 추진할 수 있는 주체들 외에도,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꾀하는 다양한 활동들이나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비롯되는 지역공동체 활성화 움직임들도 기존 사회적경제 개념을 확장하는 시민경제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경제의 범위. 자원봉사와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확장을 위한 상생모델 개발(주성수 외 2013), 자원봉사협의회 ⓒ 오단이

 
시민경제로서 사회적경제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시민주도성은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정책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이전 창업중심의 교육을 탈피하고 사회적경제의 철학과 가치가 담은 시민교육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별 사회적경제조직의 지원방식을 넘어 지역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식 협업사업을 늘려서 사회적경제 조직이 자연스럽게 연대와 협력을 체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시민경제로서 사회적경제는 사회적경제에 무관심한 시민들을 어떻게 참여여시킬 것인지와 누구나 쉽게 참여하는 구조(생활 속에 시민들이 필요와 관계를 채울 수 있는)로 전환시켜 공동체의 일상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지역화 전략을 위해 지역순환 경제체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함께 생활 속에 시민들이 필요(needs)와 관계(relationship)를 채울 수 있는 사업중심으로 정책적 설계를 통해 공동생산과 소비가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시민경제 사용으로 오는 혼란이나 경제활동 외 사회적 활동을 하는 조직과의 사회적경제와 기계적인 결합은 우려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문제에 대한 해결기제로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경제 주체로 시민주체를 강조한다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 확대 가능성은 높으며, 공동생산과 공동소비를 통한 다양한 주체들이 형성되는 것에는 긍정적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적경제가 지역(생활문제)을 기반으로 시민에 의한(by citizen), 시민을 위한(for citizen) 경제로 다시 태어나길 희망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