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11:55최종 업데이트 23.11.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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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분류장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 구교형

 
여행 간 형님을 대신해 오랜만에 다시 택배 현장에 돌아왔다. 일에 익숙해지니 내게 가장 힘든 것은 배송이 아니라,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데 일찍 일어나 서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집과 회사가 멀어 새벽 4시 40분이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침의 부담을 딛고 일단 출근만 하면 어느새 일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언젠가부터 일하는 재미를 정말 진하게 느낀다. 그 정체가 뭘까? '찐한' 동료애 덕분이다. 사실 우리는 각자 배송지와 시간이 달라 따로 만나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름과 연배, 경력 등 기본사항 외에는 서로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런 게 따로 필요할까 생각할 정도로 이심전심 서로를 깊이 의지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육체노동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동병상련의 끈끈함이 있다.


사실 우리 대리점의 인적 구성과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3층 사무실 직원이 있다. 점장님과 두 명의 여성, 한 명의 남성 직원이 있다. 사무실에 있다고 이들 업무가 수월한 게 절대 아니다. 점장은 큰 의자에 앉아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니라 매일 일어날 수 있는 빈틈이나 응급상황을 몸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직원들은 우리 기사들과 매일, 매시간 진행과 전달 상황을 나눠야 한다. 가장 힘든 일은 배송과 관련하여 본사나 발송처, 특히 고객의 불만을 처리하는 전화민원일 것이다. 그런데도 항상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환대에 다시 감사한다.

그리고 남성이 대다수인 배송 기사가 30~40명 정도 있다. 남성이 대다수라는 말은 몇몇 부부가 상차나 하차 등 일의 일정 부분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대리점에는 적지만 여성 기사도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아침 분류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가 10여 명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매일 2시간 안팎으로 컨베이어 벨트 레일 위로 밀려오는 물품들을 먼저 살펴 해당 기사에게까지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우리 기사들이 아르바이트만 믿고 한가롭게 물러나 있지 않다.

함께 레일 분류작업도 하고, 확인된 자기 물품은 트럭을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정리해 놓아야 늦지 않게 출발할 수 있다. 아무튼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남자와 여자가 반반쯤 되고, 머리 희고 나이 지긋한 형님부터 20대 초중반 젊은이까지 정말 다양하다.

세대와 성별은 다르지만... 끈끈해지는 현장

요즘 유튜브에는 세대와 성별, 연차가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과 갈등을 그려낸 유머가 유행을 끌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만약 임원, 평사원, 알바, 게다가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연차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그 긴장되고 피곤한 분위기가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50대 후반 아재는 20대 중반 기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물건을 던져준다. 나는 다른 기사 물건을 앞쪽에서 먼저 찾아 던져줄 때마다 이름이나 **형님이라 불러준다. 서로 정을 느낀다.

물건이 뜸한 순간마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어느 여자 알바는 웬만한 물건들은 먼저 찾아서 '아재 기사'들에게 열심히 전달해 주나, 본인이 들기 힘든 무거운 물건들을 보면 슬쩍 비켜나 있다. 그러면 우리 아재들은 그러려니 군말 없이 들고 간다. 말도 필요 없고, 아무런 긴장과 신경전도 없다. 그런데 어쩌다 그 여자 알바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는 살짝 미소를 띠며 감사를 표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럴 때 우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진한 우정을 깊이 느낀다(나만 그런가?).

나도 그동안 목회와 운동의 다양한 자리에서 참 많은 사람과 일해왔다. 교회에서도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가까우면서도 먼 장벽이 늘 놓여 있다. 동료 목회자들과는 친하게 지내지만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에는 또 넘기 힘든 강이 있다.

여러 운동단체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에는 서로 개인적 의도와 상관없이 나이(세대)와 성별에 따라 적잖은 신경전도 오고 간다. 일단, 세대와 성별이 다르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도 머리 굴리며 제법 신경 쓰게 된다. 물론 예전의 사무실이 나이와 연차에 따른 지나친 마초 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이제 그런 잘못된 권위를 허물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해야 한다. 나 역시 예전에는 선배, 상사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후배였고, 이제 선배가 되니 꼰대 짓도 제법 한다.

한편 자신과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면, 또 하는 일이 다르면 이렇고, 저럴 것이라는 예단과 편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람과 사람, 개인 대 개인이 만나기도 전에 지나친 수 싸움에 먼저 지칠 수도 있다. 내 경험을 봐도 가치도, 명분도 아니고, 태반이 지기 싫은 자존심 싸움으로 힘겨루기할 때가 생각나 적지 않게 부끄럽다.

퇴근할 수 없는 사람들의 노래
 

2018년 7월 17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우리를 더욱 끈끈하게 결속시켜 주는 윤활유가 있다. 바로 단순한 현장 노동에 빠질 수 없는 음악이다. 특히 우리 분류장은 매일 아침 20대 젊은 기사가 마련한 CD플레이어에, 스피커를 연결해 음량을 최고로 해서 틀어놓는다.

그런데 20대 젊은 기사의 선곡 센스가 장난이 아니다. 1980년대~최근까지 시대도 다양하고, 호쾌하게 질러대는 록 음악부터 잔잔한 발라드와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까지 하나같이 아침부터 우리 마음을 뒤흔든다.

지난 주간 어느 날 마지막 곡이 이랬다.

오래 버텼네 참나 오래 버텼어 이 나이 먹을 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았네
배고픈 세상 가난한 청춘이라 음음 나 기대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에 버텼네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이놈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텨왔는데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나 이제 행복 찾아 멀리멀리 떠나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무책임한 남자 나는 바보같은 남자 나 혼자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만둔다 말했네
답답한 세상 가난한 청춘이라 음음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아무것도 못하네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이놈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텨왔는데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나 이제 행복 찾아 멀리멀리 떠나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나 그만둡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인생 한 번 걸어볼랍니다 퇴근하겠습니다

- 장미여관 <퇴근하겠습니다>


이 노래의 압권은 '퇴근하겠습니다'다. 역시 분류가 끝나고 배송을 위해 트럭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순간까지 기사들은 여기저기서 '퇴근하겠습니다' 후렴을 불러댄다. 나머지 소절은 다 잊어버려 '어쩌고저쩌고'로 때우면서도 '퇴근하겠습니다'만은 정확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결코 퇴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다. '이놈의 택배 이젠 진짜 때려 치운다'면서도 5년, 10년 동안, 20년 동안,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택배기사들이 부르는 노래다. 그럴 때 그들이 그렇게도 늠름하고, 자랑스럽고, 멋질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위해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운명 같은 부담이 오히려 그들의 생활을 견고하게 지켜주는 것 같다. '하나'라는 마음은 정치인이나 상급자, 국가나 회사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하면서, '고운 정'뿐 아니라 '미운 정'도 들어버린 사람들의 이심전심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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