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7 15:47최종 업데이트 23.10.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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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가보훈부·서울지방보훈청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권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운동가 정율성에 대한 악마화가 도를 넘었다.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의 기자회견을 전한 25일 자 언론보도에서는 "정율성 기념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은 5·18민주묘역 앞에 전두환 동상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범시민연대 관계자의 발언이 실렸다.

정율성의 작품이 북한과 중국에서 군가가 되고 그가 한국전쟁 때 북한 편에 선 것이 사람들의 정서에 쉽게 수긍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를 학살자 전두환과 동격에 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이는 전두환의 사악한 이미지를 누그러트려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25일 국민통합위원회 회합에서 "어떤 공산주의자에 대한 추모공원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다"라며 "자유와 연대, 통합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사흘 뒤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대한민국의 적을 기념하는 사업을 막지 못하면 장관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장관직을 걸고 정율성 역사공원을 저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과 보훈부 장관이 여론 형성에 나서는 가운데, 8월 29일에는 보훈부 직원들과 5·18 단체들이 정율성공원 반대 신문광고가 나가기 전인 8월 25일에 만남을 가진 사실이 보도됐다. 10월 11일에는 보훈부가 정율성 사업의 중단을 권고하고, 다음날에는 이상민 장관의 행정안전부가 광주 남구에 정율성로 도로명 변경 조치를 권고하는 일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정율성 기념이 나라의 기반을 무너트리는 일인 듯이 과장했지만, 애초에 정율성을 널리 소개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보수정권들이었다. 2000년 이전의 뉴스를 보여주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정율성'이나 '정률성'을 입력하면 1989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사들만 검색된다. 기사 건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가 남한에 소개된 시기가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 8월 28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출입기자 차담회에서 그 시절 사례들을 소개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에 서울올림픽 평화대회추진위원회가 정율성 부인인 정설송을 초청해 한중우호의 상징으로 내세운 일, 1993년과 1996년에 문화체육부가 정율성음악회와 정율성 작품 발표회를 개최한 일, 2015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서 정율성 음악이 연주되는 퍼레이드를 참관한 일이 거론됐다.

이런 사례는 더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10월 9일 자 <동아일보>에는 김영수 문화체육부 장관이 정설송으로부터 정율성 유품을 전달받는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다. 이 기사는 정설송이 민요와 왕실 아악 악보 등을 전달하면서 "남편이 생전에 고국에 갖다 주고 싶어 했지만 교류가 없는 탓에 내내 가슴속으로 고향산천을 그리워했다"고 말한 사실을 전했다. 유품 인수 작업을 진행할 정도로, 보수정권이 정율성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보도다.

정율성 부각시켰던 보수정권
 

1997년 8월 4일 자 <동아일보> 기사 "중 한인작곡가 정율성 건군기념일에 빛나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그렇게 한 것은 중국과 동유럽을 대상으로 전개된 북방외교의 산물이었다. 보수정권이 중국과 손을 잡는 과정에서 정율성이 부각됐던 것이다.

정율성은 한국 못지않게 일제 침략을 많이 받은 중국인들에게 항일 음악을 선물했다. 노태우 정부가 그런 정율성을 부각시키며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킨 것이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됐다. 그의 항일 음악이 1945년 이전에 한민족과 중국을 대일 항쟁으로 연대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는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매개하는 데도 일정한 기능을 했던 것이다.

저임금과 정경유착에 상당 부분 힘입은 한국 대기업들의 성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박정희가 죽은 이듬해인 1980년에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이래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까지 기록됐다.

그해 9월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은 1981년 국정연설에서 김일성을 주석으로 호칭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뒤이어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금강산 이남에 자유관광지대를 설치하는 방안도 모색했다. 전두환이 이렇게 한 것은 경제계의 필요 때문이었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남북경협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전두환의 대북 태도에 영향을 줬던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에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덕분에 잠시 호황을 누리다가 후반 들어 다시 어려워졌다. 이에 더해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임금 상승으로 대기업 대주주들이 예전만큼의 이익을 거둘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 정권은 전두환 때 추진했던 남북경협 및 정상회담과 더불어 중국 및 동구권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 같은 필요에서 비롯된 북방외교 와중에 정율성이 한국과 중국의 연결고리로 부각됐다.

그런 배경에서 정율성이 부각됐기 때문인지 1990년대에는 그가 공산주의자인 것과 중국을 도운 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의 언론보도에서 나타나는 것도 정율성에 대한 배격이 아니라 그로 인한 민족적 자부심뿐이다.

위의 1996년 <동아일보> 기사는 정율성이 "중국 현대 음악의 거봉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진솔하고 소박하면서도 진보적 기상을 담은 그의 3백여 작품들은 지금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8월 4일 자 <동아일보>에는 '중(中) 한인 작곡가 정율성 건국기념일에 빛나다'라는 기사가 정율성 사진과 함께 실렸다. 제목만 봐도 정율성을 얼마나 칭송했을지 드러난다. 이 기사의 결론은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도 정율성이 수십 년 동안 감화력이 뛰어난 음악 작품을 통해 중국 인민에게 불멸의 공헌을 했다고 찬양했다"라는 문장이다.

일시적인 정치적 필요에 따라 악마화
 

‘광주를 사랑하는 청년들’은 12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 기념사업을 본인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 독자제공


이런 보도들에서 느낄 수 있듯이 1990년대에는 정율성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보수 언론에 소개됐다. 그 시절 정부 당국자와 언론 종사자들도 정율성이 중국 군가를 작곡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았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도 악당으로 평가될 게 분명한 전두환 같은 학살자와 달리, 정율성의 경우에는 시대와 정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재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재해석이 윤 정권 임기 내에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율성을 한없이 폄하한 윤 정권이 노태우·김영삼 정부처럼 정율성을 찬미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윤 정권이 정율성과 관련해 행동을 자제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 정권은 한동안 과거의 '북괴'를 대하듯 중국을 적대시할 듯한 기세를 보였다. 하지만 한중관계 악화가 한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자, 최근에는 태도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이달 18일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51개 회원국이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영국이 주도한 이 성명에는 미국·일본과 유럽연합(EU)도 가세했다. 하지만 윤 정권은 서명하지 않았다. 19일 자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는 "국익이라든가 여러 가지 관점을 다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불참 사유를 설명했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이런 분위기가 하나둘 축적되고 한중관계를 예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해지는 순간이 오면, 정율성에 대한 윤 정부의 폄하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정율성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는 윤 정권 임기 내에도 얼마든지 사그라들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의 경험에서 나타나듯이 정율성은 한국의 외교적 자산일 수 있다. 그의 존재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항일투쟁을 경험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다. 그런 정율성을 일시적인 정치적 필요에 따라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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