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6 12:55최종 업데이트 23.09.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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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의 이른바 '택시비 1000원' 발언에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기묘한 물가 감각이다. (관련 기사: 택시 기본요금이 1천 원? 그 돈으론 호떡 하나 못 사 먹어요https://omn.kr/25g88)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서 해명한 대로 관용차를 주로 타고 다니는 총리가 구체적인 숫자는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1000원'이라는 숫자가 떠오른다는 건 범인의 감각은 아니다. 서울의 경우 택시 기본요금 1000원은 1994년, 3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소 도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방면에서 선구자적이라 할 수 있는 정몽준 전 의원의 발언 '버스요금 70원'도 2008년 당시의 30년 전인 1979년경의 서울시 버스요금이었다. 


대중은 이해심이 깊다. 관료나 정치인이 상추·배추·시금치 따위의 가격을 줄줄 암기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질문자가 '망신 주기용 장학퀴즈'를 의도했는지는 알아서 구분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답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의 격차는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윤희숙 전 의원이나 국민의힘에서 아무리 무어라 항변한들 저 기괴한 감각의 인상이 대중의 뇌리를 떠날 리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총리는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30년 전 숫자를 제시하는 것인가, 심지어 버스 기본요금이 택시요금의 두 배라고 인식하는 희한한 감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제 그의 삶의 궤적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대한민국 특권층의 이질적 인식 체계를 환기시키게 된다.

'기득권 친화', 한덕수의 신념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폐영식에서 폐영사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한덕수 국무총리의 경력은 단순한 '정통파 경제 관료'로 설명할 수 없다. 청문회 때 확인했듯 그는 공직 퇴직 후 김앤장에서 4년 4개월간 18억 원을 고문료로만 챙겼다. 한국무역협회장으로는 3년간 19억 5000만 원, 퇴직금 4억 원을 받았다. 에쓰오일 사외이사로도 3년간 연 8000만 원의 급여를 별도로 수령했다.

올해 그의 재산은 85억 원에 이르는데, 공직을 떠난 뒤 4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2022년 대한민국 상위 1% 자산 평균인 '54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자신의 집을 미국 대기업에 임대하고 6억 원의 임대료를 수령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특권계급의 일원, 또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적 삶의 면모, 그것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다른 얼굴이다. 

이러한 사정이 '택시요금 1000원'이라는 희한한 인식의 발원지일 것이며, 한편으로는 기득권을 대변하는 각종 정책적 결정의 선두에 한덕수 총리가 앞장선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최저임금에 대한 견해다. 김앤장 고문료로만 최저임금 노동자가 81년간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챙긴 그는, 최저임금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해져야 하며, 정부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2022년 4월 5일 총리 후보자 출근길 발언)했다. 그 결과 내년 최저임금은 2.5%라는 사상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결정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됐다.

지난해 예산안 협상 국면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의 선봉에 서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100여 개 상위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3% 깎아주자는 안이었다.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전 과표구간 1%p 인하에 그치자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탄소중립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는 탄소배출 산업의 이익을 고려해 2030년까지 산업계가 감소해야 하는 탄소감축량 목표치를 810만 톤 이상 줄여줬다. 산업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SBS의 4월 7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중 300만 톤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발(發) 투자로 알려진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배출량이 감안된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한덕수 총리는 에쓰오일의 사외이사였다.

그의 신념은 이른바 자유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 자유시장이 강자의 이해에 좌우된다는 점은 철저히 외면한다. 탄소배출의 결과로 폭우와 폭염이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효과가 두드러져도, 탄소배출 기업에 비용을 충분하게 지불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도리어 투자유인을 명목으로 이들의 세금을 대폭 깎아주고, 재벌의 대주주와 외국인투자자, 임원과 고위직들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공익에 하등의 기여도 없는 '로펌 고문'이 받는 4억 원 연간 수임료는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수지만, 세상의 실핏줄이 되어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인 2500만 원 연봉은 후려쳐야 하는 기업의 비용이 된다. 

결국 한덕수의 길은 '시장 친화'의 탈을 쓴 '기득권 친화'의 경제다. 그와 같은 관료들 덕분에 기업들은 최저임금과 세금을 낮게 묶어둘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로펌들에 자금을 대고, 김앤장 같은 로펌들은 '충실하게' 일한 관료들에게 좋은 일자리로 노후를 보장한다. 회전문을 타고 정무직과 로펌을 오가면서 세제와 노동규제가 완화될수록, 그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진다.

자유 없는 자유와 민주 없는 민주... 난데없는 이념전쟁의 이유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 육사 흉상 이전 문제와 홍범도함 개명 논란을 놓고 국회에서 한덕수 총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을 되뇌며 언성을 높였다. 사실상 공산당 가입 경력이 있는 독립운동가를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헌법에 반하는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냉전의 망령을 소환하면서까지 국민 다수가 의아해 하는 이념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당이라는 적대의 실체 없이 그 자체의 내용만으로는 똑바로 설 수 없는 사정에 비롯한다.

살펴봤듯이 한덕수의 '자유'는 현실에서 자유롭게 관직과 로펌을 오가며 돈과 권위를 긁어모으는 것을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자유일 뿐이고, 그의 '민주'는 통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가 별도로 정해져 있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민주'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말하며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를 말하며 카르텔 정치를 한다. 이념을 신앙화하지 않고서는 이상과 실제가 괴리된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에서 비롯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어떻게든 옮겨야 할 이유가 있다. 그 흉상은 백 년 전 이역만리를 전전하며 가족의 고난과 고문의 위협도 감수하며 이름 하나 남지 않는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기약 없는 조국 독립에 목숨을 걸었던 일군의 사람들을 대표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영리하게 회전문을 타며 부귀와 영화를 번갈아 누려온 한덕수 총리 같은 삶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길이다. 

과거에도 당대의 기득권에 협력하는 것이 나라와 인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인식은 없지 않았다. 치밀한 문장과 근대적 지식으로 '빨갱이'를 단죄하는 붓과 칼의 기술자들이 마땅히 건국의 공로자로 대접받을 때, 그들 나름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가 비로소 수미일관하게 완성된다. 홍범도 장군 대신 채워 넣으려 하는 서사에서 그 의도는 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이어진다. 택시 기본요금이 1000원이라는 기이한 인식부터 역대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률, 난데없는 공산주의자 딱지붙이기, 부자감세와 기후재난 참사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국민들의 삶과 유리된 정치가 무엇을 위해 복무하는지 폭로되고 있다. 자유에는 자유가 없고,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오로지 시장의 강자들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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