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3 13:17최종 업데이트 23.08.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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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으며 무더운 날씨를 이어간 지난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이글이글 끓는다. 살인적인 폭염이다. 평균 체감온도 40℃,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거의 매일 폭염특보다. 더구나 야외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에게 더위란 생사가 걸려있는 지옥불이다. 나 또한 그 고통과 탈진을 막노동을 하며 아프게 체감했다.

이런 폭염 땐 잠시만 일해도 속옷과 티셔츠가 젖어 국물이 뚝뚝 떨어진다. 바람마저 잠든 야외현장 체감온도는 기본적으로 35℃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환복 할 여건은 되지 않았다. 여벌의 옷도 없었고, 그렇게 준비해오는 노동자도 없었다. 젖으면 젖는 대로 버텼다. 하지만 퇴근이 문제였다. 고약한 냄새를 품고 버스를 탈라치면 승객들 눈치 보느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인상을 찌푸리며 피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 자신이 미안했고 한편으론 참혹했다.


안전모와 안전장비로 인한 고충도 심각했다. 종일 몸에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열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간혹 안전모를 벗어놓고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발각될 경우 옐로카드를 받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리에 경련이 일고 온몸이 저렸다. 눈앞이 캄캄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도 있고, 속이 메스꺼워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열사병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또 콘크리트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은 바로 얼굴에 맞닿아 열감을 심하게 느끼게 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면 탈진을 막기 위해 물과 함께 소금이나 식염 포도당을 먹었다. 컨테이너 제빙기서 얼음을 꺼내먹는다는 인근 현장 얘기를 들을 때면 부럽기까지 했다.

더위 참아야 하는 구조... 대책이 없다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7월 31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해가 들지 않는 '실내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온열질환에 노출돼 있긴 마찬가지였다. 외부 열기와 햇볕에 노출되진 않지만 내부 설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또한 만만찮았다. 공기순환장치로 온도를 낮추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날씨는 '돈'이자 '독'이다. 찌푸리면 찌푸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얼굴의 표정과 월급 숫자가 달라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장마철이 되면 '공치는' 날이 태반이다. 때문에 덥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밥벌이를 위한 땀은 곧 돈이고 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감 자체가 생존권이다. 건강보다는 더위를 감수하게 돼 있다.

안전시스템 중 '위험작업 거부권'이라는 것이 있다.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부권을 행사했단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나도 그랬고, 내 주변도 그랬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을'인 노동자로선 '갑'인 사용자로부터 당할 여러 불이익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더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무섭기 때문에 작업 중지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만약 실행하더라도 사업주가 업무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정부가 지난 2005년 폭염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래 지난 16년간 폭염 시 작업중지는 오로지 권고로만 규정하고 있다. 열사병 증상이 나타나면 작업중지 하라는 대책은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이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뿐인 지침보다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 말이다.

폭염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폭염으로 작업중지·공기연장이 되더라도 발주자나 원청 건설사가 노동자 임금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설 현장은 중층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하에서 공사기간 단축 관행에 시달리고 있다. 일을 빨리 마칠수록 이윤이 남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작업중지는커녕 휴식도 어려운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18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이거나 총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의 공사현장은 휴게시설 미설치 시 1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올해 8월 18일부터는 이 같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 상시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 총공사금액 20억 원 이상 공사현장에도 적용된다. 또 폭염 기간 실내 작업장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휴식도 보장된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열사병 등 온열질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대책 따로, 현실 따로'다. 온도 차가 극명하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온열질환 예방지침'에 따르면 사업주는 열사병 위험이 높은 체감온도 33℃ 이상의 폭염 상황에서는 근로자가 매시간 10~15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사 협의를 통해 적절한 휴게시간을 정할 수 있다. 가장 뜨거운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동자의 죽음만은 막아야 한다
 

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해 8월 폭염기(期) 건설현장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135명 중 폭염 특보 발령 시 1시간 일하면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는 응답은 27.3%에 그쳤다. '쉬지 않고 봄·가을처럼 일한다'는 17.0%, '흡연 등을 이유로 재량껏 쉬고 있다'는 56.7%였다. 또 폭염 관련 정부 대책이 있어도 건설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이유(복수 응답)에 대해선 '대책에 강제성이 없어 있으나 마나'라는 답변이 53.2%로 가장 높았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노동부에 폭염·한파에 따른 건설노동자 안전·건강 증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폭염 상황에서 조기출근이나 유연근무 등 여러 조치를 우선 시행하고, 작업중지로 감소한 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노동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열사병 예방을 위한 가이드에 육체노동 강도에 따른 체감온도 차이를 고려하는 내용을 명시하라는 권고만 수용했다.

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사용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킨다. 목적은 닮았는데 노동자 사용설명서가 다르다. 물과 그늘, 휴식은 노동자에겐 권리이고, 사용자에겐 의무다. 현장에서 중요한 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강제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현장 옥외작업 온열질환 사망재해는 미필적 고의가 빚은 참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온열질환 진단을 받은 노동자는 152명이고, 이 가운데 23명이 숨졌다.

뜨거운 태양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순 있다. 땡볕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야외 노동자들의 '쉴 권리'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조금은 일이 늦어지더라도, 조금은 일을 늦추더라도 '건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태양도 때가 되면 식는다. 지금 노동자들에겐 뜨거운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그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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