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3 11:48최종 업데이트 23.07.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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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 당신에게 딱 맞는 책이나 영화, 노래를 배달해 드립니다. 좋은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난 네게 반했어 챌린지'는 다음 필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연재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편집자말]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 작품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주일째 조영욱의 <우울한 파티>만 듣고 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박찬욱) 복수신에서 나오는 노래다. 유가족들이 아동 납치 및 살해범 백한상(최민식 분)에게 칼, 도끼 등 무기를 꽂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흐른다.


너무 유명한 장면이라 많이 알겠지만 복수가 통쾌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망치를 든 한 아버지는 "이칸다꼬 죽은 아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한다. 이게 근본적 해결 방법이 맞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도 유족들은 각자 택한 무기를 들고 백한상을 찌른다.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한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기까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춘재 사건처럼 드라마틱한 반전 결과를 얻으리란 보장도 없다. 즉결 처분이 즉각적이고 확실하며 빠른 결과를 가져다준다.

사망한 백한상의 시신을 땅에 묻으면서 금자(이영애 분)는 웃는 듯 울고 우는 듯 웃는다. 사이다 결말은 없다. 13년 넘게 공들인 인생 최대과업을 달성했지만 이제 끝없는 번민이 펼쳐질지 모른다. 반대로 말하면 번민이 펼쳐질지라도 과업을 달성한 것이다. 복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결과를 짊어지고 해석하며 사는 건 오롯이 금자의 몫이다. 엔딩을 보면 금자는 번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듯하다. 출소한 이가 두부를 먹듯이 생크림케이크에 얼굴을 파묻으며 구원을 갈망한다.

과거의 나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 곡을 들어보라
 

조영욱 음악감독이 만든 <친절한 금자씨> OST 표지 ⓒ 비트볼뮤직

 
이 노래가 흐르는 장면을 곱씹으면서 내 인생의 복수심을 생각해 보고 있다. 아동학대, 납치와 살해범죄를 해결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건 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영화와 음악은 사회에 의미를 던지는 일만 하지 않는다. 작품 속 사건 너머 한 인간의 미시적 삶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한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불륜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사랑은 뭔지 얘기할 수도 있듯이 말이다.

복수심이란 감정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 품는다고 한다면 내 복수의 대상은 보통 나였던 것 같다. 복수심은 쉽지 않은 순간을 지날 때 일어났다. 이를테면 수학여행비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랑 길거리 박스를 줍는데 내게 쓰레기를 던지고 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지방대 나와서 무슨 기자를 한다고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면접장에서 "나이가 많으신데 결혼할 예정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이런 일들이 차별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삶은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이건 차별이야'라고 정의하더라도 그다음을 살아내야 했다. 어떤 날은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릴 거야' 하는 적개심을 품었다.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부정적이었는지 후회했다. 이내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야지' 하는 긍정을 품었다. 지나고 나면 철없이 긍정을 품었다고 후회했다. 강하게 문제제기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순간을 거듭 떠올리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뺨을 때리거나 얼굴에 물을 끼얹어 버리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언제나 과거의 나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으며 살았다. 내 청춘의 표정은 가해자 시신을 묻은 금자의 표정 같았다.

<우울한 파티>의 낮고 높은 현악기 음이 메기고 받는 듯이 번갈아 나오는 걸 들으면 염세와 낙관을 오가며 살던 날들이 떠오른다. 조금 여유로웠으면 스스로 사랑을 주며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글 또한 과거를 후회하며 쓰는 글이긴 한데 이제는 복수하기보다 노래 감상하듯 들여다본다. 여전히 번민하는 날들이지만 이런 나를 오롯이 짊어지고 해석해 본다.

차별을 겪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혹시 나처럼 어제의 자신에게 복수만 하며 살았다면 <우울한 파티>의 낮은 현악기 음과 높은 현악기 음 속에서 자신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무엇이 우리의 생크림케이크가 될지, 그것을 만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당신도 조금 여유로워지길 바란다. 금자의 생크림케이크는 엔딩에 나오는데, 당신의 엔딩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다음 필자는 기록노동자 이슬하씨입니다. 나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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