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6 06:50최종 업데이트 23.06.2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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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5월 30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원이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 처분이 유효하다고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통상 집행정지 신청은 인용률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내용적으로도 방통위원장에 대한 면직 처분의 범위를 넓힌 것과 긴급구제의 필요성을 따지는 집행정지 소송에서 본안의 쟁점을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징계처분 정지 결정을 받은 것과는 상반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재판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회복할 수 없는 손해' 여부 판단입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 본안 소송 결과가 늦을 수밖에 없어 권리 구제 필요성이 크다고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도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했을 때 뒤따를 명예손상, 변호사 직무 중단 등은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라고 인정했습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사유 충분? 

하지만 재판부는 이보다는 '공공복리'를 판단의 우선 순위에 뒀습니다. "방통위원장에 복귀할 경우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에 대한 사회적 신뢰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한 전 위원장이 돌아오면 공석인 기간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방통위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공공복리'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공공복리 위배는 한 전 위원장 복귀로 인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방통위원장 면직으로 방통위의 중립성이 훼손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더 논란이 되는 건 재판부가 한 전 위원장 면직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대목입니다. 재판부는 "TV조선 재승인 심사평가 점수가 수정된 사실을 한 전 위원장이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사실관계를 조사하지 않았다"며 "면직 사유는 소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본안 소송은 시작 단계로 오늘(26일) 첫 재판이 열립니다. 한 전 위원장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선 "다퉈 볼 여지가 있다"며 기각된 바 있습니다. 행정법원이 재판도 열리지 않은 형사소송의 결과를 예측하고 단정한 것은 과도한 권한 행사라는 게 대다수 법조인의 견해입니다.

법조계에선 이번 결정이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법원이 내린 집행정지 인용 판결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시 재판부는 법무부의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직무정지 징계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장 임기를 2년 단임으로 정한 검찰청법 등의 취지를 몰각하는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직무집행 정지가 이뤄지면 검찰 사무 전체의 운영과 검찰 공무원의 업무 수행에 지장과 혼란이 발생한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법원의 결정을 한 전 위원장에게 대입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검찰총장 임기가 정해져 있듯이 현행 방통위법에는 방통위원장 임기가 3년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만큼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도 중요합니다. 한 전 위원장이 면직되면서 현재 방통위는 5인에서 3인 체제로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합의제 정신 위반'이라는 비판에도 수신료 분리징수 등 논란이 많은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원이 그 때와 지금 다른 판단을 내린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윤 대통령은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거론돼 온 이동관 특보를 이른 시일내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영방송 장악 시도와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명박 정부 때 언론 탄압에 앞장선 이 특보가 공영방송을 얼마나 퇴행시킬지 우려가 큽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이 언론자유 퇴행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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