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6 09:31최종 업데이트 23.06.2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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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참사 분향소 ⓒ 장지혜


새벽녘까지 구급차 사이렌이 울린 날이었다. 가끔 동네에서 밤늦게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뉴스에 속보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이태원역에서 가까운 곳이다. 전국에서 온 142대의 구급차가 이태원역으로 향한 날, 집에서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동안 사이렌 소리는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이태원역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지도 못했다.


2022년 10월 29일, 사망자와 부상자 총 355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생명을 잃거나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조금이라도 위험이 예상되었다면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비하지 못했고 안타까운 생명들을 잃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도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다(제2조 기본이념).

구민들의 삶과 문제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한 시민이 참사 현장에서 추모 메시지를 보고 있다. ⓒ 장지혜


하지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나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면 그 국가와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우리는 내가 살아남아서 미안하다는 죄책감을,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재난과 참사를 대비하지 못했다면 수습한 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사과라도 제대로 해야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못했다. 

이태원이 위치한 용산구의 책임자인 박희영 구청장은 참사 직후 주최나 내용이 없어 축제(행사)가 아니며,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는 말로 거짓과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러곤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나서야 사과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아닌 국민의힘 이태원 특별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사과 당사자가 없는 사과는 누구를 향한 사과인 것일까? 과연 그 사과엔 진심이 담겨 있었던 걸까? 그 사과에 진심이 담겼다면 어떻게 유가족 앞에서 사과 한번 없이 아무 일 없었던 듯 구청으로 출근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유가족들을 정문까지 봉쇄하며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구청장을 구명하자며 용산구의회 한 의원은 관내 공공시설에 탄원서를 비치했었고(2022.11.15.), 지난 4월 25일에는 용산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 7명이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상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반대 결의문을 발표했다.

용산구의 정치인들이 큰 참사에 이렇게나 공감력이 부족한데, 구민들의 삶과 문제에는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참담함이 들었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참사
 

'이태원 별 헤는 밤' 조형물 ⓒ 장지혜

 

'이태원 별 헤는 밤' 조형물 ⓒ 장지혜


얼마 전 용산구와 서울시, 서울관광재단에서는 녹사평역과 이태원로 일부 구간에 '이태원 별 헤는 밤'을 테마로 인도에 빛 조형물을 설치했다. 10.29 참사 등으로 침체한 이태원 상권을 살리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설치된 조형물이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인도에서 참사가 발생한 지역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왜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요즘 출퇴근하면서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참사 현장을 매일 지나간다. 버스 신호대기 중 마주치는 참사 현장에는 붙어있는 추모 메시지를 읽는 분,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분, 외국인들에게 참사를 설명하는 분을 보게 된다. 어느 퇴근길, 그곳에서 눈물을 닦는 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20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당시 부실 대응 의혹으로 구속된 피고인 6명 중 4명은 석방되었고, 2명 역시 보석을 청구했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참사가 2022년 대한민국의 수도 한 가운데서 또다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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