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0 16:35최종 업데이트 23.06.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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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5일 도쿄 도심 히비야(日比谷)공원 시세이(市政)회관에 내에 개관한 '영토·주권전시관'의 내부 모습.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하는 데 사용해 온 고문서와 고지도 등이 선전물들과 함께 전시 중이다. 2020년 일본은 영토·주권전시관을 확장 이전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굴욕외교'를 거듭하는 가운데, 일본 자민당 정권은 독도 이슈를 부각하면서 일본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는 분위기다.

19일 자민당 홈페이지에 실린 '제3회 자민당 본부 & 영토주권전시관 견학 투어 개최'에 따르면, 자민당 유세국은 지난 17일 '헌법 개정과 일본의 영토'를 주제로 국회의원들의 참여하에 국립 영토주권전시관에서 행사를 열었다.


추첨으로 선정된 약 30명의 일본 국민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영토주권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영토인 북방 영토, 다케시마, 센카쿠열도에 관해 해설원들로부터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정중한 설명이 행해졌습니다"라고 자민당은 밝혔다.

견학 투어가 열린 영토주권전시관은 다케시마 등의 재점유를 위한 일본의 국가적 의지를 형성하는 이용되는 공간이다. 이런 의미는 영토주권전시관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강경한 반응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정부가 폐쇄 요구한 '영토주권전시관'에서 행사 연 자민당
 

지난 19일 자민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3회 자민당 본부 & 영토주권전시관 견학 투어를 개최(6/17)' 뉴스 ⓒ 자민당 홈페이지

  
2018년 1월 25일 한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부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위해 일본 정부가 동경도 내에 영토주권전시관을 1월 25일 목요일 설치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의 즉각적인 폐쇄 조치를 엄중히 요구한다"라고 경고했다.

역대 한국 정부들은 독도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즉각적인 폐쇄 조치를 엄중히 요구한다"라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비교적 강경한 편이다. 이는 상설 전시관을 통해 독도 재점유에 관한 국민적 의지를 형성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예사롭지 않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그 뒤에도 전시관 폐쇄를 계속 요구했다. 2020년 1월 20일에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영토주권전시관을 확장 이전하고 금일 개관식을 개최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에 폐쇄 조치를 촉구한다"라며 "2018년 영토주권전시관의 개관 이래 우리 정부가 해당 전시관의 즉각적인 폐쇄를 누차 촉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오히려 이를 확장하여 개관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이처럼 강경한 반응을 표시했는데도, 자민당 정권은 그 장소에서 독도와 관련된 공식 이벤트를 열었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을 출동시켜 공개 강연을 열기까지 했다. 한국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시한 셈이다.

"나라를 지키자"는 말의 속뜻
 

미타니 히데히로 중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토주권전시관에서의 행사를 소개하면서 "나라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보다 많은 분들께 전해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 미타니히데히로 페이스북 캡처


영토전시관 이벤트의 연사로 선정된 일본 의원들은 피억압 민족 애국지사들을 연상케 했다. 약소민족 독립운동가들에게나 어울리는 '감동적'인 발언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해양국가 일본'이란 주제로 연단에 선 아리무라 하루코 참의원 의원은 정치철학자 예링의 '영토의 일부를 잃고 침묵하는 국민은 영토의 전부를 잃을 위험을 진다'는 말을 되새기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토나 국가에 관해 소중히 생각하자"라고 호소했다. 다케시마 등을 잃고 침묵하면 일본 땅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일본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한국 본토 강점(1910년)에 앞서 벌어진 일이 독도 강점(1905년)이었다. 독도를 빼앗긴 뒤 영토 전부를 빼앗긴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일본 국회의원이 한국의 역사를 마치 일본의 일인 양 포장해서 참가자들을 자극했던 것이다.

자민당 유세국장인 미타니 히데히로 중의원 의원도 비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위 행사를 간략히 소개하는 6월 18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 "금후로도 이런 기회를 통해 나라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보다 많은 분들께 전해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빌려 '나라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발언은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자극해 이 문제를 더욱 키우겠다는 자민당의 의중을 드러낸다. 일본제국주의의 해외 침략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는 점을 은폐한 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서 대중을 자극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찾자거나 나라를 지키자는 말은 약소민족에 어울린다. 독도 재점유 의지를 다지는 이벤트에 참가한 일본 국회의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침략국의 입에서 나오는 '나라를 지키자'는 말은 '해외로 침공하자'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독도 영유권 분쟁 벌이기 희망하는 일본... 걱정되는 윤석열 정권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자민당 정권이 여론 선전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일본 대중을 다음 단계로 유도하려는 의중을 드러낸다. 지금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서 독도 영유권에 관한 분쟁을 벌이기를 희망한다. 일본 대중의 에너지를 그쪽으로 유도하고자 선전전에 힘을 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국제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일본이 이 문제를 국제 재판으로 갖고 가려는 것은 독도가 자국 땅이라고 확신하기보다는 지금의 역학 구도에서 한국이 자국을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국제재판에 이 문제를 갖고 갈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부의 공식 입장 역시 "한국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국제재판소에서 이 권리를 입증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도 영유권에 관한 다툼이 일어날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와 한국 보수 여론의 동의를 받아내면 된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 여론을 설득하는 데는 인력과 자금이 대거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자민당 정권이 여론 선전전에 박차를 가하는 동기 중 하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을 설득하는 일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자면 일본 여론의 동조가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인력과 자금을 대거 투입해 윤석열 정부와 보수 여론에 대한 설득전에 나설 경우에는 상황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통 큰 양보'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 재판에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확인을 받아오겠다'는 등의 논리로 정부가 도리어 한국민들을 설득하려 할 여지도 없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이어 초계기 사건을 대충 봉합하더니 이제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서까지 일본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윤석열 정부가 독도를 성의 있게 지키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 7일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도 독도 수호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한국 상황이 이 정도이니, 일본 국회의원들이 국립영토주권전시관에서 독도에 대한 도발을 노골적으로 벌이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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