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17:36최종 업데이트 23.06.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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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올 하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 셔터스톡 ⓒ 셔터스톡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고, 올해 3월 조정훈 의원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논의가 촉발되었고,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도입 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본격화됐다.

문제는 정책 제안자들이 모두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제도를 벤치마크 대상으로 언급하며 저임금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정훈 의원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저임금 적용을 없앤 월 100만 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여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선상에서 지난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에서 "싱가포르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올 하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책 추진자들의 진단과 해법은 단순하다. 현재 육아와 가사부담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일·가정 양립을 하기 힘드니 저임금의 외국인 육아·가사도우미를 도입하여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인권과 노동 기준의 척도에서 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국내 노동자들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차별 조치이다.

이는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UN의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조약과 국제연합 헌장의 내용을 무시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차별 철폐와 균등 대우를 명시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110호를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110호를 비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성,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

노골적인 반인권적 차별 행위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노동권 준수, 차별 금지와 균등 대우가 사회(S) 지표의 핵심이라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저임금의 외국인 육아·가사도우미를 도입한 시점은 인권과 차별 감수성이 낮은 1970년대였다. 우리는 인권과 노동권 기준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보자면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ILO의 기본협약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자는 노골적인 반인권적 차별 행위이지 않은가.

2023년 5월 25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개최된 외국인 가사근로자 관련 공개토론회에서도 이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발제자로 나선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교적 최근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노동인권에 대한 국제 기준을 반영해 내국인과의 임금차별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가구 내 노동이라는 특성상 육아·가사노동자들은 인격 모독과 부당한 대우, 성희롱, 성폭력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인권침해와 차별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여 마련하기도 전에 저임금 반값 노동부터 내세우는 것은 결국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인권과 존엄의 사각지대로 내몰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의 차별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21년에는 여성가족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계와 승진 기회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에 항의하며 다른 센터 직원들과 동등하게 처우해줄 것을 요구했다.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3.4.30 ⓒ 연합뉴스

 
지난 4월 30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강제노동 금지 등을 요구했다.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열악한 주거환경, 사업주의 비인간적 처우와 폭력, 취약한 산업안전망이 이주노동자의 생명,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입법기관은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여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고 하는 정치권의 주장은 이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며 차별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값싼 일자리, 더 위험하고 열악한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우는 것은 전체 노동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저가경쟁 속에서 전반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하락하는 '소셜덤핑'과 '바닥으로의 질주(race to the bottom)' 현상을 강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사·돌봄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오랫동안 저평가된 그림자 노동의 영역으로서 노동권, 사회 보호와 산업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왔다. 이에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되어 2022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가사노동자들에게 4대보험, 최저임금, 연차휴가, 휴일 등 근로조건을 보장하도록 하여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한다.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회사에 고용된 가사노동자에 한해 법이 적용되므로 여전히 한계는 존재하지만, 법 시행을 계기로 고령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저임금·저숙련의 가사·돌봄서비스 일자리 개선을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성별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화와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성별 직종 분리 해소와 더불어 여성 저임금 일자리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가사근로자법을 계기로 가사·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고 사회보험과 직업훈련 기회 확대, 산업안전 강화 등을 통해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임금과 노동 조건 하향평준화 우려

성급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이와 같은 일자리 질 개선 노력을 좌초시키고 전반적인 임금과 노동 조건의 저하로 귀결할 위험을 낳는다. 노르웨이는 기준 이하의 임금과 노동 조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전체 노동시장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결과를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가 집중된 산업 부문에 한해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산별 단체협약에 의해 체결된 협약임금과 노동 조건을 산업 전체에 적용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저임금, 저단가 경쟁을 방지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와 같은 견고한 보호막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국내 실정에 맞게 임금과 노동 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막고 가사·돌봄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인증기관에 고용되어 있지 않아 가사근로자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보호하고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질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우선순위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가사 사용인'으로 간주하여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자는 정책은 오히려 소셜덤핑에 의해 가사·돌봄서비스 일자리와 노동 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여성 노동자들의 일·가정 양립을 통한 출산율 제고에도 큰 효과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조혁진 연구위원에 의하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

문제 해결의 방향키를 돌려야 할 때이다. 임신, 출산, 육아가 여성 노동자의 고용과 경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노동시간 단축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육아휴직 활용률을 높이고 공공 보육과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는 여성 노동자의 일과 육아, 일과 가정의 긴장과 갈등을 더욱 강화하여 여성의 노동시장 통합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고 말이다.
 

권혜원 /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권혜원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은 노동시장 이중화 해소, 노동권과 성평등의 의제를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한국산업노동학회 부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성남시 생활임금위원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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