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04:48최종 업데이트 23.06.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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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이츠(In-mates, 수용자)'는 상영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요?"
"도쿄도의 방침이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각 예술가 이이야마 유키(飯山由貴)는 자신의 영상작품 <인 메이츠>를 상영할 수 없다는 '도쿄도 인권플라자'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인권플라자 전시실에서 2022년 8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이야마의 기획전 <당신의 진짜 집을 찾으러 간다>가 열릴 예정이었고 <인 메이츠>는 기획전의 부대 상영작으로 관객과의 대화도 계획되어 있었다.


도쿄도 총무국 인권부는 2022년 5월 <인 메이츠>를 심사하더니 인권플라자측에 상영금지 지시를 내렸다. 작품 속에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라는 발언과 래퍼 후니(FUNI, 본명 곽정훈)가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라고 외치는 가사 등을 문제 삼았다.

도쿄도의 이런 방침에 따라 인권플라자는 2022년 5월 이이야마에게 <인 메이츠>를 틀 수 없다고 최종 통보한 것이다. 이이야마는 여러 차례 인권플라자측과 대화를 나눴지만 소용없었다. 8월 30일 이이야마의 기획전 <당신의 진짜 집을 찾으러 간다>가 열렸으나 끝내 <인 메이츠>는 상영되지 못했고 관객과의 대화도 취소되었다.
 

이이야마 유키 감독. 그의 예술 세계에서 '장애인과 인권'은 중요한 주제다. ⓒ 이이야먀 제공

  
이이야마 유키는 도쿄도의 검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23년에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은 일본의 교과서에도 쓰여있는 사실이고, 작품 속 후니의 랩은 조선인 환자의 정신 상태를 드러낸 구절인데 이를 문제 삼는 것을 수긍할 수 없었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예술계도 이 사태를 근심스레 바라봤다. 전후 가장 나쁜 검열 사태였다는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에는 안세홍 작가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사진과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소녀상>이 출품되어 개막되기 전부터 일본 극우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은 개막 다음 날 "일본 문화청의 보조금이 지급되었다"며 소녀상 전시를 문제 삼았다. 나고야시의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시장도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다"라며 "공적 자금이 사용된 장소에서 (소녀상을) 전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본 정계 실력자가 우려를 말하자 우익의 테러 협박을 핑계삼아 주최 측은 개막 사흘 만에 소녀상의 전시 중단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 그 이후' 기획에 참여한 오카모토 유카 실행위원은 "눈물이 흐를 것 같다"고 했고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예술감독 쓰다 다이스케는 "애끓는 심정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도를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트리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소녀상의 철거에 맞서 작품 전시를 중단했고 일본 시민 사회와 국제 사회는 주최 측에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결국 예술가와 시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소녀상과 위안부 피해자 사진은 8월 7일부터 다시 전시가 되었다.

<당신의 진짜 집을 찾으러 간다>에 담긴 아픈 가족사

이이야마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부터 3년 만에 도쿄도에 의해 다시 검열 사태가 발생한 것에 맞서기로 했다. 2022년 10월 28일 그는 랩을 했던 후니,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해설을 한 도쿄대 교원 토노무라 마사루(外村大), 조각가이며 평론가인 오다와라 노도카(⼩⽥原)와 함께 후생노동성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이이야마가 전시회에서 작품을 놓고 관객과 대화를 많이 나눴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건 처음이었다. 

<인 메이츠>는 26분의 짧은 작품이지만 이이야마의 예술 세계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젊은 예술가 이이야마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13년에 만든 '수증기·연기·하사품'(湯気·けむり·恩賜)은 그의 예술 인생에서 중요한 전기가 된 작품이다.
 

2022년 10월 28일 후생노동성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이야먀 유키.그 옆이 작품에서 랩을 한 후니(FUNI)다. ⓒ 이이야마 제공

 
이 작품은 다이쇼 일왕의 부인 사다코의 사진이 담긴 스크랩북을 500엔에 구입한 게 계기였다. 이이야마는 "사다코가 나라(奈良) 시대의 광명황후가 나병 환자를 욕실에서 치료한 것을 본받아 1930년 나병예방협회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이야마는 나병 환자를 위한 욕실이 남아있는 법화사를 찾아가 목욕을 하고 한센병 요양원을 방문해 죽어서 연기가 나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환자의 말에 큰 인상을 받는다. 이런 조사와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 바로 '수증기·연기·하사품'이다.

이이야마는 '수증기·연기·하사품'에서 '기법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전시물에는 '법화사의 사진과 광명황후의 설화를 묘사하고 그 옆에는 황후가 한센병 환자를 위해 만든 단가의 가사를 적어놓았다. 이 노래를 입장객이 들어올 때마다 SP레코드로 들려주었다. 전시물 뒤쪽 방안에는 수증기와 연기가 피어나는 영상이 돌아가고 어떤 나병환자가 아이를 입양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이야마는 '수증기·연기·하사품'으로 작품에 역사를 담고 그늘진 곳에 있는 병자를 자신의 예술 주제로 맞아들인 것이다.

이이야마는 한센병 환자를 다룬 이 작품을 계기로 동생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이이야마는 청소년 시절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환각과 환청 속에서 사는 동생은 중학생 때 오다 에이치로(尾田栄一郎)의 만화 <원피스>에 빠져 작품에는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친구와 대화하고 마치 '위대한 항해'를 하는 듯 집안을 뛰어다녔다. 말을 걸어도 몸을 잡고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이이야마는 이런 동생의 행동을 병이 아니라 관심을 끌려는 몸짓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수증기·연기·하사품'을 계기로 동생과 부딪히는 게 싫어 나갔던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이야마도 그렇고 가족은 동생의 병을 숨기려고만 했다. 입원한 병원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전문가가 하는 일이려니 생각하고 동생을 달랬을 뿐이다. 그러다 동생을 받아들이면서 동생의 처지를 살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한편 동생은 입원 중 알게 된 잡지를 집에서도 읽기 위해 잡지를 발행하는 NPO법인의 후원회원이 되었다. 거기에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과 관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지역활동을 할 수 있는지 그런 정보가 담겨있었다.

자활을 꾀하는 동생에게는 기억·의식·정체감이 어느 순간 무너지는 해리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동생은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하거나 밤에 거리를 방황했다. 보통 1시간 정도 증상이 계속되는데 이때 동생은 "진짜 집을 찾으러 간다"라고 중얼거렸다. 이이야마는 동생을 막지 않고 그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다. 같이 거리를 헤매고 달렸다. 그는 동생과 함께하는 이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이야마는 동생과 자신의 머리 위에 각각 작은 카메라를 달았다.

"너는 어느 길로 가고 싶어?"
"오른쪽."
"너의 진짜 집이 여기로 가면 돼?"
"그래."
"너는 어떻게 이 길을 알아?"


이런 대화를 나누며 여정은 시작된다. 여행을 마치고 두 사람이 찍은 영상을 겹쳐놓으면 흔하고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된다. 동생을 받아들이고 동생과 함께한 모험을 예술로 표현한 첫 번째 작품이었다. 작품 이름은 동생의 중얼거림에서 가져와 <당신의 진짜 집을 찾으러 간다>로 정했다.

어느 날 언니 이이야마가 만든 작품들을 본 동생은 "나는 환청과 환각을 더 자세히 얘기할 수 없다. 그러면 약이 늘거나 보호실에 갇힌다"라는 말을 했다. 이때 이이야마는 정신질환자는 약물 처방이나 감금의 대상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2014년에 만든 <바다의 관음을 만나러 간다>는 "보호실에 갇힐까 봐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는" 환자의 마음과 머릿속을 말하려한 작품이다.

이렇게 이이야마는 동생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 이들의 인권, 이들에 대한 돌봄 문제로 주제의식을 넓혀갔다. 이이야마의 예술세계에 시나브로 장애인과 인권이라는 주제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운명처럼 만난 조선인 정신질환자 그리고 조선인 래퍼 

이이야마가 <바다의 관음을 만나러 간다>를 만들 때 도움말을 구했던 사람 중에 의학사를 연구하는 학자 스즈키 아키히토(鈴木晃仁)가 있었다. 그는 도쿄대공습으로 없어진 왕자뇌병원(王⼦脳病院)의 진료 기록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실엔 엄청난 자료가 책장 가득 꽂혀있었다. 이이야마는 그 모습에 놀라면서 어쩌면 예술이 기록 안에만 남아있는 정신질환자의 삶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이야마는 이 기록 중에 조선인 환자 2명이 1930년에 입소해서 1940년에 죽었다는 스즈키의 이야기에 사로잡힌다. 

조선인 환자 둘은 "조선인을 죽여라"를 외치며 서로 싸우고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환자 A가 기억하는 자신의 이름은 오카모토 신키치, 환자 B는 이름을 몰랐으나 고향이 전라남도이며 생일이 3월 1일이라는 두 가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이야마는 이들이 관동대학살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추측했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두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게 된 경위가 진료기록에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자뇌병원에 남아있었던 조선인 환자의 진료기록. 스즈키상의 연구실에서 만난 이 기록에서 <인 메이츠>는 시작된다. ⓒ 이이야마 제공


그런데 이이야마의 헤아림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조선인 환자 둘은 "조선인을 죽여라"를 외쳤다. 일본 땅에서 조선인이 조선인을 죽이라고 소리 지를 리는 없다. 이는 관동대학살 당시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을 공격하며 외친 말이다. 이때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이 겪은 마음의 상처는 매우 컸다. 1923년 10월 6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정인영에 관한 기사는 이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일본에 가서 오랫동안 고학을 하던 정인영(鄭寅永,30) 씨는 지난 9월 27일 밤 도쿄도 시모토즈카 쵸우이와(下戶塚町 趣訪) 173번지 무라마츠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다가 새벽쯤 되어 가만히 일어나서 책상 위에 있던 면도칼을 들고 그 집 변소에 가서 머리와 가슴을 함부로 찔러 자살을 하였는데, 그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는 본래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 지난번 진재 당시에 가진 위험을 당하고 신경에 무슨 이상이 생겨서 그가 취한 듯하다는데, 그의 본적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상가리더라.
 
훗날 한성고등학교 교장이 된 이성구도 조선으로 돌아와 교단에 섰는데 학생들이 뒤에서 무리지어 뛰어올 때마다 동경이과대학에 다닐 때 자경단에 쫓기던 기억이 떠올라 움찔움찔했다고 말했다. 살아돌아온 자들이 제대로 회고록을 남기지 못해서 그렇지 후유증의 상처는 이렇게 조각조각 발견이 되었다.

이이야마는 이들을 관동대학살의 후유증에서 비롯된 환자로 짐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읊조리고 중얼거린 노래가 궁금했다. 물론 가사는 없었다.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일본인이고 조선말을 몰라 적을 수 없고 적을 필요도 못 느꼈을 터이다. 다만 "조선인을 죽여라"라는 말은 입원해 있던 내내 반복했기에 남아있는 듯했다.

이이야마는 이 노래의 정체를 곰파고 싶었다. 실마리가 풀린 건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자이니치(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 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다.

"조선인 환자가 정신병원에서 매일 읊조렸던 노래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리랑 같은 노래일 수도 있지만 조선 사람은 한이 많아서 스스로 노랫말을 만들고 흥얼거리는데 이를 '신세 타령'이라고 합니다. 이 가능성도 큽니다."


짧은 문답이지만 뭔가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떠돌다가 정신병원에 들어온 환자가 매일 같이 '신세 타령'을 한다는 건 그럴 듯했다. 실제 환자의 기록을 봐도 그렇게 헤아릴 만했다.  

조선인 환자 A의 진료기록.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오카모토 신키치라고 기억했다. ⓒ 민병래

  
이이야마는 조선인 환자의 노래가 신세 타령일 것이라는 실마리를 찾고 나서 이 사연을 갖고 작품을 만들고픈 의욕이 솟아났다. 마침 국제교류기금이 2021년에 주최하는 <거리를 둘러싼 11가지 이야기>전에 초대 작가가 되자 이이야마는 <인 메이츠>를 만들어 제출하기로 했다. 제작비까지 해결되니 이이야마는 제작에 몰입했다.

영상감독 아오야마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조언을 들어 짧은 다큐멘터리이면서 신세 타령을 중심에 놓는다는 제작 방향을 세웠다. 무엇보다 자이니치 래퍼 후니를 만난 게 큰 힘이 되었다. 후니는 어린 시절 도쿄와 요코하마 사이에 있는 재일 대한기독교 가와사키 교회를 다녔다. 열네 살 때인가? 그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어려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 선배가 랩이 담긴 CD 한 장을 건네주었다. 뜻을 이해하긴 어려웠으나 곱고 깨끗하게 부르는 찬송가와는 달랐다. 투박하고 거친 힘이 느껴졌다. 후니가 랩에 처음 흥미를 느낀 순간이었다. 
   

가와사키(川崎) 시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후니(FUNI) ⓒ FUNI

 
또 다른 계기는 고등학생 시절로 9·11테러가 일어난 해였다. 당시 가와사키 교회의 담임 목사는 김성제, 성탄절을 앞두고 후니는 예배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행사의 리허설에 참여했다. 김성제 목사는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가 지뢰를 없애기 위해서 만든 음악과 함께 사진을 스크린에 한 장씩 띄웠다. 세계무역빌딩이 무너지고 도망치는 모습, 잇달아 팔레스타인 인민이 무차별 폭격을 당해 피 흘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되 미국의 시각만을 좇지 않는 구성이었다.

이때 스크린을 보던 후니는 자신도 모르게 "보아라, 저게 세계의 모습이다"라고 외치며 랩을 중얼거렸다. 예배실에 있던 학생들은 후니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후니는 그날 알았다. 언젠가 래퍼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그 후 후니는 이런저런 회사에서 영업일을 하면서 시인과 래퍼로서 노랫말과 곡을 쓰고 비록 무명이지만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 이런 이력을 지녔으니 조선인 환자가 불렀을 신세 타령을 백년의 시간을 넘어 랩으로 되살리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 2편 한국인 이야기 다큐로 도쿄도와 싸우는 일본인 감독(https://omn.kr/24cj1)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① 이이야마 유키의 프로필. 미술가. 1988년 가나가와현 출생. 도쿄도를 거점으로 활동. 2011년 여자미술대학 예술학구 회화학과 양화전공 졸업. 2013년 동경예술대학대학원 미술연구과 유화수료. 2016~2019 동경예술대학대학원 미술연구과 유화기법재료연구 비상근강사. 주요 개인전: 2020 生きている百の物語 WAITINGROOM(東京) 2017 Words coming out of the wards  ARTHUB三樹荘(福岡)2016 瀬戸内国際芸術祭 2016・アーティスト in 六区 2016 : Vol.1 飯山由貴:生きている百物語  宮浦ギャラリー六区(直島)2015 APMoA Project, ARCH vol.16:飯山由貴 Temporary home, Final home  愛知県美術館(名古屋)2014 あなたの本当の家を探しにいく / ムーミン一家になって海の観音さまに会いにいく WAITINGROOM(東京)2013 湯気 けむり 恩賜  実家 JIKKA(東京)

② <거리를 둘러싼 11가지 이야기>의 일본어 원제는 距離をめぐる11の物語:日本の現代美術(英題:11 Stories on Distanced Relationships: Contemporary Art from Japan)」展이다.

③ 소녀상이 전시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실행위원장을 맡은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2019년 8월 3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서 소녀상 전시 중지를 발표했다. 소녀상뿐만 아니라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전시 전체를 이날 오후 6시부터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에는 소녀상 뿐만 아니라 '천황제' 비판이나 아베 신조 정부 비판이 표현된 예술작품, 안세홍 사진작가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사진 등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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