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2 15:48최종 업데이트 23.04.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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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라 주장하고, 한국이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일본 정부의 ‘2023 외교청서’가 공개된 가운데, 11일 오전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대사대리가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정부가 몸을 낮춰가며 굴욕외교를 계속하는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외교청서 2023>을 채택했다. 11일 공개된 외교청서는 일본 외교가 지향하는 방향뿐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강제징용(강제동원)에 관한 배상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선언한 3월 6일 이전에 윤석열 정부가 국민들에게 한 말이 있다. 1월 12일 강제징용 공개토론회 때 외교부가 했던 말이 있다. 

이날 외교부는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명시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한 역대 사과 담화를 일본이 계승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일본이 역대 사과담화에 대한 계승 의지를 표명하면 사과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였다. 일본 언론도 자국 정부가 직접적인 사과 표명을 하는 대신, 역대 사과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 표명을 하게 될 것처럼 보도했었다. 

그런데 막상 3월 6일에 나온 기시다 총리의 해당 발언은 윤 정부의 예고와 뉘앙스가 다소 달랐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발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속의 사과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 않고, 이 선언을 포함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우파 싱크탱크인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는 3월 28일 자 글에서 기시다 총리의 발언 속에는 '강제징용이 아니라 합법적 징용'이라는 2021년 4월 27일 자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역사인식 결정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것도 포함할 목적으로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던 것이다.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와 배상은 물론이고 '과거의 사과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우회적 사과 표시도 할 뜻이 추호도 없음을 보여주는 그 같은 태도는 이번 외교청서에서도 드러났다. 

외교청서는 제2장 '지역별로 본 외교'에서 "2023년 3월 6일 한국 정부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라며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한 뒤 강제징용에 관한 서술을 끝냈다. 그러면서 한·일 두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을 바로 밑에 배치했다. 3월 6일 선언으로 다 끝났다는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내비친 것이다. 이처럼 외교청서는 한국 정부의 3·6선언으로 한일관계가 건전하게 바뀌었고 일본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윤 정부가 강조한 '역대 사과담화 계승' 운운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운운을 하지 않더라도 윤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리라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1박2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도쿄 긴자의 한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3.3.16 ⓒ 연합뉴스

 
한국 적대시 하는 표현 곳곳에

외교청서는 한국 영토에 대한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독도 지배권에 대한 집요한 의지를 표출했다. 

또 동해라는 명칭은 국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표시했다.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며 국제연합이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들도 일본해라는 호칭을 정식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사용하는 바다이므로 한국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데도 "유일한 호칭"을 운운하며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제징용·위안부나 독도와 달리 타협에 의한 해결의 여지가 적지 않은 바다 명칭 문제에서마저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일본이 정말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상태로 발전시키려 하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처럼 한국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면서도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협력이 필요한 이유와 관련해 외교청서 제1장 '국제정세 인식과 일본 외교의 전망'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갖가지 과제에 대한 대응에서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며 "북조선에 대한 대응 등을 염두에 두고 안전보장 측면을 포함해 일한·일미한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은 논할 여지도 없다"라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안보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역사문제에 관한 강경한 표현들을 외교청서 곳곳에 배치했다.

외교청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부분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에 기초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언급한다. 이 재단은 사과·배상 원칙에 입각하지 않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2018년 11월에 재단 해산을 발표한 일을 두고 외교청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법원의 판결까지 문제 삼았다. 2021년 1월 8일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배춘희 등 12명의 손을 들어준 일 등을 두고 "극히 유감이며,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다.

독도에 대해서도 그런 표현이 사용됐다.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계속해서 다케시마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국의 주권 문제인 군대 배치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면서 '불법 점거'를 운운한 것이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며, 한국군에 의해 불법 점거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표명은 향후 자위대가 영토 수복을 빌미로 독도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만드는 사전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외교청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 대해 만일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이 현금화에 이르게 되면 일한관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하게 지적"했다고 설명한다. "심각한 상황",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하게 지적" 같은 표현들을 서슴없이 사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개 숙인 한국, 미동도 하지 않는 일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긴자구의 경양식집 렌가테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찬을 한 뒤 떠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2023.3.16 ⓒ 로이터=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폭탄주를 제조하고 러브샷을 해가며 역사 문제의 주권을 포기했다. 그렇게 굴욕의 태도를 드러냈지만, 기시다 내각은 조금도 감동하지 않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외교청서 2023>이다.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불법 점거", "심각한 상황" 등의 표현은 한국의 안보 협력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사용할 만한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표현들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쿄 오므라이스집에서 터트린 폭탄주가 '오폭주', '불발탄주'였음이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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