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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약 10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다. 한국은 현재 E-9 비자(비전문취업)를 통해 스리랑카·필리핀 등 16개국 이주노동자의 입국과 고용을 허가하고 있다.

지속되는 저출산으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자, 정부는 대응책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를 더 늘리려 하고 있다. 2023년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는 11만 명인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많은 이주노동자가 만성화된 낙인과 혐오 속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더 열악한 일터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은 오래된 이야기인데, 고용허가제 폐지를 포함한 실질적 변화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올해 겨울 최강 한파를 마주하며, 2년 전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여성노동자의 죽음으로 드러났던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떠올랐다.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고용허가제 폐지는 이주노동자에게 왜 필요한지 등을 이주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월 26일 서울 아현동 이주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보험료 꼬박꼬박 내도 혜택은 못 받는다"
 
우다야 이주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이주노동조합 위원장.
ⓒ 장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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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네팔에서 온 우다야 라이라고 합니다. 1998년 한국에 들어와서 봉제 공장, 가죽 공장, 플라스틱 공장 등 여러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이주노동자로 차별받고 열악한 처우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고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 2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속헹씨가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일이 있었고,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변화가 있었는지요? 

"속헹씨 사망 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및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처우개선을 위한 방침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 필증(임시숙소)을 받은 경우 허가한다는 예외 지침도 마련했습니다. '가설건축물'이란 애매하고 모호한 규정을 같이 만든 거지요.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를 받기 위해 자기 집이나 원룸 사진을 고용센터에 보내고, 허가 이후에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를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용센터에서는 직접 현장을 가지 않고 사진만 보고 고용 허가를 내주지요.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할 숙소는 열악해도 괜찮다는 정부와 사업주의 인식은 변함이 없는 거 같습니다."

- 속헹씨의 경우 한국에 있는 동안 건강보험료는 냈는데 병원은 가보질 않았다고 합니다. 아파도 병원 방문이 쉽지 않나 봅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병원에 가는 것도 사업주 마음입니다. 바쁘면 안 보내주고 다음에 가라는 식입니다. 한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건강보험료를 내면 건강보험에 가입되지만, 5인 미만 농업에서는 직장 가입이 아니라 지역가입자로 가입됩니다.

직장가입자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씩 보험료를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는 보험료를 개인이 전부 부담하다 보니, 적은 월급을 받는 이주노동자에게는 건강보험료가 적지 않아요. 사업주가 농업경영인으로 증명을 하면 건강보험료를 좀 덜 낼 수 있는데 이를 모르는 사업주가 대부분인 데다가 까다롭고 귀찮으니 안 하지요.

고용허가제는 40대 이하로 연령제한이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젊습니다. 다치지 않으면 건강보험을 쓸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건강보험료를 안 내면 비자를 취소해버리니 안 낼 수도 없습니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만 보험의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제가 쉽다'는 이유로...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2022년 6월께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2022년 6월께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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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룸 같은 건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업주들은 겉으로는 숙소와 농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교통이 불편하기에 숙소가 작업장 바로 옆에 있으면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기 더 편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하는 농지 바로 옆에 숙소가 있으면 언제든지 일을 시킬 수 있고, 멀리 가지 못 하게 할 수 있어 통제하기 쉽다는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가건물 같은 숙소인데도 숙식비는 사업주에 꼬박꼬박 내야 합니다. 숙식비 지침이 있는데 임금의 8~20%까지 공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 기존 가건축물에 거주 중인 이주노동자가 희망할 경우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던데요?

"시설이 너무 열악하거나 폭행, 임금 체불을 당하는 등 불합리한 처우를 받으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근로계약 해지에 대해 사업주의 동의를 얻거나 사업주의 위반 사항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해 사업장을 변경한다고 하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CCTV 영상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경우가 많고, CCTV가 있더라도 열람이나 확보를 위해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때도 있지요.

임금 체불 증명이나 초과 노동시간에 대한 증명도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 이 제도로 구제를 받는 경우는 정말 소수입니다."

"이젠 3D가 아니라 4D라고 불립니다"
 
1인 시위 하는 우다야 위원장.
 1인 시위 하는 우다야 위원장.
ⓒ 우다야 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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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받았다고 상담하면 어떻게 합니까?

"피해를 받았을 때 증거를 확보하라 조언하는데, 증거가 없으면 우리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고용허가제에서 사용자는 3년의 취업 활동 기간이 만료된 외국인 노동자를 재고용하고자하는 경우 최대 1년 10개월 내에서 재고용 허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가 재고용 여부를 결정하는 거라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요. 설사 재고용이 되지 않더라도 3년 동안은 거기서 일해야 하잖아요. 사업주가 자기 잘못한 건 생각하지 않고 '나를 신고해? 배신하네' 이렇게 앙심을 품고 더 괴롭힐까 우려가 됩니다."

- 고용허가제로 여러 불합리한 처우를 이주노동자들이 받고 있네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나 노동조건 등 모든 차별이 개선되지 않고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고용허가제에 있습니다. 일하고 있는 사업장이 열악하고 힘든데 옮기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이탈하면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가 되는 거지요. 고용허가제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우리 노동자들이 죽든 말든 이 불합리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해달라는 겁니다. 노동자가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과 업종을 변경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고용허가제도 특별고용허가제, 일반고용허가제로 나뉘어 있는데 중국 동포들에게 적용되는 특별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제한이 없습니다.

인종에 따라 다른 제도를 적용하는 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는 누구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노동법과 ILO, 유엔에서도 인정하는 권리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외국인들이 내국인 일자리를 뺏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해봐야 엄청 좋은 데 가는 거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차피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곳에 갑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망률이 내국인보다 3배 더 높습니다. 주로 3D(dangerous, dirty, difficult) 업종에 일하는데, 지금은 죽음(death)까지 4D라고 합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더 받으려고 하는데, 거기에 따라 처우나 권리도 당연히 향상돼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화가 납니다."

2020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등은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해 위헌소송을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것은 사용자의 안정적 인력 확보를 위한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의 효율적인 고용 관리가 필요하며, 내국인 고용 기회 보호와 근로조건 교란 방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는커녕,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고용허가제 개편을 통해 기존 4년 10개월의 장기근속을 최대 10년까지 늘리고, 농수산물 가공 등에서는 일시적 파견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특히 해당 개편이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추가연장근로시간 일몰제가 연장되는 것이 거의 무산될 위기"에 "지원이 필요한 영세사업장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며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인력'으로서 이주노동자를 취급하겠다는 것을 노골화했다. 모든 구성원의 삶을 보듬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영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주노조, #이주_노동자, #우다야_라이,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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