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 중반 탈옥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가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부통령의 동생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구하기 위해 동생 마이클 스코필드(웬트워스 밀러 분)가 자신의 몸에 교도소 건설 청사진을 문신으로 새기고 형이 수감된 교도소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탈옥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품색깔도 꽤 무거웠다.

지난 2006년에 개봉했던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한국영화 <홀리데이> 역시 1988년에 있었던 지강헌 탈옥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흔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건'으로도 잘 알려진 지강헌 탈옥사건은 영화 <홀리데이>뿐 아니라 드라마 <수사반장>과 <베스트극장>, 시사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역시 소재가 소재인 만큼 매체에 등장할 때마다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뤄졌다.

이처럼 죄수들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탈옥은 그 자체 만으로 상당한 중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떤 매체에서 다뤄지든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1994년에 개봉한 이 블랙코미디 장르의 영화에서는 '탈옥'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오히려 유쾌하게 풀어 나가며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충무로의 괴짜' 여균동 감독의 범상치 않은 장편 데뷔작, 문성근·이경영·심혜진 주연의 <세상 밖으로>였다. 
 
 여균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세상 밖으로>는 서울에서만 25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여균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세상 밖으로>는 서울에서만 25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 (주)익영영화

 
청룡 남우주연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배우

최근엔 개성 있는 외모와 매력을 가진 배우들도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지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 특히 영화배우는 비범한 외모를 가진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따라서 대학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연극배우로 변신해 성공을 거두고 다시 영화판에 뛰어 들어 90년대에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3번이나 수상한 문성근은 충무로에서도 흔치 않은 커리어를 가진 배우다.

1990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를 통해 영화에 데뷔한 문성근은 같은 해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고 강수연 배우와 두 편의 영화를 함께 했는데 그 중 연말에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을 통해 처음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배우 문성근'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된 시기였다.

1992년 SBS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초대 MC를 맡은 문성근은 1993년 김희애와 함께 정통멜로영화 < 101번째 프로포즈 >에 출연했다. 1994년에는 장선우 감독의 문제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통해 두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게임의 법칙>의 박중훈과 공동수상). 같은 해 <그들도 우리처럼>의 연출부였던 여균동 감독의 데뷔작 <세상 밖으로>는 서울관객 25만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출연한 문성근은 1996년 이정현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배출한 영화 <꽃잎>을 통해 커리어 3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문성근은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부산 북구-강서구(을)에 출마했지만 45.2%의 득표율을 얻고도 낙선했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친노인사' 문성근은 김여진, 봉준호, 김제동 등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연기활동에 크고 작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2017년 장준환 감독의 < 1987 >,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드라마 <라이프>,<베가본드> 등에 출연하며 여전히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악역인 민용준을 연기할 예정이다.

상처를 가진 세 남녀의 위태로운 여행
 
 각자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있던 세 주인공은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각자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있던 세 주인공은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 (주)익영영화

 
젊은 시절부터 연극,평론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여균동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과 <베를린 리포트>에서 연출부와 각색, 조감독 등으로 활동하다 1994년 <세상 밖으로>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여균동 감독이 같은 해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배우'로 출연해 그 해 청룡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남우주연상과 남녀신인상을 모두 휩쓸었다).

영화 <세상 밖으로>는 거친 세계에서 살아왔지만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심성을 가진 죄수 성근(문성근 분)과 경영(이경영 분)이 이감도중 탈옥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여행과 모험을 그린 로드무비다. 일부 영화팬들은 <세상 밖으로>를 1984년에 개봉했던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제대로 된 '한국형 로드무비'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세상 밖으로>는 로드무비의 장르적 특성을 지키면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세상 밖으로>의 세 주인공은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량을 갈취하고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흉악범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존재들이다. 혜진(심혜진 분)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을 상징하고 성근은 감옥에 간 사이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 큰 소리치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하룻밤 재워 줄 친구조차 없는 경영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아픔이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관객들 역시 위안을 받는다.

사실 <결혼이야기>를 통해 1993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은 심혜진에게 두 남자주인공에 비해 분량이 많지 않은 <세상 밖으로>는 그녀의 위상에 썩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심혜진은 두 남자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아픔이 있는 두 남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혜진 역을 멋지게 소화했고 이를 통해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90년대에는 신해철이나 공일오비처럼 현역가수들이 영화음악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세상 밖으로>는 시나위 출신의 보컬리스트 김종서가 음악을 맡았다. 김종서가 직접 만들고 부른 메인 테마곡 <세상 밖으로>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심혜진도 극 중 혜진의 테마인 <삶을 향해>를 직접 불렀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OST에는 이장희의 <그건 너>를 헤비메탈 밴드 블랙 신드롬이 락으로 리메이크한 버전도 실려 있다.

자신이 만든 영화에 직접 출연하는 감독
 
 '연기하는 감독' 여균동 감독은 두 주인공의 탈옥소식을 전하는 TV뉴스 앵커로 등장했다.

'연기하는 감독' 여균동 감독은 두 주인공의 탈옥소식을 전하는 TV뉴스 앵커로 등장했다. ⓒ (주)익영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시작으로 <박봉곤 가출사건>과 <주노명 베이커리> 등에서 배우로 출연했던 여균동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카메오 또는 주연으로 출연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린 작품은 여균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세상 밖으로>였다. 여균동 감독은 <세상 밖으로>에서 성근과 경영의 탈옥 소식을 전하는 TV뉴스 앵커로 출연했다.

한양대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권해효와 고 박광정은 90년대 <사랑을 그대 품 안에>와 <신고합니다>,<미스터Q> 등 여러 드라마에 함께 출연해 콤비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세상 밖으로>에서도 난폭운전을 하면서 심혜진에게 성추행을 하는 양아치 무리로 출연해 세 주인공에게 참교육을 받았다. 양아치 무리는 총 4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11년 후 시트콤 <안녕!프란체스카>에서 심혜진과 커플연기를 선보였던 이두일도 있었다.

<세상 밖으로>는 신인이었던 여균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지만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면면도 상당히 쟁쟁한 편이다. 각색에 참여한 이상우 감독은 연우무대와 차이무 등을 이끌었던 연극 연출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이고 김성수 감독도 훗날 <비트>와 <태양은 없다>,<아수라> 등을 연출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의 조연출 중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리틀 포레스트>,<교섭>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세상 밖으로 여균동 감독 문성근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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