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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이어 며칠 전 딸들과 함께 두 번째 뮤지컬 <물랑루즈>를 관람하고 늦은 밤 귀가했다. 인천인 우리 집 가까운 역에서 출발하여 총 4번의 환승을 거쳐 어렵게 도착한 서울 공연장이지만 딸들의 표정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환하게 반짝거렸다.

한창 뮤지컬에 빠진 딸들은 이미 공연 두서너 시간 전에 도착하여 뮤지컬 코스프레로 자신의 열정을 취향껏 뽐내는 다른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세련된 감각과 익숙한 태도, 뮤지컬 배우를 향한 관심과 응원은 공연 전 로비까지 한껏 달아오르게 하였다.

이해하게 된 것
 
뮤지컬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젊은 관객들.
 뮤지컬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젊은 관객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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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젊은이, MZ세대들 속에 나와 같은 연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딸들의 성화에 이끌려 온 어설픈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붉은빛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캐스팅 보드 앞, 사진을 찍기 위한 줄 서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굿즈를 사기 위한 판매대뿐만 아니라 오페라글라스 대여대까지 젊은이들이 꽈리를 틀듯 이어져 있었다.

고가의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몇 초 안에 티켓팅이 마감되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대단한 힘을 지닌 공연임을 알기에 뮤지컬에 문외한인 나는 뮤지컬을 위한, 특정 배우를 향한 그들의 팬덤 문화가 대단해 보였다.

뮤지컬 공연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하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 MZ세대들을 바라보니 그들이 낯선 듯 익숙한 듯 다가왔다. 트렌드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는 MZ세대들, SNS 활용에 능숙한 그들은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와 비주얼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고 익히 들어왔다.

유튜브와 인스타에 몰두하며, 공정하지 않은 기업은 반드시 퇴출시키려는, 자산과 소득이 적은 나이임에도 유통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우리 아들과 딸, MZ 세대들! 386세대의 자식들이 자라서 Z세대가 되었다.

고가의 티켓을 사기 위해 편의점 알바로 번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막내, 'N차 관람'이라는 말로 보고 또 보고, 다시 또 볼 거라는 첫째.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요즘 세대들의 특징을 우리 딸들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한창 뮤지컬 공연에 빠져 관람하는 중, 옆 자리에 앉은 둘째가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무슨 일인가 쳐다보니, 오페라글라스를 잡은 내 팔의 각도가 너무 벌어졌으니 양팔을 모으라는 것이다.

내가 편하게 오글을 들어 올릴 때, 뒷 자석 누군가는 시선의 방해를 받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거였다. '아~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상대를 배려한다고?' 같은 공간에서 뮤지컬을 감상하면서도 딸들에게서 느껴지는 색다름이었다. 나는 오늘 새로운 것을 또 배웠다.

성인이 된 딸들을 보며 변화하는 사회를 배우고, 유행에 민감한 그들을 통해 거리를 좁히려 애쓴 지 꽤 되었다. 딸들이 전해 주는 것들은 다양하다. 신조어는 물론이고, 의식의 변화, 관계의 변화, 태도의 변화 등등. 날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퍼날라 준다.

지금은 흔히 사용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도 2년 전 큰딸에게서 처음 들었다. 당시 그 단어가 낯선 우리 또래(50대)에게 '가스라이팅'의 뜻(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설명해 준 기억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

20대와 50대, 젊은이와 기성세대, 자식과 부모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대체로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딸들의 먹방 시청과 스포일러에 대한 예민함처럼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딸들은 식단 관리하느라 한창 예민할 때, 다이어트로 허기져 힘들어할 때면 예외 없이 유튜브로 먹방 프로를 즐겨 본다. 어마어마한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것도, 후루룩 쩝쩝 소리 내며 먹는 것도 나는 부담스러워 감당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그 영상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꾸역꾸역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만 봐도 구토가 나올 정도로 이입이 되어 먹방 소리가 마치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괴물이 내는 소리처럼 들려 자리를 피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어렵다. 이런 나를 아이들 또한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스포일러란 말이 언제부터 예의와 결부되어 회자 되었을까? 단순히 이야기의 주요 내용을 미리 말하는 것이 실수로 치부되지 않는다. 딸들은 '극악한 일'인 것처럼 귀를 막고 눈을 흘기기까지 하니 말이다.

내 또래 친구들끼리는 영화나 소설을 본 후 감상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미덕으로까지 여기던 행동을 재미를 강탈하는 매우 무도한 일로 여기니 스포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이 너무 예민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딸들은 나의 둔감성에 답답해할 테지만 말이다.

50대 엄마는 세대교체 중
 
사진 촬영이 가능한 시간에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 뮤지컬 무대를 배경으로 찰칵! 사진 촬영이 가능한 시간에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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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공연은 절정을 향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화려하게 빛이 났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뮤지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시아 초연을 빛내는 듯 바다 건너온 빨간 풍차와 거대한 코끼리까지 더해 무대의 네온사인은 최고로 반짝였다.

드라마보다 더 빛이 나는 뮤지컬 여배우의 매력에 빠져들고, 뮤지컬계의 최고라는 배우의 연기와 노래를 드디어 마주했다. 익숙한 노래와 화려한 춤 동작에 취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마 이 공연도 딸들이 아니라면 경험하지 못했으리라.

딸들과 함께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들어 환호성을 지를 때도 혹시라도 민폐 관객이 될까 봐 고개도 조심히 흔들며 브라보를 외쳤다. 그것이 그들이 중시하는 센스 있는 관람 태도라면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늦은 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딸들은 뮤지컬에 대한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노래를 다시 듣고, 배우의 인스타를 방문하고, 후기를 공유하며 즐기기를 계속 이어갔다.

딸들의 모습을 보며 지하철 안을 둘러보니 비슷비슷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 그들의 생각과 취향이 궁금할 때면 딸들을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느라 숨이 찰 때, 딸들은 징검다리가 되어 숨 고를 시간을 마련해 준다. 

어린 딸들의 사회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딸들이 어느새 저만큼 앞서 걷고 있다. 덕분에 나는 한창 세대 교체 중이다.

태그:#딸들과 함께, #세대 교체 중, #뮤지컬 감상,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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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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