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쟁의행위를 하면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노란봉투법' 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연내 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정부·여당·재계의 반대가 거세다. 노란봉투법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편집자말]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지난 2020년, 택배 노동자 16명이 줄줄이 과로로 죽었다. 각종 심야·새벽배송으로 인한 하루 15시간 이상의 과노동, 택배사의 갑질로 하루 4시간 이상 무료로 해온 '까대기' 택배 분류 작업, 심지어 택배사로부터 산재 보험 제외 신청을 강요당하던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코로나로 택배가 폭발적으로 늘고 비대면 사회가 앞당겨졌지만 노동 착취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온 사회가 확인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과 택배사들은 그 해 12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었다. 이후 2021년 6월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택배사 측은 택배 기사들의 택배 분류작업을 없애고 노동 시간을 하루 12시간, 주 60시간 아래로 줄이겠다는 등 처우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도록 분류 작업을 없애 노동 시간을 축소하려는 회사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2021년 12월 28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원청인 CJ대한통운은 하청 업체인 대리점과 계약돼있을 뿐 자신들과는 근로계약관계가 없다며 택배 노동자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해가 넘어가도 똑같았다. 2022년 2월 10일, 택배 노동자들은 대화를 요구하며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다. 파업은 2022년 3월 2일 노사 합의가 맺어지기까지 장장 65일간 이어졌다.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건 수십억 손배였다. CJ대한통운은 최근 유성욱(58)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비롯한 조합원 88명에게 총 2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유성욱 본부장은 지난 11월 30일 국회 앞에서 다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택배 기사들처럼 특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유 본부장은 올해만 벌써 세 번째 단식이다. 그는 앞서 지난 2월 파업 때 10일간 단식했다. 지난 8월엔 파업 이후 노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해고 상태에 있던 조합원의 복직을 위해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나흘간 단식했다. 현재 국회 앞에는 유 본부장 외에도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강인석 부지회장, 이김춘택 사무장 등 470억 손배를 당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박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위원장까지 6명이 9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국회도, CJ대한통운도 왜 노동자엔 약속 안 지키나"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단식 농성자 중 맨 오른쪽이 유 본부장. 그 옆으로 차례로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강인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단식 농성자 중 맨 오른쪽이 유 본부장. 그 옆으로 차례로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강인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단식 8일차였던 지난 7일 밤, 국회 앞에서 유성욱 본부장을 만났다. 영하의 날씨 속에 명함을 건네 받은 유 본부장 손이 얼음장처럼 찼다.

- 단식 8일차다. 몸 상태는.

"괜찮다. 단식은 이골이 나서. 의사 선생님도 1년에 세 번은 몸에 무리가 간다고 안 된다 하셨는데. 아직 괜찮다."

- 또 다시 단식에 들어간 이유는.

"우리가 노조 설립한 지 벌써 6년째다. 택배노조가 전체 7200명, 이중 CJ대한통운 조합원이 2500명 정도 된다. 그런데도 우린 원청인 CJ대한통운 코빼기도 못 본다. 우리가 자기들과 관계가 없다는 거다. 하청인 대리점주들과 교섭해봐야 맨날 돌아오는 답은 '권한 없음', '책임 없음', '불가함'이다. 그럼 도대체 우린 누구와 교섭을 해서 노동 조건을 개선하나. 우리의 노동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건 원청 CJ대한통운이다. 우리도 원청을 만날 수 있도록 노조법 개정해야 한다."

- CJ대한통운으로부터 20억 손배소를 받았다.

"10월에 소장을 받았다. 88명 조합원과 택배노조가 대상이었다. 내용이 황당했다. 회사는 우리가 지난 2월에 19일간 본사 점거 농성을 한 것에 대해 손배를 제기했다. 3월 2일 마무리된 65일간 파업은 합법 파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배소 내용에는 65일 파업에 대한 손실도 포함돼있더라. 어이가 없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8년 울산 등에서 택배 분류 작업 없애라고 벌였던 파업 이후에도 CJ대한통운은 우리에게 18억원의 손배를 냈다. 하지만 1심에서 우리가 완전히 승리했다. 회사는 항소도 안 했다. 그래 놓고 또 이렇게 손배를 때리는 거다. 그냥 노조법 악용해서 노조 죽이겠다는 거다."

- 지난 파업 당시 노조 요구는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였다.

"그렇다. 지금도 현장은 변한 게 없다. 답답하다."

- 정기국회가 오는 9일 끝난다.

"물론 대놓고 반대하는 여당도 잘못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또 약속을 어기고 있다. 정기국회 안에 노란봉투법 처리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왜 또 약속 안 지키나. 왜 노동자와 한 약속은 CJ대한통운도 안 지키고, 국회도 안 지키나. 오늘(7일) 법안소위가 두 번째 열렸는데, 그것도 물 건너 갔다더라. 화가 난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8일째 단식하는 동안 이재명 대표, 박홍근 원내대표와 면담 한 번 못했다."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지난 7일 밤, 단식 8일차인 유성욱(58)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관련기사]
[노란봉투법①] 유최안 "죽음 결심했었다...470억 손배? 더 잃을 것도 없다" http://omn.kr/213uj
파업 30일 맞는 CJ대한통운 택배..."1700명 추가 투입"에 갈등 격화 http://omn.kr/1x227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주70시간' 택배... 아빠를 잃었다" http://omn.kr/1zlq8
노란봉투법 비공개 회의록 보니... 정부 "노동3권이 절대적 권리?" http://omn.kr/21w5r

태그:#노란봉투법, #유성욱, #CJ대한통운, #손배, #택배노동자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