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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거리, 시설, 쪽방과 고시원 등지에서 살아가는 홈리스의 삶과 닮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회 단체들로 구성되는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은 그해에 돌아가신 홈리스분들을 추모하고, 사망으로 드러나는 홈리스 인권, 복지의 현실을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들을 진행해 왔습니다. 올해 역시 기획단 내 여성팀, 인권팀, 주거팀, 추모팀을 꾸려 각 의제별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각 팀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기사로 전합니다.[기자말]
짐승들은 자기가 자는 곳을 안 가르쳐 준대요. 
그게 자기한테 불리해질 수가 있다는 거야. 
여자가 어디서 잔다고 얘기가 돌면 
거기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 거고...

- 2022,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 인터뷰 중

한 여성 홈리스에게 잠자리를 어떻게 해결하냐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녀는 거리 생활을 정글의 삶에 비유했다. 눈에 안 띄게, 안 보이게, 없는 듯 지내기가 그 나름의 생존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예상 가능하듯 거리는 여성에게 더 험난하다.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는 거리, 시설, 쪽방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여성 홈리스의 주요 거처는 이들 장소와는 사뭇 다르다. '거리 노숙' 상태의 여성 홈리스라 하더라도 찜질방, PC방, 패스트푸드점 등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에 주로 머문다(2010, 이성은·고은정,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영향 평가).

고정적인 잠자리 대신 잦은 이동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이 거리에 머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행 실태조사 범위는 여성 홈리스의 동선을 포괄하지 못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홈리스는 1만4404명, 그중 여성은 23.2%인 2244명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 홈리스의 존재가 적은 것이 아니라 소극적 실태 파악이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가리는 것이다.

미흡한 통계에 기반한 정책 탓에 여성 홈리스가 갈 곳은 점점 사라진다. 배제의 악순환이다. 1~2개월 일시적인 잠자리를 제공하는 '노숙인 일시 보호시설'의 경우 남성이 이용 가능한 곳은 서울역·영등포역 같은 홈리스 지원체계 밀집 지역에 6개소가 있지만, 여성이 이용 가능한 곳은 1개소뿐이다. 그마저도 홈리스 밀집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있어 접근성이 취약하다.

뻔한 위험 앞에 안전을 지키는 것은 여성 홈리스 각자의 몫이 됐다. 어두운 밤에는 잠들지 않으려 계속 걷는다. 대신 날이 밝으면 화장실에 기대어 앉아 쪽잠을 청한다. 때로는 상가 건물에서 무상의 노동을 제공하고 잠잘 곳을 확보한다. 남자처럼 머리를 자르고, 우산 여러 개를 펼쳐 잠든 모습을 숨긴다. 모두 현행 홈리스 지원체계가 보려하지 않는 여성 홈리스의 모습이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여성 홈리스 심리지도 중 일부. 서울역 대합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홈리스들과 홈리스의 눕는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의자 디자인이 그림으로 표현됐다. 역사 외벽을 따라 우산으로 가린 박스집이 보인다.
▲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전시 중, 로즈마리의 작품(부분)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여성 홈리스 심리지도 중 일부. 서울역 대합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홈리스들과 홈리스의 눕는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의자 디자인이 그림으로 표현됐다. 역사 외벽을 따라 우산으로 가린 박스집이 보인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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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지원체계 속에서 미끄러지는 여성 홈리스

거리 홈리스와 집 구하기 여정에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가장 만만하고 든든하게 활용한 건 임시주거지원 제도였다. 거리홈리스와 노숙위기 계층을 대상으로 지자체에서 단기 월세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은 관계를 쌓아오던 20대 여성 홈리스와 함께 임시주거지원을 위해 담당기관으로 향했다. 센터로 가는 길 위에서 어떤 기준을 우선해 방을 고를지 수다를 나눴다. 잠금장치는 잘 작동하는지, 유사시 퇴로는 확보돼 있는지, 이웃은 어떤 사람들인지, 창문으로 방 내부가 노출되진 않는지, 근처의 무료급식소는 밥맛이 좋을지 등등... 전입신고를 마치면 다음 스텝으로 함께 수급신청도 해보자고 했다. 임시주거지원은 타 복지제도로 나아가는 발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뿔싸, 첫 발판부터 우지끈 부서졌다.
 
노숙인일시보호시설 직원 A : 이분은 젊고, 여자고, 지적장애 있으시고, 알코올 문제 있으시고 저희가 감당할 수 없을 수도있어요. 일례로 저희가 방을 안내해드리고 사례관리를 하려던 도중에 동네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나요. 남자들한테 당한다든가. 근데 그런 거를 저희가 통제할 수가 없어요. 여성을.

활동가 B : 여성들은 다 쉼터나 공동생활시설로 안내하나요?

노숙인일시보호시설직원 A : 무조건은 아닌데, 이런 케이스는 지금 임시주거지원 대상자도 아니에요. (...) 임시주거지원 보면 제일 크게 뭐가 돼 있어요. 자립, 자활이 혼자 가능해야 해요. 그리고 공적서비스 연결을 해서 혼자서 생활이 가능해야 하거든요?

- 홈리스행동 활동 기록, 2020년 2월, 노숙인일시보호시설 임시주거지원 상담 과정 녹취

결과적으로 나와 동행한 여성 홈리스는 임시주거지원 신청을 거절당했다. 이상했다. 임시주거지원을 위한 상담 점수표에는 여성인 경우, 고시원 등 거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가점을 둔다. 오히려 남성에 비해 더 빠르게, 긴급한 이유로 임시주거지원이 돼야 마땅하다고 규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 분은 임시주거지원 대상자도 아니다'라는 직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절은 반복됐다.

이유는 '안전'이었다. 담당 직원의 주장은 이랬다. '임시주거지원의 거처로 활용되는 건물은 민간의 쪽방과 고시원이 대부분이다. 이곳 주민은 남성 다수로 구성돼 있다. 화장실과 욕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기 어려운 건물 구조 특성상 젊은 여성이 지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다른 대안을 묻자 장애인 시설이나 여성 쉼터 등 홈리스 지원체계가 아닌 타 지원체계의 시설입소를 권유했다.

나와 동행한 여성은 과거 원치 않은 시설 경험 탓에 다시 시설로 돌아가는 것은 애초 계획으로 고려하지 않던 터였다. 재차 반문하자, 담당 직원은 테스트를 제안했다. 임시주거지원에 앞서 응급 거처를 제공해 줄 테니, 매일 약속한 시간에 담당 직원과 만나 신뢰를 주면 임시주거지원을 신청하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제안은 임시-임시주거지원인 셈이다.

잠시 혼란해진 머리를 정리하고 나니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이런저런 취약함을 이유로 검증을 요구받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홈리스 당사자가 아니라 지원체계가 미리 헤아릴 일 아닌가. 아무래도 부당했지만 직원은 자의적인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삶에서 주요하게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며 인생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전시 중, 난초의 작품 삶에서 주요하게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며 인생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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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성 다수의 주민으로 구성된 공간에 대한 위협과 불편은 여성 홈리스 당사자 스스로도 익히 잘 아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성 전용 고시원 입소를 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 하나의 고시원을 찾아 한 여성 홈리스의 입실을 조력했다. 계약금도 보냈다. 이번에는 홈리스 지원체계가 아닌, 단체(홈리스행동)의 자체 비용으로 월세를 지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금자명의 '홈리스'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계약을 취소하자는 것이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다른 입주자들로부터 민원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보호자가 있다면 입소를 고려해 볼 수 있단 말도 뒤따랐다. 홈리스 상태를 이유로 거절하는 것은 차별이고 부당하다고 이야기해도 민간의 영업장에 별달리 효과는 없는 항의였다. 이렇듯 여성 홈리스는 홈리스를 위한 공간에서도, 여성을 위한 공간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곤 한다. 이중의 구별 짓기 속에 놓인 셈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여성 홈리스는 시설로 연계하는 공식이 노숙인 지원체계 현장에는 통용되고 있다. 알코올·약물중독·우울증 등 정신질환 유병률의 경우, 여성 홈리스는 42.1%로 남성(15.8%)보다 많다(2021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여성 홈리스의 정신질환은 거리로 내몰린 원인이자 고된 거리 생활의 결과이기도 하다. 남성과 같은 노숙 상황에 놓여 있어도 정신질환을 이유로, 또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독립 주거가 아닌 타 지원체계 속 시설로의 연계가 더 잦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으로 여성 노숙인 생활시설 거주자는 매우 장기간 거주하는 특징을 보인다. 여성 노숙인 생활시설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이의 비율은 43.2%로, 이는 남성 노숙인 생활시설(18.9%)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2021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노숙인 지원 기관을 가면 시설 입소부터 들이미니 참 속이 시끄럽다. 아예 지원기관 방문을 삼가기도 한다. 많은 여성 홈리스가 노숙인 지원체계 속에서 미끄러진다. 각자, 흩어져, 나름대로 살아남고 있다.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그렇고 잘 때도 그렇고 먼저 둘러봐요.
여기 여자가 나 혼자인가, 둘러봐요.
누가 옆에 있으면 좋으니까. 

- 2022,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 인터뷰 중
 
살아온 집에 대한 심리지도 중 일부. 이웃과의 갈등으로 떠나온 집에 대한 묘사가 담겼다. 사계절은 자녀를 양육하기 적절한 환경을 찾아 이사를 했다.
▲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 전시 중, 사계절의 작품(부분)  살아온 집에 대한 심리지도 중 일부. 이웃과의 갈등으로 떠나온 집에 대한 묘사가 담겼다. 사계절은 자녀를 양육하기 적절한 환경을 찾아 이사를 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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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는 예년에 없던 팀이 하나 생겼다. 여성팀이다. 앞서 살펴본 여러 조건으로 인해 여성 홈리스는 모일 공간을 갖지 못했다. 문제의식은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 홈리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를 시작으로, 여성 홈리스 6인이 모여 그리고 쓴 '집'에 대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여성 홈리스를 가리는 장막을 여성 홈리스 스스로 걷어내 보려 한다.

그간 IMF 남성 실직 가장의 문제로만 이해되고 짜여온 홈리스 정책의 틀거리를 여성 홈리스의 시선으로 다시 톺아보고자 한다. 가정폭력과 가족해체 등 남성 홈리스의 경로와는 달랐던 삶의 경험, 비정규·저임금 노동을 하필이면 너무나 열심히 해왔기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던 역사들을 나눴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 여성 홈리스들의 만남을 바탕으로 주거·노동·의료·급식 등 홈리스 지원체계 전반이 젠더 관점을 반영해 새롭게 짜이길 기대한다. 곁눈질로만 지나치던 여성-홈리스가 이제 서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 : 2022년 12월 19일 19시, 아랫마을(용산구 청파로 320-28,1층)
*여성 홈리스 전시회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 2022년 12월 22일 13시, 서울역광장
*2022 홈리스 추모문화제 2022년 12월 22일 19시, 서울역광장

 
2022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22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 2022 홈리스추모제 포스터 2022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22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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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재임씨는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여성 홈리스, #홈리스, #노숙, #거리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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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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