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다가온 2022년, 현재 지구촌은 전쟁-전염병-에너지난-기후위기 등 각종 전 세계적인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2월 24일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그 주변국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연가스를 쥔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잠가버리고 '에너지의 무기화'를 선택했다. 또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우리는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과 같다"는 발언을 통해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만일 지구에서 어느날 갑자기 전기가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인류가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이나 기후위기, 천재지변 등으로 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특히 한국처럼 전체 전력의 93%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는 더욱 치명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존재 자체를 당연하게 누리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12월 4일 방송된 KBS 1TV <다큐 온(On)>에서는 '에너지 위기-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편을 통하여 우리 곁에 현실이 되어버린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조명했다.
 
유럽의 선진국 중 하나인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 천연가스로 난방을 했던 독일의 주택들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겨울을 앞두고 특히 소득이 낮은 서민들의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 독일인이 사랑하는 맥주 역시 제조를 위해서는 전기와 천연가스가 필수인데다, 원료의 수송비, 원자재 가격, 포장비까지 줄줄이 급등하면서 주류업계가 위기에 처해있다.
 
독일은 베를린같은 대도시도 야간이 되면 쇼핑몰은 물론이고 일부 신호등과 공공명소까지 소등할 만큼 최대한 전기를 절약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 또한 독일은 러시아에서의 천연가스 공급이 막히면서 미국-중등 등 다른 나라에서 가스를 수입하고 있으며 유사시에는 보유하고 있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겨울기간 동안 임시적으로 재가동하여 전기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독일 정부는 가스 소비를 20%를 감축하고, 공공건물의 온수공급을 중단하며, 전기 소모량이 많은 기업에는 '에너지 효율화' 의무를 부과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쟁이란 멀리있는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 요금 인상'같은 일상 속의 변화를 통하여 그 심각성을 대리 체험하고 있는 것. 에너지난이 장기화되면서 독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자칫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의 재림이 오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석유파동 당시 대한민국도 그 직격탄을 맞은 바 있다. 1979년 국내 물가 상승률은 무려 30%에 이르렀고 원유 가격이 4배나 상승하여 승용차 공휴일 운행금지가 도입되었다. 서민들에게는 석유와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1970년대 오일쇼크 상황과 비교하여 "당시에는 석유만 부족했지만 지금은 석유, 가스, 전기 등 모든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에너지 대란이 과거 오일쇼크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 나라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약 1370억 불(한화 181조 8675억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품목의 약 22%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다. 올해는 에너지 가격이 작년보다 더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올해 3분기 에너지 수입액이 지난 1년 동안 수입한 금액을 상회할만큼 상황이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에너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무기화의 여파로 우리 나라도 대 EU 수출둔화, 에너지 수급 불안, 산업생산 차질 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알고 돌아보면, 한때 번영의 상징처럼 상징되며 대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는 과도한 인공조명들이나 화려한 풍경들이 웬지 불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에너지 사용량의 63%는 역시 산업 부문이다. 인천 서구의 한 공단지대에는 약 100여 개의 도금업체가 입주해있다. 그동안 업체들이 분담해서 내던 전기요금료가 1년 사이에 엄청나게 폭등하면서 제조업체들은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다. 업체 관계자들은 만일 정전이라도 한번 발생하면, 제조 중인 라인에 있는 모든 물품이 불량품이 되어버리고 그 손실이 어마어마하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제 에너지를 줄여야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 에너지 감축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많다. 그런 기업들을 위해서 저소비 고효율 구조 전환을 위한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체에서 고효율 설비로 바꾸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경기도 화성에서 선박 부품을 열처리 가공하는 한 업체는 그 특성상 공정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업종이었다. 업체는 몇 년 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고효율 장비로 교체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생산량이 증가했고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얻었다.
 
에너지 비용이 제조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뿌리 기업들은 노후된 설비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원가를 크게 낮출수 있다. 영세 기업들은 최근들어 설비 교체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현재 정부는 '뿌리기업 EERS 고효율 기기 보급'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난해보다 약 4배 정도 상향된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한 뿌리 기업들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기존 대비 약 35%(평균 약 5700만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우리 나라의 전기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와 비교하면 전기요금은 일본이 우리의 2.5배, 독일은 3배 정도가 더 비싸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에너지 소비 절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이 결국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에너지 위기, 엔화 약세, 지진과 코로나 등 재난재해까지 겹치며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역시 세계 주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전기료 인상을 피할수 없었다. 세계적인 화석연료가격의 급등과 함께 엔저 현상까지 겹친 일본은 전력회사와 가스회사등이 가격 인상을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시다 정권은 에너지의 소비자 가격을 인하하기 위하여 수조엔 규모의 경제 대책 중에서 전기-가스요금과 휘발유 가격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니카타현 아가노시에 위치한 놀이공원 '선토피아 월드'는 46년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명소지만, 최근 에너지난 때문에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연간 전기요금이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결국 고객들의 여론조사를 거쳐 요금을 인상해야했다. 관계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놀이공원을 유지하기 위하여 전기료 절감을 위한 각종 조치를 단행했고, 고객들도 기꺼이 양해했다고.
 
일본 나가노현 인근에 위치한 아쓰다카게 고원에서는 청년 연구팀이 에너지 비상상황을 대비한 생활실험을 진행중이었다. 팀원들은 태양광 간이 발전시스템으로 100% 에너지를 생산하고, 생활용수 역시 한번 사용된 물을 정수장치로 여과해서 재사용하는 등 완전한 오프 그리드(Off-grid)로 자급자족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전기 역시 기후 등 각종 변수 대비하여 최대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직접 생활 체험을 통하여 참가들의 절약에 대한 노하우, 대체에너지에 대한 인식 등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각종 재난 위기 상황에 대처할수 있는 생활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최종목표였다. 가와시마 다케시 팀장은 "우리 행동의 변화 자체가 태양광이나 원자력에 필적할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인간의 절약과 효율이 제3의 에너지라는 것.
 
2021년 8월, 용인의 한 아파트에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입주민인 박중규씨 가족은 아찔한 경험을 하고 난후, 실내 적정온도 유지, 생활 가전용품 사용 규칙 등 자체적으로 정한 에너지 절약 대책을 거실에 붙여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박중규 씨는 "처음엔 많이 불편했지만 내용이 쉽고 실천할 수 있는 것만 추렸다. 불편해하던 아이들도 지금은 잘 따라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노후된 시설을 LED 등 고효율 설비로 교체한 이후 전기요금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처음엔 부정적이던 입주민들도 소비 전력이 약 73%까지 절감된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과거에는 늘 관행적으로 개방되어있던 신선식품 냉장 코너에 모두 문을 설치했다. 이전에는 냉기 유출로 상품의 신선도가 유지되기 어려웠다면 문을 설치하면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하고 에너지도 절감할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도 문을 여닫아야하는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한다는 반응이다.
 
전국의 개방형 냉장고는 약 50만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소모되는 전력만 줄여도 연간 전력량 1,780GWh로 48만 가구의 1년치에 해당하는 전력량을 절약할 수 있다. 문 설치 전과 설치 후로 비교하면 하루 30%에서 최대 50%까지 전력량이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용으로 치면 1년에 약 25억 원에 이르는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LNG 냉열(-162도의 액화 천연가스를 0도로 기화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은 최근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냉각 소요시간이 짧고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것이 LNG 냉열의 장점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업체는 자체적으로 LNG 냉열을 일정 온도 유지가 중요한 냉장식품 물류창고에 활용하며 전력소비를 대폭 줄였다. 특히 온도나 습도 변화에 민감한 의약품을 보관하는데 활용도가 높은 초저온 창고(영하 70도 이하)를 운용하는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 장점이 극대화된 사례가, 바로 관리온도가 제각각인 코로나19 백신을 초저온 창고를 통하여 안정적으로 대량저장할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전기 냉동기를 LNG 냉열로 대체하면 기존 대비 전기 사용량의 50~70%를 감축하는게 가능하다.
 
현재 겨울철 에너지 사용량 10% 절감을 목표로 전방위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기업들이 앞장서서 자발적이고 의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하야 실천한다면 에너지 효율성 개선은 상당히 진척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에너지 수요 시대를 맞이하여 가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효율과 절약'이고, 발전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와 기업, 시민이 모두 동참하여 지속적으로 함께 나아가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다큐온 에너지위기 에너지절약 대체에너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