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캡틴' 손흥민은 포르투갈과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대로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무릎을 꿇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효했다. 그리고는 이내 펑펑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라운드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동안 고생하며 달려왔던 시간들, 주장으로서의 마음고생, 그리고 마침내 해냈다는 안도감이 복합적으로 스쳐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시후 같은 시간에 열렸던 우루과이-가나전이 종료되며, 대한민국의 16강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손흥민은 동료들과 얼싸안고 또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껏 울어도 괜찮았다. 손흥민이 세 번째 맞이하는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으로 흘려보는 '기쁨의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 12월 3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0시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H조 최종전 포르투갈과의 맞대결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전까지 H조 최하위였던 한국은 1승 1무 1패, 승점 4점을 기록했고, 같은 시간을 가나를 2-0으로 물리친 우루과이와 승점과 골득실까지 같았지만 다득점(한국 4골, 우루과이 2골)에서 앞서면서 한국이 극적으로 조 2위가 되면서 뒤집기로 16강 티켓까지 챙겼다. 한국은 이로서 2002년(4강)-2010년(16강)에 이어 역대 3번째이자 12년만에 다시 월드컵 16강진출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도하의 기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손흥민의 축구인생에서는 항상 눈물을 빼놓을수 없었다. 감성이 풍부하고 열정적인 손흥민은 그라운드 안에서 한번 감정이 북받치면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유독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며 '울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손흥민이 눈물흘렸던 순간을 정리하면, 곧 그의 커리어와 한국축구 역사의 결정적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시작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었다. 당시 대표팀의 막내로 출전했던 손흥민 본인은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홍명보호가 1무 2패에 그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알제리전과 벨기에전이 끝난후 연거푸 눈물을 쏟아냈다. 당시 대표팀이 부진한 경기력과 더불어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논란에 휩싸이며 질타를 받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끝까지 투혼을 보여준 손흥민의 눈물은 오히려 팬들에게 박수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후로도 그라운드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보여야 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는 후반 종료 직전 호주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갔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1-2로 패하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했으나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고도 결정적인 실수로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하며 고개를 숙여야했다.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에 나선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도 손흥민의 시련은 계속됐다. 스웨덴전에 이어 멕시코전에서도 2연패를 당하며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위로차 라커룸을 찾아온 대통령 앞에서도 손흥민은 또다시 눈물을 감추지못했다.
 
손흥민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리며 강호 독일을 잡는 '카잔의 기적'을 이뤄내며 포효했지만, 아쉽게도 16강 진출에는 끝내 실패하며 아쉬움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소속팀인 토트넘에서도 2019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관에 그치는 아쉬운 상황이 반복될때마다 손흥민의 눈가는 마를 날이 없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은 손흥민의 세 번째 월드컵 도전이자 정식 주장으로서 맞이하는 첫 대회였다. 막내급으로 형들을 따라다녔던 이전 대회와 달리,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스타이자 리더의 무게까지 짊어지게된 손흥민의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소속팀 경기 중 안면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출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손흥민은 다행히 수술을 받고 빠르게 복귀했고 마스크를 쓰고서 경기에 출장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루과이-가나와의 경기에서 내용상 잘 싸우고도 한국은 번번이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했고, 손흥민도 고군분투했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님을 드러내며 부진한 모습으로 공격포인트를 올리는데 실패했다.
 
가나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2-3으로 석패하고 탈락 위기에 몰리자 손흥민도 격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평소 항상 젠틀하던 손흥민이 경기 후 눈치없이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온 무례한 가나 스태프들을 뿌리치거 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조별리그 최종전인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손흥민과 대표팀은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둘러싸여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가나전 이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하면서 포르투갈전에서 벤치에도 앉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수비의 핵심 김민재도 부상으로 빠지며 전력누수가 심했다.

한국은 전력상 최강팀인 포르투갈을 일단 무조건 이겨야만 했고, 여기에 가나-우루과이전의 결과까지 지켜봐야했다. 설상가상 전반 시작 5분만에 포르투갈까지 선제골까지 내주며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누가봐도 꿈도 희망도 없어보이는 벼랑끝까지 몰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투혼과 간절함이 모여서, 마침내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전반 27분 김영권이 세트피스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막판까지 팽팽한 승부를 이어가던 승부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로 손흥민에게서 시작됐다.
 
사실 손흥민은 이날도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고군분투하며 활로를 뚫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정적 슈팅찬스는 연이어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고, 무리하게 드리블로 공을 끌다가 상대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만일 한국이 경기를 뒤집지못했다면 손흥민이 가장 큰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규시즌도 모두 끝난 후반 추가시간 1분, 포르투갈의 코너킥을 차단한 한국의 역습이 시작됐다. 손흥민은 공을 몰고 아군 진영 측면에서 단독 드리블로 포르투갈 진영까지 파고들어갔다. 포르투갈 수비는 일제히 손흥민에게 따라붙으며 집중견제에 나섰다.
 
문전 앞에서만 무려 세 명의 수비수에게 둘러싸인 상황. 손흥민은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뒤에서 전력질주로 문전을 향하여 쇄도하던 황희찬을 발견했고 침착하게 스루패스를 연결했다. 황희찬은 완벽한 침투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손흥민의 패스를 이어받아, 침착하고 낮게 깔아찬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2-1, 한국의 극적인 역전 16강행을 현실로 만들어낸 극장골이자, 손흥민의 이번 월드컵 첫 공격포인트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경기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안면부상 트라우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중볼을 경합하며 몸싸움과 헤딩도 마다하지않았다. 코너킥을 차러가면서도 열정적인 몸짓으로 팬들의 응원을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역전에 성공한 후반 추가시간에는, 아예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도 벗어서 손에 쥔채로, 사력을 다해 전력질주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몸을 사리지않는 캡틴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선수들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끌어낼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승리와 16강 진출로 손흥민도 커리어의 이정표를 세웠다. 차범근-박지성과 함께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손흥민의 커리어에 유일한 아쉬움이 '태극마크에서의 족적'이었다. 한국축구 A매치 최다골 기록을 보유한 차범근, 한일월드컵 4강신화와 원정 16강을 이뤄낸 박지성에 비하여, 대표팀에는 클럽에서만큼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번 카타르월드컵을 통하여 벤투호의 주장이자 에이스로 '12년만의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뤄내며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됐다. 동시에 한국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다 공격포인트(3골 1도움) 기록도 경신했다. 조별리그에서는 아직 골맛을 보지못한 손흥민은 다가오는 토너먼트에서 득점을 성공한다면 안정환-박지성(이상 3골)과 타이기록을 뛰어넘어 한국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다골 신기록도 수립할 수 있다.

무엇보다 16강 진출을 확정한 이후, 다시 한번 손흥민이 보여준 눈물은 그가 지금껏 얼마나 태극마크와 월드컵에 진심이었고 간절했는지를 보여주며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에야말로 손흥민이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으로 흘린 기쁨의 눈물이라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지켜보던 팬들 역시 손흥민과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역사적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을 공유했다.
 
경기 후 손흥민은 눈가가 퉁퉁 부은 모습으로 등장하여 "어려운 경기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더 뛰어주고, 희생해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냈다. "주장인 나는 부족했지만 동료들이 커버해줘 정말 고맙다"며 오히려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또한 "감독님과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경기도 벤치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벤투 감독에 대한 헌사도 잊지 않았다.

극적인 순간에도 자신보다 항상 팀과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손흥민의 남다른 인품은 축구 이상의 또다른 감동을 자아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속 응어리를 마침내 떨쳐낸 한국축구의 '살아있는 레전드'에게는, 이제 더 높게 비상할 일만이 남아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손흥민눈물 황희찬결승골 포르투갈 16강대진표 카타르월드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