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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사람들' 연쇄 인터뷰를 통해 국가수목원의 역할과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종자를 영구 보존하는 시설, Seed Vault, 아래 시드볼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시드볼트는 지역을 복원할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하기 위해, 본격적인 '글로벌'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사실을 증명하듯 최근 시드볼트는 홍보,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시드볼트 운영센터에서는 이런 새로운 소식들을 추가한 도서 <시드볼트> 개정판을 출간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1일 도서 <시드볼트>의 저자이자 시드볼트운영센터 센터장 배기화를 만났다.

시드볼트는 여전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드볼트를 알고, 시드볼트가 하는 일에 공감해주길 바란다. 시드볼트는 제 본연의 목표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시설이다. 외풍에 흔들리거나 정치에 이용당하면 안 되는 곳이다. 시드볼트는 오직 당위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 당위는 결국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에서 나올 것이다.

 
시드볼트운영센터 멤버들, 배기화 센터장은 왼쪽에서 세 번째
 시드볼트운영센터 멤버들, 배기화 센터장은 왼쪽에서 세 번째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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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복원 계획 수립·실행... 천연기념물 종자도 저장하기로 했다"

- 2022년 3월 시드볼트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어떤 목표가 있는지?

"어찌보면 시드볼트는 이제 초창기를 막 벗어났다. 전임 센터장 체제에서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 시드볼트는 국내에서는 더 큰 역할을 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더 많은 종자를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도약의 단계에 시드볼트 센터장을 맡게 돼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다."
 

- 국내에서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지역복원에 관한 것인가?

"그렇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강원도에서 있었던 산불을 예로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시드볼트는 종의 다양성 확보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지역을 복원한다는 건 굉장히 많은 종자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생물간 관계부터 토양의 복원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우선 황장목 종자 같은 우리나라 주요 자생식물이 자라는 울진이나 고성 같은 지역에서 다량으로 종자 수집을 하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민통선 산림유전자원보호 구역에 있는 종자를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다.

또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어 천연기념물 종자를 저장하기로 했다. 천연기념물은 어떤 하나의 개체도 있지만 천연기념물 개체가 자라는 지역을 뜻하기도 한다. 시드볼트는 그 범위를 지역으로 확장해 저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재해로 인해 천연기념물이 사라지거나, 지역이 황폐해져도 복원이 가능하다. 총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모든 천연기념물이 시드볼트에 들어올 계획인데, 아마 드라마로 이슈가 된 일명 '우영우 팽나무'도 곧 시드볼트에 저장되지 않을까 싶다."

 
천연기념물 종자를 시드볼트에 저장하기 위해 블랙박스에 담고 있다
 천연기념물 종자를 시드볼트에 저장하기 위해 블랙박스에 담고 있다
ⓒ 시드볼트운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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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잃었으니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 수목원 차원에서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지역 복원은 시드볼트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시드볼트에 있는 종자를 그냥 가져가 심는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니까 종자를 대략으로 양묘하고 증식할 수 있는 증식센터도 필요하다. 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중심으로 대형규모의 산림복원지원센터를 만들고 있다. 증식센터가 완공되고, 체계가 잡히고 시드볼트의 계획이 좀 더 진행된다면 앞으로는 대형 산불을 비롯해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더라도 어느 정도 복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한다."

- 좋은 계획이긴 한데 왜 진작하지 않았냐는,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저런 사정이 있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비판은 온당하고 달게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다. 소를 잃었으니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앞으로 지구는 물론 우리나라도 더 많은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더 강한 태풍이 몰려올 것이고, 더 큰 산불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종자 저장이라는 일만 계속 하는 것과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은 길인지는 자명하다."
 

- 최근 도서 <시드볼트>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센터장께서 개정판을 강력 요청했고, 실제로 개정판 제작의 많은 과정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을까?

"<시드볼트>가 출간된 이후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홍보나 국외 네트워크 형성에 있어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 그동안 국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려 더 많은 종자를 수집해야 할 때다. 그런 내용들을 추가함으로서 시드볼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시드볼트를 알고, 우리의 일에 공감할 때 우리는 더 힘차게 더 멀리 나갈 수 있으니까."
 
도서 <시드볼트> 표지이미지
 도서 <시드볼트> 표지이미지
ⓒ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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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이어나가 보자. 최근 시드볼트 메타버스인 메타볼트가 꽤 인기를 끌고 있다. 좀 설명해 준다면?

"시드볼트는 국가보안시설이다. 시드볼트에 저장돼 있는 종자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다만 이것 때문에 홍보에 많은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드볼트의 역할을 생각했을 때 홍보도 놓칠 수 없는 지점인데, 보안 사항을 위반하지 않고 시드볼트를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메타볼트다. 접속하면 국립백두대산수목원을 둘러볼 수도 있고, 시드볼트 홍보관에 들어와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별다른 회원가입 절차가 필요 없으니 시간이 되면 한 번쯤 놀러 오시면 좋겠다."

 
메타볼트 접속 QR 코드.
 메타볼트 접속 QR 코드.
ⓒ 메타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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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세계산림총회, 세계수목원총회에 참석해 많은 성과가 있었다. 관련 이야기를 좀 해달라.

"그동안 국내의 종자들은 많이 들여왔지만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해외 네트워트 형성과 관련해서 진행하고 있던 것들이 코로나로 인해서 멈춘 측면도 있었고. 이런 것들이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물꼬를 트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올해 5월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산림총회였다. 이때 시드볼트에서 홍보부스를 만들어 황폐화 된 산림을 복원하는 과정과 시드볼트 종자 저장 과정을 전 세계 산림인들에게 적극 홍보했다. 이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께서 기조연설에 시드볼트를 직접 언급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호주에서 열린 세계식물원총회에도 참석했는데 인도와 가나의 식물원에서는 내년 중으로 시드볼트에 종자를 보내는 것을 협의하기도 했고, 국제적인 기구나 협회에 시드볼트의 목적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홍보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전 세계 종자 전문과 그룹과 연결되기도 했고, 호주종자은행파트너십은 시드볼트에 종자 보존을 협력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시드볼트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스발바르 시드볼트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런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고, 폭넓은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우리의 역할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세계 산림총회 컨퍼런스 당시
 세계 산림총회 컨퍼런스 당시
ⓒ 시드볼트운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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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산림총회 당시 시드볼트 홍보부스
 세계산림총회 당시 시드볼트 홍보부스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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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를 '저장'한다

- 예전에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협약을 체결했다가 전쟁으로 인해 현재 멈춘 상태다. 많은 나라들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 맺은 협약을 폐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드볼트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러시아와의 협약 건은 외교적인 문제가 걸려있는 일이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생각을 묻는다면 나는 '전쟁은 전쟁이고 종자는 종자'라는 입장이다.

물론 전쟁은 잘못됐지만 인류를 위해선 러시아의 종자도 들여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우크라이나든 러시아든 가서 거기 종자를 백업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시드볼트는 지구의 미래, 환경, 그리고 인류의 생존이라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책 <시드볼트>를 보면 해외의 종자를 저장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개발도상국 같은 경우엔 수목원에서 연수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도감 같은 걸 함께 출간하기도 한다. 그 종자를 들여온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볼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이게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인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그런 의심을 하기도 한다. 우리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하고 말이다(웃음). 그런데 만약 시간이 지나 시드볼트가 더 많은 성과를 내서 전 세계 대부분의 종자가 시드볼트에 저장돼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구의 미래가 이곳에 있는데 과연 누가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있을까? 환경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땐 또 어떨까? 우리나라가 전 세계 식물 허브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시드볼트로 인해 우리나라가 곧 지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요새 월드컵 기간이라 축구에 관심이 높아서 말인데, 대한민국은 EPL 득점왕인 손흥민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동시에 시드볼트도 보유한 나라다. 이것도 함께 자랑스러워 해주시면 좋겠다(웃음).

시드볼트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시드볼트는 제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시드볼트는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노력이다. 그런 큰 목표를 가지고 우리는 우리가 오늘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알아주시면 좋겠고, 책도 좀 읽어주시면 좋겠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뭉클했다는 반응이 많다(웃음)."


[지난 기사]
종자 13만 7880점, 지구의 대재앙을 대비하는 사람 http://omn.kr/1xxzi
"언젠가는 밀레니엄 시드뱅크를 따라잡지 않을까" http://omn.kr/1y1ry
③ "이런 일 대체 왜 하냐고? 국제적 위상 갖춘 나라라서" http://omn.kr/1y8lq
 
시드볼트 전경, 봄
 시드볼트 전경, 봄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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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볼트 -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개정판

시드볼트운영센터, 산림생물자원보전실 생물자원조사팀, 야생식물종자연구실 (지은이), 박정우 (엮은이), 시월(2022)


태그:#시드볼트, #백두대간수목원, #기후변화, #기후위기, #환경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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