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예 크랄로바(Lucie Králová)는 올해 가장 핫한 체코의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명이다. 지난 10월 29일 폐막한 체코의 26회 이흘라바 국제다큐영화제 (Ji.hlava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에서 독특한 '다큐멘터리 오페라' 형식의 <카프르 코드 (KAPR CODE)>로 '체코 최고 다큐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제에서만 '체코 최고 다큐상'을 세번째 수상한 셈인데 이전에는 다큐 < Ill-fated Child >(2003년)와 < Sold >(2005년)로 수상했다. 이외에도 그의 신작은 독일 뮌헨의 다큐멘터리 영화제 독페스트 (DOK.Fest)등 수많은 유럽 영화제들의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있다.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은 그녀의 최신작, <카프르 코드>로 올 6월 유서깊은 폴란드의 크라코우 (Krakow)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카프르 코드>는 체코의 논쟁적인 작곡가이자 정치인, 얀 카프르 (Jan Kapr)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얀 카프르 (1914년-88년)는 올림픽 국가대표를 목표로 했던 야망찬 운동선수였으나 사고 후, 150곡에 이르는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는 음악가로 변신했다. 그는 한때 스탈린주의에 몰입했으나, 1968년 소련의 무자비한 '프라하의 봄' 무력진압과 공산당에 대한 회의감으로 스탈린에게 받은 트로피를 반환했다. 이 여파로 그는 체코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의 음악은 체코 내에서 금지되고 창작활동에도 큰 제약을 받게 된다.

크랄로바 감독은 그간 15년 넘게 20여 편의 영화를 만들며 항상 참신한 영화문법과 깊이있는 콘텐츠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 국내 관객들과 만난 적은 없다. 그는 프라하 소재 체코국립영화학교 (FAMU)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을 전공한 후, 현재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극작 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이 이흘라바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모습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은 체코의 26회 이흘라바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독특한 ‘다큐멘터리 오페라’ 형식의 <카프르 코드>로 ‘체코 최고 다큐상’을 수상했다.

▲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이 이흘라바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모습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은 체코의 26회 이흘라바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독특한 ‘다큐멘터리 오페라’ 형식의 <카프르 코드>로 ‘체코 최고 다큐상’을 수상했다. ⓒ IDFF Jihlava


이흘라바 국제다큐영화제를 전후로 루지예 크랄로바과 줌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어떤 계기로 얀 카프르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소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 얀 카프르 쪽 가족과 혼인관계인 친구가 있다. 전에 집에 보관중이던 필름을 아직 본 적이 없다며 필름의 디지털화를 제게 부탁한 적이 있다. 그 집에 가보니 8mm 필름 아카이브가 박스로 여러 개 있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제가 처음 본 장면은 카프르가 풀밭에 누워 데이지꽃을 먹는 모습이었다. 한때 정치판에 깊게 관여했던 심각한 사람이 데이지를 먹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의 세계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는 다른 이들을 프로젝트에 초대해 그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일생을 그대로 묘사하는 역사적 다큐멘터리에는 관심이 없었고, 이미 80년대에 작고한 인물에 대해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동시대적인 언어를 찾고자 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자 했고,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항상 새로운 필름 형식을 추구해 왔는데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우리가 얀 카프르에 대해 발견한 것은 영화대본 매뉴얼처럼 아주 흥미로웠다. 마치 잘 쓰인 한 편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이런 허구적 요소를 잘 살리기 위해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다. 얀 카프르은 한평생 새로운 음악언어를 탐색한 작곡가였다. 우리도 그런 그의 태도를 모방했다. 영화는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이 적당한 영화 언어 및 음악 언어를 찾으려고 했다. 특히 저는 영화라는 예술장르로 표현가능한 방식들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뉴 오페라' (New Opera)라는 새로운 형식이 오페라 예술에서 요즘 화제다. 이 모던한 장르는 종종 유머스럽고 아주 차분한 편인데, 정치적·사회적 주제 및 사적 소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순수예술인 전통적 오페라를 풍자하면서 새로운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저도 마찬가지로 이런 비슷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영화 창작 작업에 접근하고 있다." 

-많은 관객들이 여전히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만 많이 하는 것 (talking head)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픽션과의 혼합형태, 핸드폰으로만 만든 영화, 관찰자적 방식을 시도하는 등 여러 흥미로운 형식들이 선보이며 다큐멘터리 필름메이킹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 같다.  
"필름은 지속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젊은 미디어로 우리조차도 이런 전개의 일부분이다. 저는 우리 영화인들의 임무가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매체의 속성에 대해 더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얀 카프르가 남긴 아마추어 필름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합창단이 존재하고, 아울러 이런 합창단원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그 과정도 함께 보여준다. 관객에게 영화 작업 과정을 공유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가 만든 모든 영화들의 속성에는 이런 성찰이 아주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 사고의 패턴과 영화라는 매개와의 실험을 성찰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결여된 부분이 있고, 영화는 이런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을 저는 인정한다. 영화작업은 끊임없는 탐색의 과정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가진 카드를 최대한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체코 작곡가이자 정치인 얀 카프르가 풀밭에서 익살스럽게 데이지를 먹고 있는 모습  올해의 화제 다큐멘터리 <카프르 코드>는 체코의 논쟁적인 작곡가이자 정치인, 얀 카프르 (Jan Kapr)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 체코 작곡가이자 정치인 얀 카프르가 풀밭에서 익살스럽게 데이지를 먹고 있는 모습 올해의 화제 다큐멘터리 <카프르 코드>는 체코의 논쟁적인 작곡가이자 정치인, 얀 카프르 (Jan Kapr)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 MindsetPicures

 
-'죽음은 없다 (There's no death)'라는 노래가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어떤 의도로 소개한 것인가.
"이 노래는 얀 카프르가 스탈린을 위해 작곡한 노래로 유명한 체코의 시인이 가사를 썼다. '죽음은 없다'라는 문장은 러시아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과 연계되어 있다. 즉, 러시아는 너무도 위대한 나라여서 심지어 죽음조차도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체코의 많은 지식인들이 당시 소련에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무엇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었었다. 우리는 얀 카프르의 인생이 펼쳐지는 동안 이 문장을 재생했다. 처음에는 진짜 프로파간다 노래 같다가 80년대 그의 사망이 가까울 때는 기억의 한 부분으로 바뀐다."

- 저는 이 노래의 가사가 무척 아이러니한 것 같다. 악명높은 스탈린 독재시절 엄청난 규모의 대량살상이 존재했다. 그는 1932~1933년 대기근 (홀로도모: Holodomor)를 기획해 우크라이나인 400만명에서 500만명 정도를 아사시켰고, 1937–1938년 폴란드인 대량학살 (Polish Operation)로 약 11만명을 총살했다. 1939년 독소 상호불가침조약 (Molotov–Ribbentrop Pact )으로 대표되는 스탈린과 히틀러와의 협력은 결국 히틀러의 유태인, 공산주의자, 성소수자, 육체-정신적 장애자들의 대규모 살상으로 이어지는데 일조했다.  얀 카프르는 왜 스탈린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이었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제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 후 민족주의가 대세였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국가를 가졌다는 사실에 무척 행복해했다. 이런 흐름은 공산주의라는 집합성 (collectivity)으로의 전환을 허용하게 된다. 민중, 협력, 민족주의, 국가 보호, 신세계 건설등 유토피아적 개념은 전후 당시 많은 이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고 싶어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을 구하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물론,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70년대에도 여전히 공산당의 일원이라면 그건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당시 공산당 당원들은 어떤 이상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기회를 얻기 위해 당에 가입했을 뿐이다."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이 이흘라바국제다큐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올해로 26회를 맞는 이흘라바국제다큐영화제는 중동부 유럽의 최대 다큐멘터리영화제 중 하나로, 매년 10월 유럽의 많은 열정적인 시네필들이 프라하에서 차로 9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이흘라바를 꽉 채운다.

▲ 루지예 크랄로바 감독이 이흘라바국제다큐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올해로 26회를 맞는 이흘라바국제다큐영화제는 중동부 유럽의 최대 다큐멘터리영화제 중 하나로, 매년 10월 유럽의 많은 열정적인 시네필들이 프라하에서 차로 9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이흘라바를 꽉 채운다. ⓒ 클레어함

 
-체코의 많은 시민들은 인터넷의 부재로 스탈린의 만행에 대해 몰랐던 건가.
"수많은 이들이 1930년대 소련으로 향했는데 이들은 본인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공헌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이들은 강제수용소(gulag)로 대부분 사라져갔다. 특히 교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들 피해가 심했다. 소련에서는 초기부터 프로파간다 부서가 정부의 일부였을만큼 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1930년대부터 이미 엄격한 검열의 전통이 존재했기에 차후에도 독재정부가 들어서는 데 크게 일조했다.  

당시 소련 정부는 '모스크바 보더즈 (Moscow Borders)'라고 불리는 도서의 출간을 막으려고 했다. 이 책은 당시 상당히 빈곤하고, 암울하고, 죽음이 도처에 존재하는 소련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그때는 이 책만이 체코인들에게 유일한 소련 소식통이었는데 이것마저도 소수의 체코 지식인들에게만 소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마저도 믿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소련의 프로파간다가 체코 신문의 일부였을 만큼 너무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소련 정부는 정말이지 프로파간다 전파에 엄청난 에너지를 썼다. 이들은 체코 기자들을 모스크바에 초청해 (실제의 현실을 숨기고 인위적으로 가공한) '포템킨 빌리지 (Potemkin village)같은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줬다. 그래서 체코 언론인들이 귀국해 기사를 쓸때면 소련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사실인 것처럼 믿곤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 올 봄에 열렸던 뮌헨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OK.Fest)프로그램에서 감독님이 이 영화를 통해 과거 체코의 사회주의 시절에 대해 정직하게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하고 싶었던건가.  
"저는 정말 진솔하게, 최대한 정직하게 영화작업을 하고 싶었다. 이 얀 카프르라는 논쟁적인 인물이 남긴 역사적 유산을 해석하는데 있어 정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얀 카프르를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그가 가졌던 복합성과 (모순된)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일테다. 물론 영화가 맥락 전체를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모든 층을 보여주도록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루지예크랄로바 카프르코드 KAPRCODE 이흘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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