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6 15:26최종 업데이트 22.11.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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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지난 10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불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석 사이로 걸어나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힘들다. 삶이 나아지질 않는다. 열심히 버티고 있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슬프다. 잊힐 만하면 가슴을 헤집는 상처가 다시 생겨난다. 누가,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것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다. 억울해서 화가 나서 이리저리 뭔가를 찾아보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고민 끝에 마주하는 답은 이렇다. '이건 내가 만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남 탓하는 것은 싫다. 하지만 마지막에 부닥치는 답은 그렇다. 그러면 올바른 질문이 나온다. '내 문제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정치가 떠오른다. 먹고 사는 민생, 생명과 관련한 안전, 외교와 안보,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선거 때마다 정치만 잘 되면 대한민국은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로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기억이 소환된다. 하지만 항상 그 지점에서 멈춘다. 그 기대가 현실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기대는 실망감으로 변했다. 실망을 넘어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느꼈던 기억도 많다. 특히 요즘에 더 그렇다.

민초의 삶이 녹록지 않다. 그런데 정치권은 정쟁만 일삼고 있다. 민생을 외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민생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데 더 혈안이다. 연일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원수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려는 모습이 연출된다. 정치인과 정당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싸우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하는 모든 얘기가 공염불처럼 들린다. 한국정치는 삼류라는 평가도 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도 정치에 있다. 정치가 문제지만 해결책도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정치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특히 정당이 변해야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오징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치인보다 정당이 중요하다

무엇이 정치를 엉망으로 만드는가? 이렇게 질문하면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이 먼저 떠오른다. 누가 정치를 엉망으로 만드는가를 질문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사람이 떠오른다. 추상적인 대상보다 사람을 특정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치인은 항상 바뀐다. 헌법상 연임이 불가능한 대통령은 5년마다 새로운 인물로 대체된다. 국회의원은 연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불신과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이 큰 상황에서 선수를 늘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기존 정치인은 용기 있는 퇴장,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교체의 대상으로 낙인이 찍혀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인물보다는 좀 더 제도적이고 안정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 핵심은 정당에 있다. 정치인보다 정당이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교체보다 정당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정치가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시민은 온전한 주권을 갖지 못하고 절반의 주권만을 가질 뿐"이라고 지적한다. 선거는 지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한 숫자 게임이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지지를 받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은 없다면 정당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정당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정치 영역에서 소외된 시민이 줄어든다.

하지만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확산성이 없다. 정체성만 강조한다. 적과 동지로 피아를 구분하면서 소모적인 정쟁만을 일삼는다. 정당 내부에서도 이견은 허용되지 않는다. 집단사고가 팽배해 더 선명하고, 강하고, 극단적인 목소리가 주류를 형성한다. 이에 반대하면 배신자라는 딱지와 함께 강성 지지자들의 응징이 시작된다.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는 문화가 사라진다. 협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힘들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그 원인을 정당으로부터 찾은 것은 적실하다.

국민의힘은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외형적으로 분명한 보수정당의 승리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찜찜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보수정당의 승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다. 단 몇 개월 만에 대선 후보로 변신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경험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의 가치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엄밀하게 말하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진영에서 스스로 후보를 키워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 외부자의 힘을 빌려 정권 교체를 한 것이다. 조직으로서의 국민의힘보다 윤석열 후보 개인의 힘과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지는 대선이었다고 주장해도 큰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또 한편으로 국민의힘이 잘해서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못해서, 이재명 후보여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신경이 쓰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크게 제기되지 않았다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국민의힘이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가치와 정책도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추상적으로 자유, 공정, 법치를 강조한 윤석열 후보의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귓가에 머문다. 갑자기 대선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 간에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고,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다. 대선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 간의 미묘한 갈등이 불거진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승리는 국힘의 승리?
 

지난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 이후 전개되는 정치는 어떤 특징을 보일까? 추론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정치적 부채가 적다. 오히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부족했던 국민의힘의 구세주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정당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운영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정치에 몸담은 시간이 적어 정치권과는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정치인보다 과거 검찰에서 자신과 함께 일을 했던 인사들을 더 신뢰하고 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당은 주변화되고 자신의 의지와 의사를 대통령에게 요구하거나 관철할 힘을 갖기 힘들 수 있다. 정권 교체를 해도 정당 내부는 어수선하고 다양한 갈등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도 크다.
     
추론이 추론으로만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추론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때도 있다. 지금 심정이 그렇다. 결국 이 판단은 독자가, 그리고 국민이 한다. 하지만 이 추론이 현실에 반영되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면 국민의힘은 변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살고, 한국정치가 발전한다.

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 10월 20일에 발표한 사회지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은 참담하다. '마음에 있는 정당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한국 유권자의 80% 정도가 현존하는 정당 중에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서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임기 초 밀월기간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지 않았다. 지금은 20% 후반대와 30% 초반대에서 등락을 보인다. 국정 운영을 잘한다고 응답한 비율과 잘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30% 초반 수준에서 변화가 없다. 이재명 대표가 선출된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고 있고, 근소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앞서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지만 국민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으면서 위대한 보수, 정당,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중요한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보수의 가치를 살리면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보수정당의 모습을 희망한다.

보수정당이 가야 할 길

첫째, 도덕적으로 당당한 보수다. 공정과 정의가 강조되는 시대다. 샌델은 "도덕적이지 않은 정치가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은 일반인보다 도덕성이 높아야 한다. 보수는 그 가치를 고려할 때 더 그래야 한다. 보수정당은 정치하려는 사람의 지적 능력을 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보다 도덕성을 검증하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

국민의힘이 후보자를 발굴하고 공천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제도화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보수정당에서 정치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줘야 한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국회의 윤리를 높이기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정치인이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 다른 정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남 탓하는 정치가 사라진다. 정쟁을 줄이고 민생에 집중할 힘이 생긴다.
     
둘째, 신중하고 품위 있는 보수다. 정치학자들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성과가 아닌 과정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신중함과 품위다. 이성보다 감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탈진실 시대다.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은 철저한 준비와 신중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그저 한방만 생각한다. 당연히 실수가 잦다. 태도도 좋지 않다. 품위는 찾아볼 수 없다.

보수가 재미없어 보이고, 매력적이지 않아 보여도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신중함과 품위에 있다. 신중해야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견고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성급함은 품위를 떨어뜨리고 질서를 어지럽힌다. 갈등은 더 증폭된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서 보수의 신중함과 품위를 키워나가야 파국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보수정당 내에서 보기에도 불편한 법정 소송들이 전개되는 상황도 막을 수 있다. 법치를 중시하는 보수정당이 사법부로부터 치욕적인 판결문을 받을 일도 없다.

셋째,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보수다. 자유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개인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특정한 가치나 목표로 다양한 개인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시도는 위험하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자유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그래야 자유로운 개인이 책임을 다한다.

이러한 이유로 보수는 인내심과 관용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전한 이견이 존재하고, 어렵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정치를 하고, 흔들리지 않는 전통이 확립되는 초석이 마련된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타인의 생각을 다름이 아닌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재단하는 모순도 사라질 것이다.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양극화 시대, 협치가 어려운 시대,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 목소리 큰 강경파가 주류인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하면 억측일까? 왜 보수 탓만 하냐고 비판할까? 진보가 더 문제지 않냐고 반문할까?

남 탓, 진보 탓 해봐야 답이 없다. 비겁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 탓이고 결국 보수가 해결할 문제라고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어려운 선택이지만 옳은 길이다. 그 용기와 진정성이 보수정당의 진정한 힘이다. 외면받는 한국정치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끄는 위대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조진만 /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조진만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진만은 선거, 정당, 의회와 관련한 정치과정을 전공했고 현재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정당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치개혁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견제와 균형: 인사청문회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대한민국 국회 제도의 형성과 변화> 등이 있고 국내외 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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