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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가 '경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이 글을 보내와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서울 용산경찰서.
 서울 용산경찰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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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이 경찰관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그동안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경찰의 잘못으로 몰아왔다. 특수본 수사가 시작된 지 좀 지난 지금에서도 수사는 일선 경찰과 소방 쪽에 집중됐다. 반면 재난 안전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리 검토 단계라면서 미적대고 있다.

국가와 행정안전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야말로 재난과 국민 안전의 책임자다. 그럼에도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거짓말만 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눈물만 흘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여전히 당당하다. 그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격노만 한다.

물론 참사의 일차적 책임은 경찰에 있다. 여기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112는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는 시민들의 호소를 외면했으며, 촘촘하다던 경찰의 예고정보망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보고와 지휘 체계도 엉망이었다. 현장에서부터 수뇌부까지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과거의 경찰과 지금의 경찰은 다른 조직이 아니다. 월드컵 응원, 촛불집회 등 수없이 많았던 대규모 군중을 문제 없이 관리해왔던 경찰이었다. 매년 있었던 핼러윈 축제, 얼마 전에 있었던 대규모 이태원 지구촌문화축제도 무사하게 넘겼던 경찰이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이태원에서는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가. 누가, 무엇이, 이태원에서 경찰을 이렇게 지리멸렬한 조직으로 만들었는가. 

진짜로 잘못한 사람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안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안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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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재난은 개인의 힘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현장 경찰관은 그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들에게 책임을 과하게 묻는 지금의 분위기는 분명하게 문제가 있다. 현장에는 고작 137명의 경찰밖에 없었고, 이중 절반가량은 마약 수사를 위해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 소방관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장 경찰관들도 참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인명을 구하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진짜로 잘못한 사람들은 이제까지 잘 작동되던 재난 대응 시스템을 망치게 한 자들이다. 누가 '안전 대한민국'을 책임져왔던 경찰과 국가의 시스템을 망가트렸는가. 그들은 현장에 있었던 경찰과 소방이 아니라 그 참사 현장엔 없었던 '높은 분'들이다.

우선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수뇌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뻔히 예견된 위험에도 대비하지 못했고, 제때 보고를 받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지휘를 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읍참마속'을 운운하면서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조직의 잘못과 본인의 불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옳았다. 경찰청장이 사건 초기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났더라면 현장 경찰관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본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이임재 전임 용산경찰서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보다 더 책임이 큰 사람은 이상민 행안부장관이다. 그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재난 대응의 국가 사령탑의 위치에 있다. 게다가 경찰을 지휘할 권한도 겸하고 있다.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경찰국 설치를 관철하고, 스스로 경찰에 대한 지휘·통제의 권한을 자임하지 않았나? 권한이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 그에겐 경찰국 설치를 강행해 수많은 경찰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혐의'도 추가된다. 사기가 저하된 조직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중 앞에서 경찰에 화를 냈던 윤석열 대통령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국가가 통제할 권한이 없다'고 발뺌하던 대통령 아니었나. 발언의 맥락이 원전을 향해 있었지만, 이전에 했던 발언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라'는 이상한 말이 결국 씨가 된 모양새다.

대통령의 격앙은 하달될수록 몇 배로 증폭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하기 도착하고 있다. 차에서 내린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 번 툭툭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하기 도착하고 있다. 차에서 내린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 번 툭툭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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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해 생뚱맞은 용산 대통령실 이전은 전에 없었던 엄청난 치안 부담을 용산경찰서에 부과했다. 서초동과 용산 집무실 출퇴근에 매일 수백 명의 경찰관이 동원됐다. 집회 시위도 용산에 집중되고 있다. 참사의 조짐이 나타나던 시점에도 용산서장은 대통령 퇴진 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하지 않나. 대통령에게 모든 자원이 집중되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경찰의 지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로 밀리게 됐던 것이다.

참사가 발생한 후 윤 대통령은 '누군가에게 막연히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윗선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 11일 동남아 순방 출국길에선 이상민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하는 등 고교 후배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드러냈다.

대조되는 그림이 있다.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였다. 윤 대통령은 경찰들을 콕 찝어서 격노하면서 질책했다. 책임을 현장 경찰에게 돌린 것이다. 방법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과학에 기반한 강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라.' 그런데 과학은 사라지고 강제 수사만 신속하게 그리고 과도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가 경험한 경찰 조직문화로 볼 때 통상 대통령의 의중은 전달 과정에서 몇 배로 증폭된다. 경찰청 특수본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기 위해 동료들에게 가혹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과연 경찰관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리더는 격노하고 벌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비전 대신 경찰을 장악하려 들고, '검수완박'을 백지화시켜 경찰관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치안감 인사에 대해 '국기 문란'이라는 어마무시한 말로 경찰을 겁박했다. 모범을 보이긴커녕 스스로 국격을 손상시키는 여러 사고를 쳤다. 리더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경찰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다.

대통령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9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대통령은 현재 해외 순방 중이니 어느 자리에서 건배를 하고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국익'을 운운하기 전에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안전 대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져야 한다. 스스로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157명의 생명 그리고 한 경찰관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지 않나. 그래서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 이태원 참사로 인해 희생된 분들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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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태원참사, #10.29참사, #경찰, #용산경찰서, #이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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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식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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