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4 10:36최종 업데이트 22.11.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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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를 찾아서>라는 언어 장편동화로 주목받고 있는 김율희 작가 ⓒ 김슬옹


생활 시설의 공공언어 사용 문제를 한 해 가까이 집중적으로 취재하면서, 2050년 미래에 언어를 잃어버린 인류에 관한 판타지 동화 <나다를 찾아서>라는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다. 절박한 현실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판타지 동화에서 찾는다는 것이 뜬금없이 보이지만, 어쩌면 지금처럼 혼탁한 언어가 넘치는 세상이 계속된다면 실제로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불신의 도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언어 문제를 다룬 장편 동화가 많지 않은 터에 철학적인 이색 동화로 주목받고 있는 김율희 작가를 서울 북촌의 조선어학회 사무실 터 새김돌이 있는 근처 전통찻집에서 만났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나 불통의 도구일 수도

- 작가님 동화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주인공 이름도 '소리'이고 악마를 '마음을 잃은 자'라고 했지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이름을 지을 때 여러 가지 뜻을 담아 짓기를 좋아합니다. 주인공인 '소리'도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언어의 순수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터라 이름을 소리라고 지었습니다. 소리란 세상을 채우는 언어의 시작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악마를 '마음을 잃은 자'로 표현한 것은 저를 포함해서 그 누구든 인간 마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는 언어로 타인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요.

흔히 언어를 소통의 도구라고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분쟁이 말싸움에서 비롯되는 것을 보면 그런 언어는 불통의 도구가 되고 말지요. 소통이 되지 않는 혼돈의 세상에서 급기야 언어를 잃어버리고 만 현대사회를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 언어를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동화 <나다를 찾아서>는 인류의 혼탁한 언어 사용으로 말(소리, 말씀)을 잃어버리자, 주인공 소리가 언어의 여신 나다와 '말씀의 거울'을 찾으러 우주도서관으로 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동화의 흐름과 관련하여 작가에게 요즘 넘쳐나는 영어 남용, 로마자 남용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제 동화 <나다를 찾아서>에서는 진정한 언어를 찾기 위해 주인공들이 험난한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데요. 요즘에 넘쳐나는 서로 다른 언어의 혼용과 남용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생각한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세종대왕은 천·지·인 온 우주의 원리를 담아 훈민정음을 만드셨지요. 요즘은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세계 각국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너무나 큰 보물인 우리말과 글을 우리 자신들은 소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문자가 오염이 되면 당연히 소리(말)가 오염이 됩니다. 요즘 심폐소생술을 언론들이 'CPR'이라고 하니까 '심폐소생술'이라는 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꽃나루마을, 해뜰마을 등 마을 이름을 예쁜 우리말로 지어 정겹게 느껴지는 곳도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말과 외국어를 섞어서 만든 이상한 말들이 정책이나 예술 문화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말과 글의 자존감을 찾자

21세기 디지털 정보화시대, 사실 어느 때보다 소통이 필요한 시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상처받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며 서로를 비난하는 아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작가에게 물었다.

"제가 언어의 여신 이름을 나다로 지은 것은 나다가 고대 인도에서 우주 전체를 채우는 영적인 소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나다'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뜻하는 뜻겹침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확립되어야 이 세상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았다면 우리는 이제 세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실 언어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듣는다는 행위는 타인을 배려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의 소통, 그 출발점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장 우선시한다면 우리 언어도 많이 순화되고 정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곳곳에 '키오스크'(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낯선 이름에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주문을 못해 식사를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좀 더 대중들과 소통하기 쉬운 언어의 사용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에 여행하러 오신 분들도 뒤죽박죽 섞여진 말들 때문에 무척 힘들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예를 들어'먹go(고)'같은 말은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요. 우리말의 자존감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우리말과 글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김율희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가장 기본적인 마음으로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바로 백성들이었지요. 우주와 인간 세상의 조화를 이루며 상호 소통과 상생, 조화, 공존의 원리를 담은 참된 소리가 훈민정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린다면 오늘날 이루어지는 모든 공공언어 정책들이 더 쉽고 더 명확해질 것 같아요.

한국은 한글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이제는 전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에 열광하면서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공공기관에서 앞장서서 우리말과 글의 순수성을 지키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발전시킨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마음이 바르면 언어도 바르고 마음이 행복하면 언어도 행복해지는 법이니까요."

공공언어도 결국 공감과 배려 관점에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언어(말)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죄책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 죄책감 없이 말을 함부로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언어는 매우 거칠어요. 따라서 분노지수도 매우 높습니다. 언어가 거칠어지면 우리 사회도 바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문학의 치유 기능이 이러한 사회 현상을 바로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과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무한상상력을 통한 언어의 순기능적 역할을 문학이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요. 문학을 통해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작가는 공감과 배려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남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타인의 말에 대해서 귀담아듣고 귀 기울이지 않으니까 자기만의 일방적인 말을 계속하게 되고 사회는 점점 더 불통의 세계, 혼돈의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고 이 사회가 조금 더, 진짜 조금 더 안전하고 좋은 사회가 되려면 먼저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귀 기울여 듣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모든 언어는 우주도서관에 기록
 

2050년 언어를 잃어버린 인류를 다룬 장편동화 <나다를 찾아서> ⓒ 시와동화


동화는 소리와 시인이 우주도서관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성찰하고 '말씀의 거울'을 통해 참된 언어, 우리를 살리는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작가는 우주도서관에 이 세상의 참지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조선 시대 임금들이나 사대부들이 사관들이 기록한다고 하니까 말을 조심했듯이 우리가 늘 쓰는 말들이 우주의 어딘가에 기록이 된다고 한다면 좀 더 좋은 말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우주도서관에서 구원의 답을 찾은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공공언어 연재물 관련 대담이라고 해서 미리 14회까지 보았다고 하면서 공공언어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파할 수 있는 곳이 공공기관이므로 그만큼 큰 자부심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해서 조금 더 성찰하시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공공기관에 있는 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면 우리 사회가 더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노력이 아닌 서로의 노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다를 찾아서 - 우주도서관으로의 여행

김율희 (지은이), 시와동화(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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