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5 13:17최종 업데이트 22.11.0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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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멕시코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죽은 자의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조상이나 가족들의 무덤을 정성스럽게 꾸민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을 즈음하여 돌아가신 조상과 가족을 기억하고 쎔파수칠Cempasuchil이라 불리는 꽃으로 무덤과 집에 별도로 마련된 제단을 장식한다. 각 집안의 제단에는 고인들이 평소에 좋아했던 물건들이나 음식들이 놓이고 가족들이 모여 그들을 기억하며 사후 세계에 있을 그들의 명복을 빈다. 멕시코 사람들은 그들이 죽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들 서로가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죽은 자의 날' 매년 11월 2일이지만, 보통 학교와 관공서들은 10월 31일부터 휴무에 들어간다. 11월 1일은 '죽은 아이들의 날'로 가족 중 어려서 죽은 아이들에 대한 추모가 이어진다. 죽음이 이토록 화려하게 기억되는 즈음, 우리엘은 죽은 그를 기억해 줄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도 못한 채 아무런 흔적 없이 남의 무덤 한 편에 묻혔다. ⓒ 위키커먼스

 
어두워질 무렵 한 여자가 찾아왔다. 우리엘과 함께 살던 여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며칠 전, 우리엘이 죽은 것 같다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우리엘과 함께 살던 여자가 마을을 돌며 돈을 구하고 다니는 중이라고, 우리엘이 죽었는데 장례 치를 돈이 없다면서 집집을 돌며 돈을 구하러 다닌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는 이웃 역시 우리엘의 죽음에 대해 긴가민가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마약에 빠져 사는 여자라며,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죽었다고?

나 역시 설마, 생각했다. 며칠 전까지도 우리엘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체테(정글도)와 커다란 비 한 자루를 들고 개 대여섯 마리를 끌고 다녔다. 그 날 보니, 떨어져 나간 신발 밑창으로 발 한쪽이 삐죽 나와 있었다. 우리 집에 와서 낡은 신이라도 가져가라는 말에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기뻐했다.

그 다음 날, 내가 없을 때 집에 온 우리엘에게 나 대신 옆집 할아버지가 당신이 신던 낡은 신을 한 켤레 주셨다고 했다. 어쩐지, 할아버지 집과 우리 집 앞에 비로 쓴 자국이 정갈하게 드리워져 있더라니. 낡은 신이라도, 그 신을 얻어 신고 그냥 갈 우리엘이 아니었다.
 

우리엘은 종종 우리집에 들러 남은 음식을 챙겨가기도 하고 낡은 옷이나 신발을 받아가기도 했다. 아무리 소박한 음식이라도, 아무리 낡은 옷이나 신발이라도 우리엘은 그냥 받아가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시간이 날 때 집 앞을 쓸어두거나 집 안으로 들어와 마당 풀을 정리해두고 갔다. 우렁각시처럼. 가진 것 하나도 없이 하루하루 겨우 밥과 마약을 사 먹어 가며 살아갔지만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고향에 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 마저도 고향에 닿지 못하였다. 첫 번째 아내가 병으로 죽기 전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돈을 모아줘 여비를 마련해 아픈 아내를 데리고 그의 고향 마을에 보름 간 다녀올 수 있었다. 오고 가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릴 만큼 그의 고향은 먼 곳이었다. ⓒ 림수진

 
죽음의 징후는 없었다. 며칠 전 봤을 뿐더러, 자그마한 체구에 몸이 가벼워 사뿐사뿐 나무 오르는 모습을 보면 딱히 아플 만한 곳도 없는 듯했다. 무엇보다 젊었다. 그에게 나이를 묻진 않았지만, 마흔을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우리엘이 죽었다는 소문은 장례를 핑계로 당장 마약 사 먹을 돈을 구하기 위한 여자의 '뻔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가면서 소문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매장 대신 화장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마약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러니까 마약의 적량을 조절하지 못해서 죽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아무래도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이웃은 내게 그 여자가 오거든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돈을 줘봐야 당장 그녀의 마약 값으로 쓰일 것이란 이유였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해가 질 무렵, 우리엘과 같이 살았다는 그 여자가 찾아온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지폐 몇 장이 담긴 작은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쥔 그녀는 우리 집 앞에 선 채 혼자 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엘이 죽었다고, 매장은 생각지도 못하고 화장을 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 외상으로 했다고, 그리고 외상값을 갚지 못해 열흘 넘게 화장장에서 우리엘의 유골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우리엘이 어찌 죽었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일을 나간 우리엘이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몸을 덜덜 떨면서 집으로 왔다고 했다. 여느 날 같으면 아침나절 번 돈으로 빵하고 코카콜라를 사오는데 그 날은 빈손으로 와 당장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자가 급히 라임을 따 즙을 내 먹였고 꿀을 구해 입으로 흘려 넣었는데 몸을 더 심하게 떨고 침을 흘리며 헛소리까지 하더라고 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이온음료를 먹고 싶다 하여 여자가 급하게 가게로 뛰어가 음료 한 병을 외상으로 줄 것을 간절히 청했으나 두 곳 가게 모두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약에 손을 댄 이후 이미 여러 가게에 외상 빚을 지고 있었을 것이다.

음료를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와보니 우리엘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다시 가게로 뛰어가 앰뷸런스를 불러줄 것을 청했고 한참이 지나 앰뷸런스가 왔지만 마약 과다복용이라는 말만 남겨두고 돌아갔다.
 

메탐페타민 일종인 마약 '크리스탈'은 유리관 안에 소량의 가루를 넣고 열을 가열하여 연기를 흡입하는 형태다. 가격이 저렴하여 '가난한 자의 코카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적은 돈으로 취할 수 있는 마약이기에 빈민층과 학생들을 상대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한 번 취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5-6천원 정도다. 물론, 신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리관은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전구다. 일명 '전구 마약'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전구 속을 비우는 법부터 크리스탈이라 불리는 마약 가루를 넣고 연기를 내 흡입하는 안내들이 매우 자세히 나온다. 마을에 유난히 전구 도둑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멕시코 작은 시골마을까지도 이토록 치명적인 화학마약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한 남미 국가들에서 올라오던 코카인과 달리 대부분의 원료는 중국에서 들어오고 멕시코에서 대량 생산된다. ⓒ NoroesteTV 뉴스

 
마약 과다복용은 보건소나 공공병원의 치료 대상이 아니다. 비싼 치료비를 내야 하는 사설 병원은, 차라리 죽고 말지 이들은 감히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여자는 오전 나절 제초작업을 하다 농약에 중독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앰뷸런스는 마약 과다복용이란 말을 명확히 남기고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저녁 무렵 우리엘이 죽었다.

마약에 빠진 가난한 이웃

우리엘은 우리 마을에 일가친척이 없다. 그는 이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치아파스 주에서 왔다고 내게 이야기했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세히 전하지 않았지만, 5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감옥에서 나와 보니 이 곳이었고, 이곳에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가 병으로 죽은 후 다시 혼자가 되어 떠돌다가 3년 전 지금의 여자를 만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여자와 함께 마을 밖 계곡 아래 판자로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살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집 안에서 그대로 비를 맞을 만한 집이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와중에도 늘 대여섯 마리씩 개를 데리고 다녔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해주거나 들판에 나가 야생 호박이나 과일을 따 생계를 이어갔다.

몇 해 전 그의 첫 번째 아내가 죽은 뒤 마약을 먹기 시작했다. 마약은 그에게 잠시나마 배고픔과 슬픔을 잊게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굳이 숨어 사 먹을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선 쉽고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성격이 온순하고 일손이 빨라 마을 사람들은 허드렛일이 생길 때마다 그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돈으로 마약을 사 먹었다

지난 3월 어느 날, 늦은 밤 우리엘이 찾아왔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로 그가 우리엘인지 알았지만 부러 나가지 않은 채 집 안에서 누구냐고 물었다. 그간 봐 온 우리엘이었다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불쑥 찾아올 리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해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혹여 남은 음식 한 그릇이나 낡은 옷 한 벌만 얻어도 자신이 가진 연장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마체테와 빗자루를 이용해 그 집 안팎을 깨끗이 다듬어 놓고 갔다. 무엇보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웠고 동물들에게 친절했다.
 

일을 해주고도 그 대가로 주는 것들을 받는데 영 수줍어 하던 우리엘이 유일하게 눈독을 들이고 내게 달라고 청한 물건은 우리집 개 사료 포대였다. 어느 날 부엌에서 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다가 문득 내게 물었다. "개가 사료를 다 먹고 나면 혹시 개 사료 포대를 나한테 줄 수 있어요?" 짱짱한 개 사료 포대를 오리고 꿰매 바랑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간 밋밋한 비료 포대로 만든 바랑을 메고 다니던 우리엘은 우리집 개 사료 포대 그림과 색이 예뻐 자신의 바랑 역시 멋있어 졌다고 개 사료 포대로 만든 바랑을 메고 올 때마다 스스로 감탄을 쏟아냈다. 이후 개 사료 포대가 나올 때마다 마치 소중한 물건을 받아가듯 들고 가서 온갖 가방과 방석을 만들어 들고 다니고 때론 그 포대에 다시 호박이나 망고 혹은 아보카도 등을 가득 담아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이젠 개 사료 포대를 받아갈 우리엘이 없다. ⓒ 림수진

 
그런 그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나를 찾아와 불렀다.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우리엘이라고 답을 했지만 짐짓 모른 척 다시 뉘시냐고 물었다. 우리엘, 길지 않은 그의 이름이 답으로 오는 사이 그 목소리에 혹여 마약 기운이 느껴지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현관문을 열고도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는 집 안에 그리고 우리엘은 집 밖 선 채 이야기가 오고 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말에 우리엘은 더듬더듬 답을 이어갔다. "배.. 배가.. 고파서요." 짧은 말 속에 그의 미안함이 느껴졌다.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돈을 주면 혹시 마약 사먹을까 싶어 늘 음식으로 줬지만 그 날은 약간의 돈을 함께 줬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문 연 가게 있거든 우유라도 한 병 사서 먹으라고 당부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내 뒤에서 더듬더듬 그 나름의 변명을 이어 나갔다. 낮에 일을 다녀와 잤는데 그만 저녁 내내 자버리는 바람에 밥을 못 먹었다고. 다시 자려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다시 잠 들 수가 없었다고. 마을 밖 계곡에서 칠흑 같이 어두운 길을 더듬어 왔을 것이고, 불 켜진 집을 찾다 우리 집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해 돌아와 보니 우리엘이 우리 집 마당 풀을 베고 있었다. 시키지 않은 일이지만, 그 날 밤 음식을 얻어간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밤늦게 우리엘이 다녀간 다음 날 마을 사람들에게 여차저차 자정이 가까운 밤중에 우리엘이 찾아왔었더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그간 마을 사람들이 우리엘에게 한마디씩 한 모양이었다. 배가 고프면 밤이 늦기 전에 밥을 얻으러 다니라며 마을 사람들에게 혼났다는 말을 전하며 다시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 역시 그에게 한 마디는 해 둬야 할 것 같아 왜 그렇게 늦게 돌아다녔냐고 물었더니 "시.. 시계가.. 없..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기도 없는 집에 시계마저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마을엔 임자 없이 길에 선 나무들이 망고, 오렌지, 아보카도 등 풍성한 열매들을 내주었다. 워낙 흔한 과일들이라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우리엘은 항상 성실하게 이 열매들을 따 모아 돈으로 바꿔 썼다. 몸이 워낙 가벼워 나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 열매들을 따 내렸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아보카도 나무도 항상 우리엘이 올라가 열매를 따 내렸는데, 당장 내년부터는 열매를 따 내릴 이가 없다. ⓒ 림수진

 

우리엘은 가끔 우리 집을 드나 들었다. 그 자신이 배가 고파서도 드나들었고 늘 데리고 다니는 개 대여섯 마리의 배가 고파서도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나 또한 허드렛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부탁했다. 몸피가 작고 가벼워 어지간한 곳은 사다리 없이도 훌훌 올라 다녔다. 죽기 며칠 전에는 길가에 임자 없이 선 나무에 올라가 아보카도를 땄다고 자루에 담아 메고 가다 굳이 우리 집에 한 바구니를 내려놓고 갔다. 더 내려 놓겠다는 것을 다시 자루에 담아주며 하나라도 더 팔아 돈 만들라고 당부하여 돌려보냈다. 차라리 그 때 그가 덜어주는 아보카도를 좀 더 받았더라면 마약을 조금 덜 먹었으려나.

그녀의 배신, 플라스틱에 담긴 유골

지난 목요일 나를 찾아온 여자는 내가 돈을 줄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듯했다. 여자가 주절주절 말을 이어 나가는 동안 나는 이 여자에게 돈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돈을 주자니 그 돈 가지고 마약 사 먹어버릴까 싶고 돈을 아니 주자니 죽은 우리엘에게 미안했다. 그녀에게 화장장에 진 외상 빚이 얼마인지 물었다. 8천 페소(약 50만원)라고 했다. 유골을 찾아와도 당장 묻을 수 있는 땅 한 뼘 없는데 왜 굳이 찾아오려고 하는지 이어 물었다. 그녀는 죽은 우리엘을 위해 연미사를 드려주고 싶다고 했다. 가장 슬픈 이는 자기가 아니겠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그녀에게 손에 쥐고 있는 비닐봉지 속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4천 페소 정도 된다고 했다. 우리엘이 죽던 날 이온음료 한 병 사다 줄 돈이 없던 그녀에게 큰돈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와중에 그 돈을 봉지에 담아 손에 쥐고 다니는 그녀를 믿어 보기로 했다. 얼마간의 돈을 그녀에게 건넸다. 인간 대 인간으로 그녀를 믿고 싶었다. 설마 같이 살던 사람의 죽음을 팔아 득을 취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어 이 돈은 당신 주는 돈이 절대 아니라고, 죽은 우리엘에게 주는 돈이라고, 그렇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마을 사람들과 내게 돈을 받아 간 그 여자는 결국 마약을 사 먹었다. 읍사무소 복지과에서 그 여자를 불러 물었을 때 그녀가 가진 돈은 1200페소가 전부였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마약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고 절망스러웠고 무력감이 밀려왔다.

지난 토요일, 마을 사람 몇 명이 직접 화장장에 가서 우리엘의 유골을 찾아왔다. 읍사무소 도움으로 외상으로 남아 있던 화장 비용을 절반으로 깎고, 우리엘과 함께 살았던 여자로부터 1200페소를 빼앗고, 모자란 돈을 다시 모아 우리엘의 몸을 태우며 진 빚을 갚고 재가 된 우리엘을 찾아왔다. 다만 겨우 맞춰간 돈으로 유골함까지 구할 수 없어 한 줌 재가 된 우리엘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왔다.

이 세상에 살았던 36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을 우리엘이 죽어서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긴 채, 위령 미사도 받지 못하고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묻히지도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았던 이 마을을 여전히 떠돌고 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마을 사람 누군가 선심 써 내준 누군가의 무덤 발치에 흔적 없이 묻힐 것이다.
 

2017년 디즈니사에서 제작하여 개봉한 <코코(COCO)>는 멕시코 '망자의 날' 혹은 '죽은 자의 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손꼽힌다. 멕시코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해주는 한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매년 망자의 날인 11월 2일 즈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집 안팎에 돌아가신 가족들의 사진과 함께 꽃과 음식을 올려 제단을 꾸민다. 꽃은 '쏌파수칠Cempasuchil'이라 불리는 주황빛 멕시코 국화가 사용된다. ⓒ Disney

 
이곳 멕시코에서는 '망자의 날' 혹은 '죽은 자의 날'이라 불리는 11월 2일을 앞두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무덤이 꽃과 장식으로 꾸며졌다. 온통 꽃으로 장식된 마을 공동묘지에 작은 비 하나도 세우지 못한 채 누군가의 무덤 한 편에 흔적 없이 묻히는 그의 죽음이 더욱 쓸쓸하다.

멕시코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더욱 가난하게 태어나 길지 않은 삶을 가난과 함께 떠돌며 싸구려 마약에 취해 살았지만 우리엘은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고 동물을 사랑할 줄 알았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았다. 그런 우리엘이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닌, 싸구려 유골함에라도 담겨 묻혔으면 좋겠다.
 

멕시코 망자의 날 즈음에 사용되는 꽃 쎔파수칠Cempasuchil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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