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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노동위원회 판결 전 세종대학교에서 세종호텔까지 행진하면서 호텔조리사 모자를 쓴 채 비 맞으며 걷는 고진수 지부장
▲ 세종대학교에서 세종호텔까지 행진하던 중 내리는 비를 맞는 고진수 지부장 중앙노동위원회 판결 전 세종대학교에서 세종호텔까지 행진하면서 호텔조리사 모자를 쓴 채 비 맞으며 걷는 고진수 지부장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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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고진수씨는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진수씨는 일식당 '후지야'에서 생선 손질 등 식재료를 준비하는 계약직으로 호텔 생활을 시작했다. 6년간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했다. 하루에 13시간씩 호텔에 있어야 했다.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긴 했지만, 브레이크 타임에도 영업 준비를 하거나 투입되기 전 대기하는 시간도 있었다. 회사는 '브레이크 타임'이라며 그 시간의 돈을 월급에서 뺐다고 한다.

봉사료(service charge) 지급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봉사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금액으로, 고객 음식값의 10%를 받았는데 그걸 전방부서(식음료부직원)와 후방부서(조리부 직원)가 6:4로 나눠서 받았다. 당시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었는데, 봉사료는 많이 날 땐 20만원도 넘게 차이가 났다. 진수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임에도 브레이크 타임이라며 월급에서 빼고, 12시간 넘게 일해도 수당도 없고, 봉사료는 적게 분배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커졌다.

그게 진수씨의 첫 투쟁 목표가 되었다. 2004년, 진수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2005년, 노조집행부가 바뀌는 시기가 다가오자 노조 대의원으로 나섰다. 대의원이 된 진수씨는 "브레이크 타임에도 임금을 지급하라", "봉사료를 차등 지급하지 말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브레이크 타임과 연장 수당에 대한 요구는 경영진의 반감을 샀고, 봉사료 문제는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라 잘 진행되지 않았단다.

그로 인해 진수씨는 여의도에 있는 외식사업체 요리사로 호텔에서 쫓겨나듯 발령받았다. 처음 여의도로 출근하던 날, 그는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곧 세종호텔이 해당 외식사업체를 접게 되면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와선 한식뷔페 '은하수'에서 약 5년을 더 일했다.

'노조 조합원'이 됐다... 연대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세종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는 고진수 지부장
▲ 세종대학교 앞에서 발언하는 고진수 지부장 세종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는 고진수 지부장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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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온 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일 대충하려고 노조에 들어간 거 아니냐고 말하곤 했지만, 그에게 오히려 노동조합원이라는 '딱지'는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그 노력은 회사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호텔은 조합원들만을 콕 집어 인사이동시켰다. 전화 교환원이나 비서로 일하던 조합원이 갑자기 청소를 해야 했다고 한다. 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진수씨와 조합원들은 결국 기존에 소속되어 있었던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새로 가입하며 파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2012년 1월 2일, 진수씨는 생애 첫 파업을 시작했다. 세종호텔 역사상 첫 파업이기도 했다. 회사와 노조 모두 파업 경험이 없었지만 싸움은 가열차게 이어졌다. 당시 노조의 요구조건은 2가지였다.

"부당한 인사이동을 철회하라."
"단체협약대로, 무기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파업이 시작되면서 로비를 점거한 뒤, 세종노조 조합원과 새로 만들어진 노조 조합원들 사이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밀치고 당겼고, 쌍욕과 비방이 난무했다고 한다. 프런트(계산대)업무에 대체인력이 투입되는 걸 막기 위해 조합원들은 프런트에 진입했다. 그러나 숫자가 많은 사측노조원들은 소수인 세종노조를 끌어내려 했고, 죽을 힘을 다해 버텼던 조합원들은 결국 끌려나가게 되었다.

진수씨는 "그때 그나마 내가 오래 버텼지"라며 이때를 회상했지만, 그 자신도 결국은 끌려나갔노라 말한다. 다만 객실관리 노동자 중 대부분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쟁이 길어질수록 좋은 조건을 회사에서 제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측노조 조합원들은 아예 호텔에서 먹고 자면서 그 모든 노동을 커버했단다. 투쟁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었다.

설을 기점으로 해 투쟁 열기가 한풀 꺾였다. 그런데 2월 초, 수많은 사람이 호텔을 찾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알고보니 동지였다. 진수씨로서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 뜨거운 연대였다.

당시는 KEC,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코오롱, 재능교육, 한진중공업 등의 노조가 '희망뚜벅이'라는 공동 투쟁을 하던 시절이다. 그들이 모두 세종호텔 앞으로 모였고 약 80명 연대동지가 로비에 함께 들어가니 회사라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때 진수씨는 '함께'의 힘을 온몸으로 체감했고, '연대'가 승리의 필수요소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38일간의 파업투쟁은 이듬해인 2월 8일자로 마무리되었다. 4명 계약직은 단체협약에 따라 정규직이 되었다. 부당전보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절반의 값진 승리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후회없는 투쟁이었단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이 집권하면서 투쟁사업장들은 더 상황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각 사업장 노조의 간부들이 보여서 회의를 하던 중, 박근혜 정권이 진행되는 한 노동조합에게 유리한 형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박근혜퇴진공동투쟁단'이다.

물론 진수씨도 함께였다. 한번 모이면 아무리 회의가 빨리 끝나도 5시간은 걸렸다. 절박함과 치열함이 만들어낸 뜨거움이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 투쟁을 진행하던 중 진수씨는,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해서 쉽게 각 사업장의 문제가 풀리고 노동자 환경이 시스템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동지들의 생각도 같았다.

2016년, 세종정부청사 앞에 천막을 쳤다. 요구조건은 '노동법 전면 재개정'이었다. 누군가는 '박근혜 퇴진'보다도 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해도 노동법이 전면 개정되지 않으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 명확해보였다. 노동자의 생활이 바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4월, 진수씨는 5명의 동지들과 함께 광화문의 한 빌딩에 올라갔다. 고공농성의 시작이었다. 따뜻한 햇살과 대비되는 차갑고 단호한 의지를 가진 6명의 노동자는 고공에 올라서면서 단식에도 돌입했다.
 
고진수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장이 9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추석전 희망퇴직 공고한 세종호텔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진수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장이 9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추석전 희망퇴직 공고한 세종호텔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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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집단 삭발을 했다. 이 싸움을 지켜내고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후 문재인이 청와대에 입성하던 날까지, 그는 총 28일간의 고공 및 단식 농성을 마치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진수씨는 온전히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그럼에도 박근혜 퇴진이 이루어졌다는 기쁨을 함께 느꼈다.

2021년, 호텔엔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러 활동가와 조합원들은 정말로 해고가 있을지 판단했는데, 당시 진수씨는 '호텔 입장에서는 해고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세종호텔 노동자의 전체 숫자가 약 60명이었고 그중 약 35명이 민주노조 조합원이었다. 만약 35명의 조합원이 더는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면 호텔은 수십명을 단체로 해고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또한 15개 층에 333개의 객실을 가진 호텔을 고작 60명으로 겨우 버티는 중이었는데 수십명을 추가로 해고하면 호텔 운영이 불가능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회사의 희망퇴직 권고는 3차까지 진행되었고, 그러는 사이 룸메이드와 시설관리, 식음료사업장, 프런트를 가리지 않고 다들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갔다. 결국 조합원 숫자는 35명에서 18명으로 줄었다. 2021년 12월, '해고자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민주노조 조합원 15명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한다(호텔 측이 내세운 해고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이었다). 진수씨도 15명 중 한 명이었다. 그 뒤 현재 회사는 고작 22명 정규직으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의 투쟁은 연결돼있다, 내일의 나와

진수씨는 2012년, 2015년, 2019년의 투쟁과 지금의 투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 투쟁은 진수씨가 직접적 당사자는 아니었으나 이번엔 본인이 해고되었으니 조금 느낌이 다르지 않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뇨"라고 확답했다. 이전의 투쟁에서도 진수씨는 자신의 사업장 문제이거나 자신의 노동자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 노동자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거다. 한 투쟁이 승리로 끝나느냐 패배로 끝나느냐는, 이후에 자신이 당사자가 될 투쟁과도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진수씨는 이전의 투쟁과 지금의 투쟁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2012년 파업, 2015년 정권 투쟁, 2019년 김상진 복직 끝장 투쟁이 끝날 때마다 세종노조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수씨는 쉼 없이 투쟁했다. 천막 농성, 문화제 등 참여도 쉬지 않았지만 그보단 일상이 되어버린 현장 투쟁의 자리에 항상 있으려 했다. 사람들이 첫 번째 투쟁이 언제냐고 물으면, 진수씨는 파업했던 2012년이 아니라 '노조 간부가 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쭉'이라고 대답한다. 진수씨는 "직장에서 할 말은 다 하고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진수씨는 승진도, 월급 인상도 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할 말을 다 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 세종노조의 투쟁 결과를 예측해보자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딱히 이상적으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승리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진수씨는 답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고 사회적 흐름을 분석해보면 세종노조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그는 말한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조합의 투쟁현장에 연대방문 한 후 발언 중인 고진수 지부장
▲ 투쟁사업장에서 연대발언중인 고진수 지부장 아사히글라스 노동조합의 투쟁현장에 연대방문 한 후 발언 중인 고진수 지부장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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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씨는 복직은 오히려 쉽다고, 복직한 후가 그보다 어렵고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고 전엔 어떻게든 회사에 헌신한다며 탄력적으로 일하고 아등바등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복직 후엔 그러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더욱 커지고 힘을 가져야 하며,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각기 노동자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투쟁이 실패하게 된다면, 세종호텔엔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없어지는 셈이 될 것이다. 과거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투쟁도 미래의 투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조합은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점차 주체적으로 변하도록 하는 일종의 '학교'이다. 나도 조합원 인터뷰를 쭉 진행하면서 깨달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당당하게 살고 싶어서, 스스로 부끄럽기 싫어서, 기왕이면 잘 먹고 살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에게 진수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행복함과 당당함'이라는 이상에 도달하려면, 주체적인 삶에 대한 선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함께 가자며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다그치는 진수씨가 있어서 세종노조에겐 참 다행이다. 진수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동해방은 조금 먼 미래 같지만, 세종노조의 승리는 어쩌면 그보다 가까울지도?'라고.
 
고진수 지부장이 호텔 앞에서 선전전 중인 모습.
▲ 세종호텔 정문 앞에서 선전전하는 고진수 지부장 고진수 지부장이 호텔 앞에서 선전전 중인 모습.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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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종호텔 노동조합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에 세종호텔 정문(명동역 10번 출구)에서 문화제를 진행합니다. 해고철회를 촉구하는 문화제에 함께 하고 싶은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인스타그램(@sejonghotel_union)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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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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