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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은 별이 4개인 일명 '특급호텔'이다.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30초면 도착 가능한 초역세권에 위치했고 가성비가 좋은 호텔로도 유명하다. 이름에서 많이들 추측하듯 세종대학교, 세종사이버대학교와 같은 재단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세종호텔은 영어시험을 기준으로 셰프와 주방 보조 등을 해고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는데 3년간 쌓인 인사고과와 영어시험, 재산 보유내역을 회사에 제출하게 한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해고 기준이라며 관광레져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 지부 노동조합원들은 해당 과정을 모두 거부했다. 이후 15명의 조합원이 해고되었다. 그중 현재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사무장이자 28년 차 호텔리어인 허지희씨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 기자말


3교대 근무로 호텔 노동을 시작하다
 
아침에 집에서농성장으로 허지희 조합원이 가고 있다.
▲ 농성장으로 아침에 출발하는 허지희 조합원 아침에 집에서농성장으로 허지희 조합원이 가고 있다.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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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26일, 지희씨는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입사 전 그는 다른 호텔에서 전화교환으로 1년 정도 일했기에 세종호텔로 이직할 때도 자연스레 전화교환으로 들어갔다. 전화교환실은 총 8명이 3교대로 일하면서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서 스케줄 근무를 했다. 각 시간대별로 2명씩 근무했는데 야간에는 1명씩 돌아가면서 2시간 쪽잠을 자기도 했다.

교환실 선배들은 좋았고 일도 지희씨에게 잘 맞았다. 교환실의 막내인 지희씨는 선배들의 성격에 모두 맞추며 일했다. 성격을 맞추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나중에 후배가 들어오면 '그도 선배들 성격에 맞추며 일하겠거니' 하고 지희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상상에 그쳤다. 세종호텔은 지희씨를 마지막으로 더는 전화교환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희씨는 세종호텔의 마지막 정규 전화교환원이었다.

교환실에서 9년 정도 일했을 무렵, 결혼을 했다. 지희씨는 빨리 아기가 갖고 싶었다.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고 유아차에 태워서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임신은 쉽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을 두 번이나 하고 자궁 외 임신, 화학적 임신 등을 겪었다.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도 하고 심장이 생기지 않는 '몸'을 뱃속에 갖게 되는 일도 겪었다. 그속에서 유산을 두 번이나 했다. 자궁은 당연하고,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스트레스도 많고 속이 많이 상해서 길에서 유아차만 봐도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곤 했다.

야근을 자주 하는 직업,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임신·출산의 어려움과 높은 유산 확률이다. 3교대 근무라서 야근이 기본인 지희씨가 임신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적지 않은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지희씨는 사이버 대학에서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도 하고 있었다. 몸은 항상 긴장 상태였고 할 일은 많았으며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첫 아기를 임신했다. 아기가 태어나니까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야근하고 돌아오면 얼른 자고 싶은데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아이는 아침에 들어온 엄마와 얼른 놀고 싶어서 달려들었다. 제대로 못 자고 아이를 돌보다가 다시 출근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때부터 지희씨는 쪽잠이 습관이 됐다. 통잠을 자려고 해도 중간에 몇 번씩 깨는 데에 익숙해졌다. 이후 부서가 이동되었을 때나 해고된 후에도 2시간만 자도 잠에서 깬다. 여전히 지희씨는 중간에 한 번 깼다가 잠드는 하루 총 4시간 수면이 일반적이다.

세종호텔에서 룸메이드 발령이 의미하는 것
 
해고 후 시간이 지나서 여름에 반팔을 입고 선전전 중인 허지희 조합원
▲ 세종대학교 앞에서 선전전 중인 허지희 조합원 해고 후 시간이 지나서 여름에 반팔을 입고 선전전 중인 허지희 조합원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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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교환실 식구인 8명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4명이 됐을 무렵 그중 민주노조 회계감사였던 선배가 룸메이드 발령을 받고 사직서를 쓰면서 3명이 됐다. 지희씨는 그때 예감했다. '다음 순서는 내 차례다.'

왜냐하면 전화교환은 이미 인원을 줄이는 흐름을 탔고 남은 세 명 중 두 명은 사측 노조원이었다. 인원 감축이 들어오면 지희씨가 첫 타깃일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후 몇 개월이 지나고 2012년, 파업이 시작됐다. 고용이 불안했던 지희씨도 파업에 동참했다. 민주노조와 사측노조는 격렬하게 싸웠고 민주노조가 로비를 점거하던 중, 일이 터졌다. 덩치 큰 구사대들이 나타나서 조합원들을 벽에 밀치고 '꾸욱' 누르기 시작했다.

지희씨는 "그날 꼼짝없이 압사당하는 줄 알았어요"라며 그날을 떠올린다. 구사대와 벽 사이에 낀 조합원들은 숨을 쉬기 힘들었다. 지희씨 옆에 있던 조합원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사람이 쓰러져서 119에 실려가는 지경이 돼서야 구사대는 그만뒀다. 지희씨는 로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

2014년, 지희씨는 근속 20년이 됐다. 오전 10시에 간단한 기념식을 하면서 꽃다발과 근속모범상을 받았다. 오세인 대표와 기념사진도 찍었고 금 다섯 돈도 선물 받았다. 기념으로 자기계발휴가도 열흘이나 받았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아득바득, 20년을 버텨냈구나' 싶었다. 성취감과 뿌듯함 같은 감정이 뒤섞여서 기분 좋았다.

같은 날 오후 5시, 룸메이드로 발령 공고가 났다. 여성 직원을 괴롭혀서 내보낼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20년을 아득바득 버틴 결과가 '괴롭힘'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했다. 그리고 20년간 전화교환원만 했는데 갑자기 룸메이드로 발령이라니 앞으로가 막막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룸메이드 직원 30명 중 10명이 노조 조합원이었다. 모두 지희씨보다 선배였고 그들은 지희씨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줬다.

처음엔 5개 방만 청소하면 됐다. 일주일이 지나면 6개, 2주일이 지나면 7개, 3주가 지나면 8개로 점차 개수가 늘어났고 최종적으로 15개가 됐다.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게 정해진 근무시간이었지만 청소할 방이 남아있으면 퇴근할 수 없었다.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부터 방을 청소한다면 시간이 넉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텔 퇴실시간이 낮 12시인데 고객들이 아침 8시부터 퇴실할 리는 만무했다. 지희씨는 8시에 출근해서 12시가 될 때까지 인디게이터(객실상황판: 객실에 열쇠가 꽂혀있는지 표시하는 전자판)를 팔짱끼고 쳐다보며 4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혹시 한 방이라도 퇴실하면 얼른 달려가서 후다닥 청소를 해야 하니, 유니폼도 갈아입고 청소 카트도 준비해둔 상태로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긴장 상태를 오전 내내 유지했다. 물론 지희씨만 이런 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룸메이드들은 서로 물었다. "몇 방 남았어?" 다들 10개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사실상 15개의 방을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총 5시간 안에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연회주방에서 일한다는 것
 
세종호텔 정문 앞 목요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허지희 조합원
▲ 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허지희 조합원 세종호텔 정문 앞 목요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허지희 조합원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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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호텔은 룸메이드에게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30명이던 직원은 희망퇴직을 조금씩 신청했고 그 자리는 KHR(주명건씨가 운영하는 인력 자회사)의 비정규직이 금방 채웠다. 호텔은 룸메이드 전원을 외주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룸메이드 전원을 압박했다. 처음엔 안 나가고 버티겠노라 말하는 직원이 꽤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떨어져나갔고 결국 2명만 남았다. 그게 바로 지희씨와 김란희 조합원이다. 2021년 1월, 두 사람은 조리부의 팬츄리(주방 보조)로 발령받았고, 룸메이드는 100% 외주화됐다.

연회주방에서 주방 보조가 된 지희씨와 란희씨는 쉴 새 없이 일했다. 행사 전엔 재료를 손질했다. 가위로 갈비탕용 갈비를 잘랐고 전복 800개를 손질했으며 도시락통에 김치나 잡채를 1000개씩 담기도 했다. 그러다가 행사가 시작하면 갑자기 셰프로 변신했다. 주방장 모자를 쓰고 뷔페 즉석 코너에서 LA 갈비를 굽고 전을 부쳤다. 행사가 끝나면 천장까지 쌓인 그릇의 설거지를 했다. 행사 한 번에 도시락 몇천 개를 닦고 갈비탕 수백 그릇을 닦았다. 사흘간 설거지만 하는 게 보통이었다.

2021년, 1년 내내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대한 소문이 호텔에 파다했다. 회사는 구조조정협의체를 꾸려서 18차까지 회의를 진행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압박했다. 조합원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어쩌면 해고까진 아닐 수도 있잖아'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었다. 지희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리해고 명단이 발표되던 날, 조합원들의 이름은 이변 없이 들어가 있었고 지희씨의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새하얘졌다. 2021년 11월, 해고자 명단이 공개된 후 잡힌 규탄 기자회견이었다. 지희씨는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다가 울컥했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왜 노동조합 활동을 하나요?'라는 질문
 
시민단체 낭독회 행사에 참여하여 낭독중인 허지희 조합원
▲ 낭독 중인 허지희 조합원 시민단체 낭독회 행사에 참여하여 낭독중인 허지희 조합원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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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즘, 지희씨는 해고된 지 약 300일이 지났다. 지희씨는 왜 노동조합을 계속하냐는 물음에 생각보다 냉정한 답을 했다.

"저는 나이가 많아요. 여자가 이 나이에 나가면 용역회사 소속 룸메이드를 해야 하는데 호텔에 복직하면 정규직 자리와 연봉을 지킬 수 있잖아요."

지희씨는 노조가 자신을 지켜줬다고 생각한다. 비록 해고됐지만 지금도 노조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느끼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를 지키고 의지하는 공간이라는 따뜻하고 이상적인 마음만으로 노조에 남아있는 건 아니다. 지희씨는 세종노조의 투쟁이 승리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정규직으로 복직해서 정규직의 일자리와 연봉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희씨는 노조 활동이 이타적이고 정의롭기 때문에만 하는 게 아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다.

지희씨는 자신이 활동가가 아니라 직장인이라고 말한다. 지희씨는 노동해방을 위해 활동하는 게 아니라 기왕이면 잘 먹고살려고 싸운다. 해고의 억울함을 풀려고 싸운다. 호텔에서 일할 때도 잘 먹고 잘 살려고 일했고, 해고돼서 싸우는 지금도 잘 먹고살려고 싸운다.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자의 생활을 살만하게,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노동조합의 사무장이 돼 발언도 하고 경찰과 몸싸움도 하는 걸 지희씨를 통해 아주 많은 사람이 봐왔다. 어쩌면 미래의 지희씨는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소개했었던 활동가 허지희입니다'라고 소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여전히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희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지희씨의 선택이며, 기왕이면 잘 먹고살고 싶은 지희씨와 크게 다른 사람이 누가 있으랴.

덧붙이는 글 | 세종호텔 노동조합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에 세종호텔 정문(명동역 10번 출구)에서 문화제를 진행합니다. 해고철회를 촉구하는 문화제에 함께 하고 싶은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인스타그램(@sejonghotel_union)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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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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