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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그림책 읽기 수업이 6회차를 맞이했다. 그림책을 통해 현대사를 조망해보겠다는 취지 아래 한 달에 한 권씩 그림책을 나눴다. 부족하지만 우리와 아시아의 현대사를 살펴보고, 이제 시야를 넓혀 세계의 현실을 둘러보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집으로 가는 길>과 <일곱 명의 파블로>이다.

우리 집까지 함께 가줄래? 

<집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한 소녀가 집으로 가는 이야기이다. 학교를 마친 소녀, 서둘러 집으로 가려 한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멀다. 소녀는 '사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 집까지 함께 가줄래?' 
 
책 <집으로 가는 길>
 책 <집으로 가는 길>
ⓒ 노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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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집으로 가는 길>
 책 <집으로 가는 길>
ⓒ 노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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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함께 길을 떠난 사자, 당연히 거리의 사람들은 놀라자빠진다. 사자와 함께 한 소녀는 든든하다. 사자의 등에 올라타 버스보다도 빨리 날듯이 집으로 향하는 소녀, 서둘러 소녀가 향한 곳은 아직 걸음도 걷지 못하는 어린 동생을 맡긴 집이다.

엄마 젖 대신 쪽쪽이를 문 동생을 데리고, 소녀는 식료품 가게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겨우 돌아온 집, 하지만 소녀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일을 나간 엄마 대신 요리를 하고 동생을 먹인다. 사자는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동생과 함께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를 맞이할 때까지 함께 한다.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엄마는 소녀와 젖먹이 동생을 품에 안고 잠이 든다. 그런 가족의 머리맡에 있는 사진 액자, 그곳에는 아까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사자처럼 갈깃머리를 한 아빠와 가족들의 모습이 있다. 소녀의 아빠는 어디 갔을까? 소녀가 자신의 '보호자'로 청한 '사자'는 누구였을까?

사진 액자 옆에 놓인 신문에는 '1985년 내전 기사'가 실려있다. 이 그림책을 쓴 작가는 하이트 부이트라고, 1970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 하이트 부이트라고와 함께 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라파엘 요크텡으로 1976년 페루에서 태어나 1980년 콜롬비아로 이주했다.

이들이 살았던, 사는 콜롬비아는 요즘 인기를 끄는 <수리남>의 수리남과 같이 중앙 아메리카의 국가이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 독일의 3배나 되는 면적의 국토, 하지만 콜롬비아의 역사는 좌우의 대립, 마약 카르텔이 얽혀 끊임없는 내전으로 중첩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고향을 떠났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바로 그런 콜롬비아 현실을 그린다. 그림책 속 사자는 소녀의 '사라지거나, 목숨을 잃은' 아빠를 상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액자로만 남은 아빠가 소녀에게 의지가 될까? 최근 '가녀장'이란 용어의 등장처럼, 그림책 속 소녀는 돈을 벌어오는 엄마 대신 온전히 가정을 이끈다. 장도 보고, 어린 동생도 돌보고, 그런 그녀에게는 사라진 아빠보다, 사자와 같은 용기가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학교를 마친 소녀를 기다리고 있을 긴 하루를 위해 필요한 '용기'를 위해 '사자'를 소환한 건 아닐까?

"가고 싶으면 가도 돼, 하지만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와줘. 꼭"

서정적인 이야기에 담긴 가슴 아픈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 제11회 '바람 끝에서 상' 수상, 베네수엘라 방코 델 리브로 제30회 어린이 부문 '최고의 책' 선정, IBBY 어너리스트(Honour List)에 선정된 이유일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파블로들 
 
책 <일곱 명의 파블로>
 책 <일곱 명의 파블로>
ⓒ 지양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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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곱 명의 파블로>
 책 <일곱 명의 파블로>
ⓒ 지양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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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예요. 회전하는 지구와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그들의 심장도 똑같이 뛰고 있으니까요."

<일곱 명의 파블로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현재 멕시코에서 살고있는 작가 호르헤 루한이 글을 쓰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일러스트레이터인 키아라 카레르가 그림을 그린 <일곱 명의 파블로>는 라틴 아메리카에 사는 일곱 명의 '파블로'라는 이름의 소년들을 그려낸다. 

칠레에 사는 파블로는 광부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루 종일 700m 땅속에서 드릴로 바위를 뚫다 지쳐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다. 국가 경제의 대부분이 '구리' 수출에 의존하는 칠레의 현실이다.

에콰도르의 파블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아마존 밀림 속에서 살아간다. 아르헨티나의 소년 파블로는 군사정권에서 탈출하여 멕시코에서 산다. '냉혹한 군인들의 행진, 무자비한 군홧발에 짓밟힌 집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의 시 속에서는 그 잔혹했던 기억이 남겨져 있다. 

수업을 시작하며 그림책 속 국가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각 국가의 현실들을 살펴봤다. 우리보다 넓은 국토, 풍부한 지하, 혹은 천연자원을 가진 국가들, 하지만 한결같이 이념의 대립을 겪으며 '독재' 정권의 시대를 겪었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지난 역사의 잔재와 <수리남>에서 등장한 마약 카르텔의 영향력 아래 여전히 가난과 극심한 빈부격차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브라질 올림픽 당시에도 전세계적 문제가 되었듯이, 그림책 속 브라질 소년 파블로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뒤져 하루를 살아간다.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 소년에게는 연필도, 공책도 없다. 그림책이 발간된 2017년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이다. 

가이아나의 소년 파블로는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소년의 아메리칸 드림은 팍팍하다. 브롱코스의 단칸방, 사촌 형제들과 파블로 가족들은 서로 12시간씩 그 방을 '사용'한다. 그래서, 사촌들이 지내는 시간, 파블로는 '거리'를 떠돈다. 하지만 멕시코의 또 다른 파블로는 여전히 미국행을 도전 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건너간 미국, 하지만 소년 파블로는 두 번이나 붙잡혀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파블로는 친구들과 같이 오늘도 어머니가 준 목걸이를 걸고 미국을 향한다. 아이들에게 우유를 나눠주던 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대통령을 뽑는 대신, 아이들은 부의 국가로 향한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아성, 미국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또 다른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집으로 가는 길

하이로 부이트라고 지음, 김정하 옮김, 라파엘 요크텡 그림, 노란상상(2013)


일곱 명의 파블로 - 세상의 한가운데서

호르헤 루한 (지은이), 키아라 카레르 (그림), 유 아가다 (옮긴이), 지양어린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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