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남과 북은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파 공작원은 6446명(1953-1972),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북파 공작원은 7726명(1953-1999)으로 집계되고 있다.
 
1_1차 송환 이후, 2차 송환이라는 희망고문의 시간
 
2000년 9월 2일, 남북화해 물결이 급물살을 타던 때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마침내 북으로 송환되었다. 당시 6.15 남북공동선언 관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 두 최고지도자가 손을 맞잡는 사진, 그리고 고(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던 장면들은 통일이 곧 다가온다는 기대감을 안기기에 충분한 충격이었다. 마침 <상계동 올림픽>의 김동원 감독은 1992년부터 장기수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참이었다. 해당 작업은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남게 된) 2003년 영화 <송환>으로 이어진다.
 
<송환>은 2003년 완성 후 2004년 극장에서 개봉해 적지 않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김동원 감독은 곧바로 속편 기획에 돌입한다. 당시를 회고하자면, 감독은 곧 2차 송환이 이어질 테니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일종의 후일담 격 속편을 기획했던 것 같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강제로 전향서를 썼던 장기수들 역시 조금 지연되었을 뿐 원하는 바를 이루리라 예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송환>에서 당연히 연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수순을 20여 년이 지난 2022년 현재까지도 지연시킨 상태다. 결국 < 2차 송환 >은 1차에서 연속되는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부질없는 희망 혹은 믿음의 끈질김 사이를 오가는 신기루 마냥 머무는 상태로 남게 된 것이다.
 
좋은 타이밍을 놓쳐버린 뒤,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상태에 처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좌절과 환멸의 시간은 당사자들은 물론, 작업을 진행하던 감독과 제작진들에게도 당혹 그 자체였을 테다(김동원 감독은 <송환>의 두 번째 연작은 본인이 직접 연출하지 않고 본인이 속한 다큐멘터리 공동체 '푸른영상'의 다른 감독에게 맡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희망고문 그 자체인 당시 정체된 상황은 감히 어찌해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2000년 1차 송환 이후 20년 넘게 실행되고 있지 못한 미완의 2차 송환에 관한 이야기는 그 비극적 개인사들과 함께 그저 개인의 수난을 넘어 분단과 냉전의 역사가 품고 있는 거대한 폭과 깊이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고 만다.
 
2_<송환>의 속편 작업이 갖는 태생적 한계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

 
영화는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 직후부터 2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다룬다.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반도 정세 변화, 한국 내 정치지형은 물론 국제정세까지 포괄해낸다. 시대의 비극으로 남은 분단의 희생자들이 일일이 세세하게 호명되기 시작한다. 작품 속 중심이 되는 장기수뿐만 아니라 납북자 가족,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 탈북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을 품은 비극들을 감독은 오직 인권과 휴머니즘의 흔들릴 수 없는 원칙 아래 공정히 대하려 분투한다. 
 
하지만 영화화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송환2>는 남은 이들이 송환되어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성격의 작업으로 애초에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남북화해와 평화 기조에도 불구하고 남한 내 이견과 방해는 여전히 만만찮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 시기 악명이 높았던 강제사상전향 제도의 희생양으로 고문과 학대 끝에 억지로 전향문서를 써야 했던 과거로 인해 송환절차에서 후순위로 계속 밀려나야 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들 '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으로 송환하게 된다면, 과거 남한 정부의 반인권적 조치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공안당국의 고려도 작용했다. 게다가 북한이 실상을 부정하는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로 인한 상호주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된다.
 
영화는 여기에서 장기수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이들 입장만 강조하는 도그마에서 빗겨난다. 장기수 당사자들의 송환을 가로막는 첨병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납북자 가족대표와의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등의 균형감을 발휘한다.
 
3_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하기 위한 도전과 실험들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

 
2000년대 초반, 장기수 당사자들은 시름에 잠긴다. 수십 년의 시간을 경유하며 이들은 개별적으로 처지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도 문제다. 대개 1차 송환 당시 끝까지 전향문서를 작성하지 않은 덕분에 자신들이 바라던 북한으로의 송환에 성공한 이들은 대개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던 이들이다. 그들로선 이념과 사상을 넘어 소박한 가족애 때문이라도 반드시 북한에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친인척이 별로 없거나 오히려 남한에 사는 경우 상당수가 강제 전향문서에 서명하고 툭하면 색안경을 끼고 간첩 취급을 하는 공안당국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의 신조를 버린다고 공식문서에 남긴 덕분에 2차 송환은 그저 미뤄지기만 할 뿐이다.
 
카메라는 적극적으로 몇 차례 2차 송환의 기대에 설레던 당사자들을 포착한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남에서 새로 형성한 가족사이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감독과 출연자들의 생각엔 상호 이견이 적지 않다. 오직 신념과 의지로 혹독한 시간을 옥중에서 보냈던 장기수 노인들이 평생을 품어왔던 고집은 실로 대단하다. 출연자들이 퍽이나 불만을 피력하던 시도들, 특히 이들의 인간적 고뇌와 불안한 모습이 < 2차 송환 >이 담아낸 거대한 비극성과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그런 결과로 영화는 오히려 체제와 지형에 대한 의문을 품도록 견인효과를 조성한다. 
 
영화 속에서 장기수 노인들은 수십 년간 옥고를 치른 후 출소한 뒤에도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이들 마냥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남한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한데다, 그들이 그토록 타파하고자 노력했던 남한사회 자본주의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시련 속에서 먼저 다가와 친구와 가족이 되어준 존재들이 돋보이는 기획이다. 그리고 견디는 것을 넘어 각자 나름의 실천을 쌓아나가는 풍경이 두 시간 반 넘게 가득히 압축되어 있다.
 
4_실재함에도 잊혀져가는 분단모순을 온몸으로 상징하는 존재들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2차 송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

 
2000년대 초반 당시 2차 송환을 신청했던 46명 중 이제 불과 9명만이 현재 생존한 상태다. 그들의 평균연령은 90세가 훌쩍 넘어버린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정부당국도 별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그런 실정을 반영하듯 그동안 영화는 두 번 어그러졌다 곡절 끝에 부활한 상태다. 폭우가 쏟아진 뒤 굳은 땅처럼 영화는 한반도 현대사의 상처를 스스로 오롯이 구현하고 표상하려 노력한다. 그런 내용들 특히  동의할 순 없더라도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정중히 권하는 태도가 < 2차 송환 >의 큰 미덕이다. 그런 중용의 태도 덕분에 미완의 결산이지만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가독성은 결코 나쁘지 않은 기획이다.
 
김동원 감독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추가한다.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끄집어내 장기수 노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영화에 담는다. 자신 또한 그저 감독이나 인터뷰어가 아니라 장기수를 양산하는 남북한 체제 긴장이 가져오는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의도에서다. 그렇게 분단모순이 가져온 폐해를 감독 자신의 숙제로 짊어지는 선택을 통해 < 2차 송환 >의 지층은 한층 더 두터워진다.
 
< 2차 송환>이 포괄한 광대무변한 쟁점들을 가볍게 세치 혀로, 또는 즉자적 키보드 터치로 언급하는 것은 좋은 도리가 아니다. 제대로 이 영화를 언급하려면 냉전주의 온상의 껍질과 허식을 각자의 뇌리에서 지워야 한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깊이는 출연자들의 입장과 의견에 대한 지지여부와는 별개로 경청하고 고민해야 할 화두다. 본래라면 나오지 못했어야 할 <송환>의 속편은 원래 기획의도와는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음에도, 분단모순을 온몸으로 상징하는 주인공들의 녹슬지 않는 가치를 증명해냈다. 
 
<작품정보>
 
2차 송환 The 2nd Repatriation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2.09.29. 개봉|156분|12세 관람가
감독 김동원
출연 김영식
제작 푸른영상
배급 (주)시네마달
 
2022 23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 섹션, 다큐멘터리상
2022 13회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2 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평양시네마 섹션
2022 10회 무주산골영화제 판 섹션
2022 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
2022 11회 광주독립영화제
2022 25회 서울인권영화제
2022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마스터즈
2022 9회 춘천SF영화제

 
2차 송환 비전향 장기수 김동원 감독 푸른영상 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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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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