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덕> 포스터 이미지

영화 <성덕> 포스터 이미지 ⓒ 오드 AUD

 
1_<내 언니 전지현과 나>에서 <성덕>으로 이어지는 뉴웨이브
 
앞으로 몇 년 동안 2020년은 <내 언니 전지현과 나>, 2021년 <성덕>이 등장한 해로 한국 다큐멘터리 계에서 기록되고 회자될 것이다. 영화제에서 해당 작품들이 화제가 될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긴 했지만(<내 언니 전지현과 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성덕>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이 영화들이 일정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각각 1년 뒤 극장개봉을 맞이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일말의 불안이 기대와 확신으로 변하는 과정을 동일하게 거친 셈이다.
 
두 작품 모두 지극히 개별적인 체험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일상과 취향에서 소재를 발굴해 그것을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섬세한 터치로 세상에 드러내는 건 21세기 소위 'MZ세대'가 선보이는 다종다양한 독립영화들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두 작품 모두 각각 일반인들에겐 비교적 생소하지만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눈과 귀를 쫑긋 세울 화제성 가득한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자기만의, 혹은 소수의 열광적 지지자를 타깃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걸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해당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게 되는 첫 번째 전환점이다.
 
이 작품들은 1차적으로는 자신들의 범상치 않은 체험을 해당 이슈를 공유하는 세대들에게서 강력한 공감대로 이끌어내 자기 작업의 영토와 발언권을 확장한다. 그리고 2차 과정을 거쳐 마치 증류주가 정제되듯 원래도 좋은 재료의 효용을 극한으로 끌어내 세대를 초월하는 공통의 원형질을 추출해내고야 만다. 그렇게 고심 끝에 도달한 경계에서 지극히 내밀하게만 느껴졌던 주제는 그 사회적 의미와 함의를 드러내는 경지에 도달한다.
 
물론 그 장대한 모험 끝에 도달한 종말점이 놀라운 사회적 전망에 도달했다 하기에는 한계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 경향이 범람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해온 이들에겐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1968년 이후 묵은 구호가 MZ세대에게서도 발현된다는 확인만으로도 꽤 울림이 생길 법하다. 그러한 '발견'의 영화로서 두 작품의 의의는 개별적 만듦새의 호오를 초과해 족적을 남긴다.
 
2_아이돌 팬덤의 소우주 안에서
 
 영화 <성덕> 스틸 이미지

영화 <성덕> 스틸 이미지 ⓒ 오드 AUD

 
이제 극장에서 관객과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 오세연 감독의 <성덕>은 과연 어떤 작일까? 이미 많은 미디어에서 본 작품의 기본 개요를 언급한 바 있다. 일단 제목인 <성덕>은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다. 20대 초반의 감독은 또래 세대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중에서도 T.O.P. 급으로 아이돌 '덕질'을 해가며 고난의 10대를 통과했다. 인생 최초로 한 군데 집중해 열정을 지속한 대상인 아이돌 덕분에 감독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긍정적 기운으로 성공적인 10대 시절을 결산할 수 있었음이 영화 도입부에서 밝혀진다. 하지만 그렇게 '덕질'도 열심히, 학업도 무난히 수행해온 감독에게 거대한 위기가 닥친다.
 
그가 열혈 팬으로 애정을 쏟아왔던 아이돌이 성추문과 갖은 범죄로 나락으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감독은 소위 '탈덕'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놓고 보면 그냥 개인의 좌절담이다. 하지만 '아이돌 덕후'로 경지에 이르렀던 감독은 사유를 거듭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왜 적지 않은 덕질 동료들이 여전히 범죄자가 된 아이돌을 옹호하고 있는지 감독은 안쓰럽고 의아하다. 그래서 자기 주변의 지인들을 찾아 엉뚱해 보이지만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가며 과거의 자신 모습을 돌아보고 아직 남은 팬덤 층의 심리를 이해해보고자 순례에 나선다. 사회학적 관찰의 시작이다.
 
그 탐구의 여정에서 거대담론이 사라진 시대의 단면이 드러난다. 감독은 자기와 동 시대를 함께 헤치고 나온 또래 세대가 청춘을 바쳐 함께했지만, 기성세대는 물론 자신들조차 그저 개인의 일시적 탐닉으로 치부해온 아이돌 팬덤 문화의 근본에 도달하기 시작한다. 왜 자신들은 그렇게 다른 데에는 보이지 않던 열정을 유독 그들에게 바친 걸까. 상당수 팬들은 왜 아직도 범죄자로 전락한 아이돌을 놓지 못하는가. 감독은 여러 인터뷰 대상자와 대화를 나무며 이 의문을 꼬인 매듭 풀듯 고찰한다.
 
3_극단주의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영하다
 
그런 감독의 고민은 이제 친근한 자신들의 또래 세대를 뛰어넘어 세대 간의 대화에 도전한다. 해당 사안이 우리 세대만의 문제일까?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광화문 광장에 가득한 태극기 부대, 이미 사회적으로나 법적 심판으로나 논란이 종결된 탄핵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어른들은 대체 어떤 믿음과 의지를 가진 걸까. 그들과 우리의 '맹목'은 혹시 본질에서 동일한 걸까? 감독의 통찰은 급기야 기성세대의 덕질이라 할 태극기부대를 찾아 광화문에 출동하게 만든다. 그리고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말 그대로 어울리고 부딪혀본다. 학구적 태도의 기본과 정확히 '통'하는 지점이다.
 
감독은 놀랍도록 닮은꼴인 그 어른들의 순수한 믿음과 애달픔이 어떻게 '확증 편향'으로 향하는지 직접 확인한다. 이건 특정 세대의 문제거나 통과의례만이 아니구나 하는 발견과 함께 21세기 한국사회가 왜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자기 자신을 돌보기보다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극단적 위로를 삼는 세태를 양산하는지 실태를 확인한 감독은 만만치 않은 숙제에 직면한다. 그런 사유의 모험을 거치면서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던 그 아이돌의 범죄를 처음 기사화했던 기자를 방문한다. 감독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던 기자를 매도했던 과거의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토론을 시작한다. 그런 세대 간의 토론은 본인의 어머니와의 대담으로 연속된다.
 
어머니와의 대담을 통해 감독은 자신이 처했던 10대 시절의 상황과 그 아이돌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 가운데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게 되면서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이들과 공유해온 정서의 실체가 그저 특정 세대에 갇히지 않고 시민들의 공감으로 통하는 경로가 드러난다. 무엇이건 믿고 의지할 곳을 찾는 수요를 채워주는 아이돌 문화의 실체, 그리고 개별 아이돌에서 이탈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를 채워낼 기능이 공백 상태일 때 그저 대체재로 다시 복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민으로서의 균형감과 연대의식을 잃지 않고 '덕질'을 조화롭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해낼 수 있을까, 엉뚱해 보이지만 감독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다.
 
4_MZ세대가 발로 뛰어 재구성한 사회적 지형도
 
 영화 <성덕> 스틸 이미지

영화 <성덕> 스틸 이미지 ⓒ 오드 AUD

 
모험을 거듭해가며 감독은 학술적 이론이나 물려받은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발로 직접 고민하고 뛰어가며 어떤 성찰에 도달한다. 그리고 다시 초반에 인터뷰했던 또래 '동지'들과 만난다. 자신의 필요와 이해에만 맹목적으로 갇히지 않는 지속가능한 팬덤과 덕질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이 조화로운 덕후 문화는 어떤 형태로 성립될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탐구한 노력은 주인공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나의 일기장을 남들에게 보여줄 때는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에 걸맞은 각오와 함께 왜 타인이 그 일기장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법이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아쉽게도 그 지점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무엇이든 내뱉고 소리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박감의 토로에 머물곤 한다. 이해는 되지만 공감능력의 한계가 종종 아쉬운 이유다. 그런 와중에 세상에 선보인 감독의 비망록 <성덕>은, 정교한 세계관까지는 아닐지언정, 자신이 처한 고민을 동굴 속에 숨어서 감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끄집어내고 집단적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 결실이자 도전을 감당하는 용기의 결실이 수확된 결과물이라 단언할 수 있겠다.
 
영화는 미학적 고민이나 형식적 실험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투박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는 힘이 느껴진다. 보는 재미도 출중하지만 세대 간 공감의 가능성도 밝혀준다. 여기에서 더 바란다면 과한 욕심일 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다양한 단면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저력을 MZ세대가 재구성해낸 실험사례로 이만하면 좋지 아니한가. 낄낄대며 감독 본인의 엉뚱 발랄한 행보에 맞장구를 치다 어느새 한국사회의 '징후'와 그 해법에 도달해 깜짝 놀라게 만드는 용맹정진의 데뷔작이다.
 
<작품정보>
성덕 Fanatic
2021|한국|다큐멘터리
2022.09.28. 개봉|85분|12세 관람가
감독 오세연
주연 오세연(본인 역)
제작/각본/촬영/편집/내레이션 오세연
제작 해랑사
배급 오드 AUD
제공 오드 AUD
 
2021 부산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성덕 오세연 감독 아이돌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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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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