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7 12:42최종 업데이트 22.09.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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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교육청 현관의 <바르게 고쳐쓴 말> 입간판 ⓒ 김슬옹


유달리 가을 하늘이 짙푸르던 지난 19일 방문한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입구부터 우리말글 사랑 열기가 가득했다. '바르게 고쳐 쓴 말'이라는 입간판의 '다듬을 말/다듬은 말'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국어책임관 업무 교육청 분야 17개 기관 가운데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이유와 현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울산시의 이웃 도시인 부산시가 영어 상용화 정책으로 국어 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거기에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영어 상용 도시화 정책을 적극 공조하고 있는 터라 울산광역시교육청의 공공언어 바로쓰기 노력이 더욱 돋보이는 듯하다.

울산의 뚜렷한 우리말글 사랑 열기 

노옥희 교육감과의 대담에 앞서 국어책임관인 박현미 중등교육과장은 "울산광역시교육청은 2021년도부터 우리말 다시쓰기, 아름다운 한글 작품 공모를 통해 학생들에게 한글 사랑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오남용된 공공언어를 바르게 고쳐쓰기 위해 시교육청 각 부서별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 150여 개를 선정하여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전 학교에 배포하고 있다"고 자부심 섞인 공적(?)을 강조했다.


공공언어 바로쓰기 최우수상에 대한 기자의 축하에 재선에 성공한 노옥희 교육감의 답변은 겸손 그 자체였다. 학교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외솔(최현배 호) 정신을 실천한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작년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 제정부터 시작해서 공공언어 바르게 고쳐쓰기, 바른 말글 사용 중고등학교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지만, 그 가운데 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우리말 다시쓰기 사업이 좋은 성과를 낸 덕이라고 했다.

마침 울산광역시교육청이 있는 중구는 광복 후 제일 먼저 한글 전용 교과서 발간에 앞장 서고 '가감승제'와 같은 어려운 한자어를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와 같은 쉬운말로 바꾼 바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담 전에 외솔기념관을 들려 온 터라 최현배 선생에 대한 얘기가 대화의 물꼬를 술술 풀리게 했다.
 

기자와 대담하고 있는 노옥희 울산광역시 교육감 ⓒ 차민아


- 요즘은 중고생 선생님들도 외솔 최현배 선생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울산시는 다르겠죠?
"지난 광복절에는 울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서 외솔회의실과 본관 1층 현관에 외솔 최현배 선생님 동판을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학부모, 시민들께서 한글사랑, 일제 강점기에 "한글은 목숨"이라는 방명록을 남길 만큼 한글 사랑 나라 사랑에 남달랐던 외솔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다함께 노력하고 있고 특히 지역교과서를 만들어 외솔 정신을 특별히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대담 자리에 동석한 하광호 장학사는 검인정 교과서에 외솔 선생 글이 없어 외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지역교과서가 울산에서는 더 인기가 있다고 부언해 주었다.

- 사실 공공언어 바로쓰기를 특정 단체들이 노력한다고 쉽게 정착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의 실천이 더욱 돋보입니다. 학생 수업, 동아리 활동도 특별하게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제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웃음) 5개 중학교에서 외솔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 남기신 '한글은 목숨'이라는 이름으로 수업 동아리를 운영하여 순우리말 사전 만들기, 무분별한 외래어 고쳐쓰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17개 고등학교에서는 '한글은 힘'이라는 자율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바른 말글 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사들이 중심이 된 '외솔후학' 교사단 운영을 통해 국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연수 운영, 중등국어교육 관련 학교 현장 지원은 물론 우리말 다시쓰기 대상 어휘 선정 및 공모 제출 어휘 심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지요."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우리말 다시 쓰기 행사> 알림글(울산시 교육청 제공) ⓒ 하광호

 

울산시 학생들의 <한글은 목숨> 활동 사례(울산시 교육청 제공) ⓒ 하광호


동석한 박현미 중등교육과장은 12월에는 '함께 나누는 우리 말글 교육' 성과 발표회를 개최하여 연간 활동 결과를 공유하며 국어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발표회 열기가 뜨겁다고 덧붙였다.

이에 외솔 기념관, 오영수 문학관과 협력하여 학생 체험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울산대 국어문화원과 공문서 작성법에 따라 공문서를 올바르게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서 전 직원들과 학교에 배부할 것이라고 했다. 

'츤데레' 대신 '은근슬쩍 챙김이'는 어떤가요?

- 교육감님께서는 특별히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의 소통 문제는 어떤지요?
"한글 자모가 핸드폰 자판에 모두 들어가서 편리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쉽게 단어를 단축하거나 음소, 음절 단위로 끊어서 사용하다 보니 기성세대와 의사소통이 잘 안 돼, 그로 인해 세대간, 계층간 오해 아닌 오해로 갈등이 발생하니 학생들의 올바른 언어생활 및 세대 교류를 위해서라도 우리말 사업은 계속해서 강조할 생각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금일 휴업, 사흘'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보도를 보고 놀랐지만 '소통은 늘리고, 행복은 높이고'라는 말을 '소통 ON, 행복 UP'으로 쓰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단순히 순화어 쓰기 운동이 아닌 생활 속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옥희 교육감은 일방적인 순화어를 권유하는 방식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어를 마련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어떤 때는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대안어보다 학생들이 만들어낸 대안어가 더 자연스러운 경우도 꽤 있다고 하면서,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일본말에서 온 '츤데레'보다 학생들이 만든 '은근슬쩍 챙김이'가 더 자연스럽다면서 실제로 공공 선물을 슬쩍 챙겨주시는 모습이 '은근슬쩍 챙김이'였다.

시민 전체가 함께하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싶다는 교육감과의 대담을 마치고 교육청을 휘둘러보니 제일 먼저 '집현실'이라는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인재들의 집단 지성이 돋보였던 세종시대의 집현전이 울산시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 곳곳에서 피어나길 바라면서 울산을 마음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울산시교육청의 <우리말 다시 쓰기 행사> 알림글(울산시 교육청 제공) ⓒ 하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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