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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들깨밭에 가서 예초기를 메고 풀베기를 했다. 지난주 절반쯤 해놓았던 덕분에 이번 주엔 다행히도 세 시간 만에 마쳤다. 그러나 지난주에 풀을 벤 자리가 벌써 30cm나 자라 있어 실상 풀을 벤 흔적만 남았을 뿐 누가 보면 그냥 풀밭이나 다름없다. 지난주에 풀을 베어준 들깨 이랑은 옆의 풀보다 훨씬 크고 넓게 자라면서 풀들을 압도해 나가고 있어 풀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 지난주에는 고양이들이 몰려와 식빵을 훔쳐 먹고 컵라면을 물고 갔는데 이번엔 차 안에 고이 넣어 놓았기에 잘 지킬 수 있었다.

들깨 밭일이 끝났다고 집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논둑도 봐야 하고 하우스도 들러 작물들 상태를 봐야 했다. 우선 가까운 하우스로 가서 참을 먹기로 했다. 내가 하우스 입구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들을 대충 치우는 사이 아내가 나무 그늘에 참을 차렸다. 한 고랑 마주 끝내고 참을 먹으려고 예초기를 사정없이 휘두르다 급히 멈춰야 했는데, 내 눈에 풀숲 사이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은 새는 쒸익~ 쒸익~ 소리를 내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새는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벌리며 뭔가 달라고 했다. 몹시 굶주린 듯했다.
 
밭일을 하다가 발견한 어린 새.
 밭일을 하다가 발견한 어린 새.
ⓒ 이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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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예초기를 끄고 새를 손아귀에 넣고 동태를 살폈다. 이소를 하는 중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봐도 어미새는 보이질 않는다. 급히 풀밭을 뒤져서 작은 개구리 두 마리와 방아깨비 한 마리,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았다. 새에게 개구리를 먹이니 아주 맛있게 삼킨다. 메뚜기도 날름 집어삼켰다. 새를 어디에 놓아줄까 망설이다 주변이 온통 고양이 천국이라 금방 잡아 먹힐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이미 날개가 생겼고, 조금씩 날기 연습을 하는 수준이니 집에 가져와서 며칠 키우면 날려 보낼 수 있을 듯해 집으로 데려왔다.

오는 내내 새는 차량 뒤 칸에서 쒸익~쒸익~ 소리를 냈다. 차멀미가 왔을까 걱정이 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뒷문을 열어보니 멀쩡하게 날 보며 또 뭔가를 달라고 한다. 아까 잡은 개구리를 입에 넣어주니 날름 집어삼킨다. 우선 나도 점심을 먹어야 해서 콘티박스에 나무를 질러 넣고 홰를 만들어주고 시원한 바람이 통하게 한랭사로 덮어주었다. 어린 새는 맘에 들었는지 홰 위에 앉아서 연신 쒸익~쒸익~ 소리를 냈다.

나는 점심을 먹으며 아내에게 새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물었다. 아내는 멧골에서 왔으니 '메꼬리'로 하잔다. 그래, 메꼬리~ 그런데 갑자기 새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불길한 생각에 마당으로 급히 달려 나가니 고양이 놈이 한랭사를 찢고 어린 새를 물어 죽였다. 한순간이었다. 고양이가 도망을 쳤기에 잠깐 들어와 점심 자리를 대충 치우고 어린 새를 묻어주러 마당에 나가니 그새 죽은 새를 고양이가 물고 도망쳤다.

내가 괜히 자연에서 새를 가져와서 죽인 건가 싶어 우울한 마음도 생겨났다. 멧골에도 고양이들이 새나 쥐를 잡아먹고 하우스에 흔적을 두곤 했기에 좀 더 안전하게 키워주려고 데려온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지난주엔 고양이들이 내 식빵과 컵라면을 물고 가서 화가 났는데 이젠 어린 새마저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허무한 것이 생명인가 싶었고 저 고양이 놈을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지난번에도 창고에 들어와 온통 뒤집어 놓고 내뺀 놈이었기에 더 괘씸했다. 

갑자기 고양이들이 미워지고 보이기만 하면 뭐라도 집어 던질 것 같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마당에 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린 새의 명복을 빌었다. 잊을 건 잊자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정신을 차렸다. 맑은 하늘과 바람을 보니 눅눅해진 이불이 생각나 말리려고 빨랫줄에 널었다. 예초 작업으로 더러워진 작업복을 세탁기에 넣고 빨래도 돌렸다.

그리고 십여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팔공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일진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내 시커먼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급히 이불과 빨래를 걷고 창밖을 내다보니 빗방울은 더욱 거세게 우박 같은 굵은 비를 내리꽂았고 주위는 암흑처럼 어두워졌다.

억울하게 죽은 어린 새의 원혼이 비가 되어 떨어지며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오후 내내 울적함이 사라지질 않고 머릿속에 '허무'라는 단어만이 맴돌았다. 지난주엔 마을의 젊은 주민 한 분이 예초기 작업을 하시다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던 터라 더욱 황당하고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더니 그 말의 뜻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여름날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종명님이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 10월호 '農밀한 생활'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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