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3 20:19최종 업데이트 22.09.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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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미쓰비시에 대한 대법원의 신속한 강제집행 결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이어 일본 전범기업 국내자산에 대한 강제 현금화 실현이 목전에 와 있다. 기다려달라는 취지의 외교부 의견서를 받은 뒤로 대법원이 침묵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대법원 스스로 뒤엎기는 쉽지 않다. 미쓰비시·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과 일제가 한국인에게 범한 잘못의 대가를 조금이나마 치르게 될 날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날의 도래를 막기 위한 일본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이나 학자, 언론 같은 여론 주도층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미 끝난 다 사안이니 한국 정부가 해결하라'며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일본인들도 있다. '대화로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쌍방이 마주 보고 해법을 찾자는 것이므로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주류 의견에 비하면 개방적인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1945년 이후 77년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피해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현실을 외면하는 주장이다.

일본 현지의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이 제공한 일본 공문서를 근거로 한 1991년 6월 21일 자 <동아일보> 기사 '못 받을까, 받아낼까'는 해방 직후 일본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배상요구 운동은 확산됐다"고 알려준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본에 남아 집단행동을 벌이자, 1946년 2월 일본 내무성은 "격증하는 불법행위는 계속 악질화하고 있고, 사업자 측은 져야 할 책임이 없음에도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인 노동자 단속을 각급 경찰에 지시했다. 이때 일본제철은 "한국인들이 임금을 요구하면 경찰과 협력하라",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각 제철소에 지시했다.

일본 측만 이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된 것이 정부 차원의 청구권인데도 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아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된 듯한 인상을 조성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극우세력도 지금까지 '1965년에 다 끝났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박 정권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71년 1월 19일 제정한 '대일 민간청구권신고에 관한 법률'을 통해 개인청구권 행사를 법적으로 까다롭게 만들었다. 법 시행 10개월 이내에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고 입증 절차도 번거롭게 해놓았다.

거기다가 개인청구권 행사 과정에서 반국가적 의도가 밝혀지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제13조에 규정해놓았다. 그해 5월 21일자 <매일경제> '민간청구권 신고 업무를 개시'는 "어차피 형식과 구호", "흉내만 내고 있다"라는 문장을 통해 '기대감을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재판으로 하지 말고 대화로 하자'는 일본 언론

지난 77년간 일본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까지도 이렇게 했다는 것은 '대화로 해결하자'는 외침을 공허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피해자들의 입을 봉쇄해온 한일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이제 와서 대화에 성실히 응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나마 법원 판결과 강제집행을 통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데도 일본 언론에서는 '재판으로 하지 말고 대화로 하자'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례로, 작년 6월 10일 자 <아사히신문> 사설 '일·한 역사문제, 외교적 해결의 책임을 다해야'는 "사법적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든 쌍방에 응어리가 남아 화해에 이르게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피해 구제와 관계 진전을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양국의 정치적 의사에 입각한 외교적 해결 외에는 길이 없다"고 강조한다. 재판은 응어리만 남기므로 정부 간 대화에 맡기자는 것이다.

한편, 지난 8월 29일 일본매체에 실린 '문제의 본질은 가난'이라는 인터뷰 기사는 대화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듯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소개한다. 

<산케이신문> 계열인 <자크자크>(zakzak)에 실린 이 기사는 지난 6월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 등과 함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러 독일 베를린을 다녀온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에서 김 소장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가난이며 가난 때문에 위안부로 팔려 가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이것은 한국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일 양국 문제가 아니므로 한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는 대화 비슷한 해법을 권유한다. 김 소장의 말을 인용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한일이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공동 이해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한국과 대화하지 말라'는 김 소장의 권고도 소개한다. 한국이 진실을 말할 때만 한국과 대화하라는 것이 김 소장이 일본인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한국에 대해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호소해야 한다"는 그의 어이없는 발언으로 기사는 끝을 맺는다.

의도와 관계없이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을 것
 

12일 자 <도쿄신문> 기사 '일한 역사문제, 재판에 의한 해결은 옳은가?' ⓒ 도쿄신문

 
추석 연휴 기간인 12일에는 일본 언론이 또 다른 한국인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재판 대신 대화로 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일한 역사문제, 재판에 의한 해결은 옳은가?'라는 제목이 붙은 <도쿄신문> 기사다.

이 기사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들은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의 최근 발언을 근거로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했다. 

기사는 "전 징용공 소송 등으로 인해 갈등이 계속되는 일한 양 국민을 향해 '법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사과와 반성과 기억은 가능하다'라고 호소했다"는 말로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요약한 뒤, 소송을 통해서는 일본인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했다.

"가령 소송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더라도 '상대가 납득할 수 없는 배상이 기억의 계승으로 이어질 리 없다'고 (박유하는) 의문을 던졌다."

강제집행을 통해 전범기업 자산을 빼앗는 방법으로는 전범기업의 반성과 납득을 도출할 수 없으므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메시지를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전달한 것이다.

식민지배 문제가 대화로 해결되기 힘들다는 점은 77년이라는 긴 세월이 웅변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 가서 호소하고 한국 정부에도 호소해봤지만,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대화하고자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소수의 피해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 동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 대안은 소송 절차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뿐이다. 대화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이미 다 끝났다'는 주장보다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이 역시 그간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들의 연령이 90을 넘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화로 하자는 주장 역시 그 의도와 관계없이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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