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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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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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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시 재정으로 5·6공 이후 청와대 주변의 땅을 사서 청와대에 넘겨주고 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는 청와대 주변 땅 1만평 시유지를 국유지와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3000평의 시유재산을 더 사서 청와대 경호실 주차장 등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서울시가 나서서 청와대 주변 도로, 주차장을 정리해주고 부속시설을 확장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996년 7월 11일 서울시의회 재무경제위원회, 양경숙 서울시의원(국민회의, 종로구)은 서울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논의했던 안건은 '시유재산관리설계변경계획안', 국가가 점유하고 있는 서울시의 땅 2182평과 국유재산 3190평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골자다. 양 의원은 이것이 '불균형 교환'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교환할 땅으로) 제시한 건 서울시내 9군데에 분산이 되어 있는 데다가 동작구 사당동 같은 경우에는 47평, 송파구 가락동은 53평밖에 안 됩니다. 청와대 주변에 있는 땅보다 가치가 훨씬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양 시의원은 또 "청와대가 (그동안) 종로구 핵심 노른자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데 임대료를 받으려는 노력을 했냐, 의회 동의 없는 무상 대여는 법을 어긴 것"이라며 "(결국은) 서울시가 그 땅을 사서 청와대에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서울시 관계자는 "(청와대의 서울시 땅 사용은) 10년 넘은 것도 있고, 조금씩 자꾸 점유를 해갔다"고 밝힌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해 양 의원은 "계속 청와대의 필요에 의해서, 압력에 의해서 서울시가 굴복하고 그대로 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의보다 한 달 전 열린 재무경제위원회 회의에서 이정의 의원(국민회의, 영등포구) 역시 질타를 쏟아냈다. 정부가 제시한 땅을 "거지 얻어먹듯"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교환할 땅을 제대로된 것으로) 안 주니까 할 수 없이 이거라도 받아써야겠다, 이런 자세는 우리 의회나 민선시장이 힘이 없으니 한마디로 거지 얻어먹듯이 확보하겠다, 그런 자세뿐이 안됩니다." -1996년 6월 10일 서울시의회 재무경제위원회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에도 서울시 땅과 국유재산을 맞바꾸는 안은 원안가결됐다.

500여억 원 들여 '서울시'가 청와대 인근 땅을 산 이유 

당시 서울시의원들의 지적대로 "서울시가 나서서 청와대 부속시설을 확장해준" 상황은 1989년 언론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5월 13일자 <한겨레>는 "서울시가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시 예산 65억여 원을 빼돌려 삼청동, 팔판동 일대 사유지 4300여 평을 연말까지 사들여 청와대 주차장 등의 부대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서울시가 "필요한 경비를 예비비 전용이나 추경예산에 반영시키는 등의 편법으로" 청와대 인근 땅을 사들였고, 이것을 청와대가 점유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시가 사들인 땅인 진명여고 터(3300여 평)는 현재 창성동 청와대 부속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1991년에도 반복됐다.

"6공화국 들어 서울시가 청와대 주변의 거의 모든 땅을 꾸준히 사들였고 앞으로도 매입할 예정인 것으로 밝혀졌다. 토지매입 목적과 정당성 여부, 매입 자금의 출처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가 종로구청을 통해 최근 사들인 땅은 최소 1만여 평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략) 현재 궁정·효자동 일대 평당 가격은 500만 원 안팎이다." -1991년 10월 12일 <한겨레> 기사 중

서울시가 확보한 땅의 규모는 1만여 평으로, 평당 500만 원 선의 시세를 고려했을 때 5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청와대가 점유하고 있는 땅의 쓰임도 일부 드러났다. 위 기사는 "효자동 80일대는 청와대 경호실의 체육관인 연무대가 들어서 있고 궁정동 일대는 현재 청와대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도 그 일대에는 청와대 직원 주차장과 연무관이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와 청와대는 왜 이같은 행태를 반복한 것일까. 양경숙 의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짚었다.

"청와대가 국가 예산으로 청와대 주변의 땅을 사면 여론의 비난을 많이 받을 것이고, 또 국회에서도 많은 질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울시에 청와대 주변 땅을 많이 사서 편의를 제공하게끔 하고 청와대는 그 비난에서 벗어나고, 서울시는 그것에 충실히 부응한 행정을 지금까지 해 왔던 것입니다."

청와대 주변 땅을 제재없이 사들이기 위한 꼼수였던 셈이다. 10년 넘게 반복돼왔던 일이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행(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995년 6월 실시)되면서 서울시의회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이다. 

'편법과 불법, 행정절차 무시와 예산전용' 속에 청와대 인근 땅은 청와대와 그 부속처의 소유가 됐다. 청와대 시설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살던 집을 서울시에 파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입었다

피해는 그대로 주민들에게... "군사정권이 팔으라고 하니 집 팔아"

통인동에서 태어나 청운·효자동에 오래 살았다는 장인용 지호출판사 전 대표는 지난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 자리에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나오는 이발소가 있었는데, 경호실장 차지철(박정희 정권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경호실장을 역임, 정권의 실세)이 강제로 뺏어서 안가를 만들었다"라며 "(나의) 외가 식구들도 차지철한테 당했다. 평창동에 경호원 아파트를 짓겠다고 땅을 징발하는 바람에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고 밝혔다.

장 전 대표는 "전차 종점 뒤 청와대 쪽으로 골목길이 있었고(지금의 경호처 자리 일부) 거기에도 양옥집 7~8채가 있었는데, 이 집들도 물론 차지철에게 몽땅 빼앗겼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는 강제로 땅을 빼앗았다면,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0년대 후반에는 땅을 팔게끔 종용했다는 게 당시 거주민의 증언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효자동에 살았다는 조기태(77)씨는 "아무리 물태우(노태우 전 대통령의 '물렁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별명)라지만 그래도 군사정권이다. 팔으라고 하면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때 집을 팔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 시세의 2/3 가격에 어쩔 수 없이 팔았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양경숙 의원은 지역주민의 불편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경비가 굉장히 삼엄하고 청와대가 너무 많은 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다 이거에요. 그러면 시민들을 위한 복지시설 등을 세우는 방법도 강구돼야 합니다." - 1997년 7월 재무경제위원회

그러나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법'이 강구되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동한 지금, 대통령 경호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핵심 기관들을 이전하고 '청와대 인근 땅을 주민에게 환원해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 인근 땅, 이젠 주민에게 돌려줘야"
 
8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8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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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주민이 모인 청와대인근주민협의체는 "청와대 인근을 주민문화 공간으로 전환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70여 년간 청와대 관련시설물이 주민생활과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주거지역 내까지 확장되고 지역 전반이 청와대의 필요에 따라 관리·운영됐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로 지난 5월 청와대가 국민품으로 돌아갔음에도, 거주 공간 주변은 주민 품으로 환원된다는 소식이 없고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고 짚었다. 

청와대 관련 시설에 묶여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땅들도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의체를 이끌고 있는 조기태씨는 "22특공단이 대통령 근접 경호를 하는 경찰부대인데 그 자리가 조선시대 '북부 준수방'에 속하고, 거기서 세종대왕이 태어났다는 세종실록 기록이 있다"라며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누구나 공감할 텐데 그 위대한 분이 태어난 곳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탄신제를 세종의 무덤에 가서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22경찰경호대 인근 도로에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22경찰경호대 인근 도로에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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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빠져나가면서 청와대 직장 어린이집인 '무궁화어린이집(종로구 궁정동)'도 결원이 생겼지만 주민들에게는 벽이 높다. 인근에 살고 있는 조아무개(36)씨는 무궁화어린이집이 지척인데도 15개월 자녀를 2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조씨는 "(집무실 이전 후) 청와대 직원들이 빠져나가 무궁화어린이집 정원이 222명인데 현원이 126명인 상황"이라며 "시설이 정말 좋다고 하는데 인근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끔 배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화문에 있는 서울정부청사 어린이집은 지난해 입소기준을 완화해 서울지역 거주자 및 직장인 자녀도 입소가 가능하게 돼 있다"라며 "이 같은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씨는 또 "이 지역은 어린이,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 거의 전무하다"며 "어르신을 위한 문화시설, 어린이를 위한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주민 요청 사항 충분히 인지"... 향후 계획 구체화 진행 중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직장어린이집 '무궁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들이 청와대 이전 이후 절반가량 감소했다며 지역 주민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직장어린이집 "무궁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들이 청와대 이전 이후 절반가량 감소했다며 지역 주민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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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대통령실은 "(주민 문화 편익 공간으로의 전환은) 청와대 활용 방안이 결정되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무궁화어린이집과 관련해서는 "인근 주민들의 요청사항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관련 부서에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활용 방안은 현재 기본 기조만 확정된 상태다. 대통령실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은 지난 8월 31일 "청와대 관리·활용 로드맵 수립을 위한 기본 기조를 확정했다"며 "과거-현재-미래의 청와대 역사성과 상징성을 기본으로 한다, 74년의 대한민국 성장 중심으로의 청와대 역할 및 정체성을 존중한다" 등의 기조를 밝혔다.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은 "향후 로드맵 구체화, 국민 의견 수렴, 청와대 권역 연계 관련 관계 기관 협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 청와대 개방 후 청운·효자동 주차대란, 경호처 관리 주차장 '텅텅' http://omn.kr/20j6f

태그:#청와대, #서울시,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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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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