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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한림대 교수였던 조형근은 일 년 남짓 몸담고 있던 대학을 스스로 떠났다. 당시 <한겨레>에 쓴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때 조형근은 한국 대학과 지식생산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볼 요량이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그는 동네를 중심 터전으로 삼아, 놀고, 책 읽고, 글 쓰고,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꾸준히 '어떻게든 했던' 기록이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는 한 권의 책으로 가지런히 묶여 나왔다.

이 책에서 조형근은 날카롭게 진단하고, 분명하게 비판하고, 섬세하게 접근한다. 부끄러운 스스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비판의 대상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시대와 사회를 톺아보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고, 고백이다.

모두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대다. SNS를 통해, 뉴스의 댓글을 통해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여성을, 남성을, 세대를, 비판하고 비난한다. 대부분 그 비판의 대상에 자신은 없다. 나는 대체로 옳고, 내 생각은 합리적이고, 저들은 나쁜 길로 가고 있으니까. 신형철의 말마따나 우리는 대부분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고,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믿는다. 이 굳건한 신념 아래 비판은 쉽고, 온당하다.

그런 세상에서 조형근은 '상황 속에 있는 나의 책임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면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형근은 스스로를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고 자조하면서 언제나 면제되지 않는 책임을 직면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는 사회와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이 거울을 희망이라고 부른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지난 27일 조형근 한림대 전 교수를 만났다.
 
조형근 교수
 조형근 교수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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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그만둔 지 3년 가까이 지났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자유를 얻었고, 많이 읽고, 많이 썼다. 예전에는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속박당하면서도 보호받았다. 결정적으로 25일이 될 때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있었고.(웃음) 지금의 자유는 그야말로 시장 속에서의 자유다. 내가 얼마나 많은 글을 쓰는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에 따라 벌이가 다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아주 많이 쓰면 최저임금 정도를 벌 수 있다.

한편으로 지난 몇 달 동안 학교에 있을 때만큼 바빴다. 휴일 없이 책도 마무리하고, 그 와중에 논문도 쓰고, 강연도 하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 농담으로 내가 이러려고 학교를 그만뒀나 한탄하기도 했는데, 일의 배분을 잘해야겠다는 반성은 했지만 괴로운 건 아니었다. 사람이 그렇지 않나. 의미 없는 일을 할 때,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을 해야만 할 때 괴롭다. 나 같은 경우 바쁘고 힘들더라도 그 바쁨은 오롯한 나의 선택이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이게 대학에 있을 때와 차이이고, 그런 점에서 후회는 없다."

- 대학을 그만둔 이후의 행보가 좀 신선했달까? 동네에 들어가 동네 서점을 주요 터전으로 삼고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까?

"갑자기 동네로 들어간 건 아니고, 대학과 병행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동네를 중심으로 연구도 하고, 모임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있다. 나도 그전에는 동네에 별 관심 없이 썰렁하게 사는 보통 사람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어떤 분들이 동네 공원에 분향소를 만들었더라. 정말 그냥 보통 주민분들이셨는데, 자발적으로 그런 활동을 하셨던 거다. 동네에 분향소가 생기면서 찾아가게 되고, 돌아가면서 분향소를 지키기도 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다가 방명록을 만들어서 전화번호도 교환하게 됐다.

그전에도 서로 알던 분들 사이에 이런저런 모임과 공동체적인 활동들이 있었지만, 세월호를 지나면서 분산되었던 사람들이 연결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파주시민모임이 만들어지고 여러 일을 하게 되고 그걸 계기로 동네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까워지게 됐다. 딱히 의식적으로 공동체 운동이라는 걸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모여서 논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 문학 모임, 자전거 타는 모임, 합창단, 탁구 모임, 수다 모임이 생기게 됐고, 그런 와중에 동네 협동조합 서점이 제 터전이 된 거다. 지금은 동네를 기반으로 서점 일을 하면서 동네 얘기에 주력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정치적이거나, 국제연대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도 하려는 욕심이 있다."

- 최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를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저자가 직접 소개해 주신다면?

"대학 사회, 지식인, 86세대, 민주주의와 불평등 같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룬 사회비평서인 동시에 나 자신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비판한 사회 속에 내가 있다. 30년 이상 대학 제도 안에 있었고, 학위 받고도 10년 이상 녹을 먹으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싸웠다면 모르겠는데 적절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사회비평에 충실하면서도 저자인 나 자신을 드러냈다. 돌아보면 어떤 불평등과 어떤 두려움 앞에서 때로 도망쳤고, 때로 부끄럽게 살았다. 그렇게 도망갔던 젊은이가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다가, 자기 딴의 방식으로 돌아온 길이다. 그 길을 책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모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표지 이미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표지 이미지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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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는 대학을 가리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중의 삶과 유리되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과 서열 구조로 민중의 고통의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한때 대학은 진리 탐구의 전당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지만 지금의 대학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우선 거시적인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원래 대학이라고 하는 곳은 엘리트 기관이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에 간 사람은 고교 졸업자의 30%대였다. 그러니 대학을 중심으로 청년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을 수 있었고, 실제로 이 사람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 정도였다. 분명 이들을 향한 사회의 기대가 있었고, 냉정하게 말하면 데모하고 감옥 갔다 와도 어차피 엘리트였다.

90년대를 지나 21세기에 들어서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이 고등교육인 건 맞지만 동시에 대중교육 기관이 되었고, 여기서 과거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 변화를 배제하고 대학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대학이 대중교육이 되었고 그 안에서 차별화가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대학의 서열 놀이 같은 것이 있다. 물론 70~80년대에 서열이 없었던 건 아니고, 학벌 차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학 자체가 적었고, 사회적인 금기 같은 것이 분명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서열화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지 않은 서열에 분노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정세적 차원에서 보자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의 흐름 안에서 대학이 주요한 타깃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학교는 늘어나고 학생은 많아지고 등록금 자율화가 겹치면서 대학 간 경쟁이 격화되었고,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이때 비판적 교수나 비판적 지식인들도 이 방향의 끝에 시장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나도 분명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게 결국 자승자박이 된 측면이 있다."

- 대학과 함께 지식인, 86세대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생각해 보면 진보 86세대 남성은 한국 사회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민주와 운동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다가 지금은 마치 기득권을 대표하는 세대가 되었다. 정치권에선 적폐로 취급받고, 청년들은 86세대들을 향해 성공의 과실을 있는 대로 누린 뒤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를 86세대에게만 떠넘긴다는 건 좀 부당한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책에서는 86세대로서 자기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우선 변명부터 하고 싶다. 세대 효과와는 별개로 연령 효과에서 지금 86세대가 커리어의 정점에 서게 되는 연령대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86세대가 기득권이 된 측면도 있지만 기득권이 될 나이에 86세대가 있다고 볼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86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자체가 사실은 아주 소수라는 거다. 1980년대 동안 학령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자는 12%다. 그중에서 소위 '메이저 대학'을 나오고, 학생운동을 하고, 기득권을 이루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한 줌이다. 그런 점에서 세대가 아니라 집단이라고 해야 정확한 용어가 아닌가 싶다. 나를 포함한 86세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86세대가 문제고, 86세대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면 쉽고, 편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비판은 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86세대의 책임이란 어떤 책임인가?

"관용적으로 쓰이는 의미로의 86세대들을 향한 비판의 핵심 키워드는 젊어서 한 말과 이후 행동의 간극이 너무 컸다는 데 있다. 86세대는 기성 체제 속으로 개량화되고 기득권화된 이전 세대를 격렬히 비판하면서 성장한 세대였다. 혁명을 하고 스스로 민중이 되겠다던 사람들이었다. 정치권에 들어간 86세대로만 좁혀서 얘기하자면 근본적인 정치적 개혁을 이뤄내고 민중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거다. 이후에 정권도 세 차례 잡았지만 그 이후에 뭘 했는지 물어보면 궁색하다. 다른 세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딱히 뭐가 그렇게 개혁적이었나? 민주당 안에서만 봐도 86세대들이 두드러져 보인 기억도 없고, 확고하게 밀고 나가는 개혁 리더 그룹도 부재하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기성 체제 속으로 들어간 다음 어느 세대 보다 빨리 적응했다.

86세대가 기성사회에 진입하던 시기에 IMF 위기가 닥쳤다. 재벌과 정치의 유착, 특권과 반칙 같은 것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면서 위기의 근본 원인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시장이 없었기 때문'으로 간주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시장'이 개혁의 목표가 됐다. 오늘날 능력주의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런 담론과 정책들 속에서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여러 연설문들에서 실력 있는 사람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제대로 된 시장은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시장은 공정하다는 신념이 넘쳐흘렀다. 결국 오늘날의 능력 제일주의, 공정 담론을 지배하는 세상의 일차적 전환은 86세대와 민주 정부가 시행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좋은 시장조차 불평등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나쁜 제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쟁을 강화하되 탈락한 사람들은 복지로 돕는다는 발상은 20세기 말, 신자유주의화를 심화시킨 서구의 중도좌파, 중도진보 정당들의 공통적인 노선이었다. 탈락한 사람들의 존엄을 해치는 노선이었다. 불평등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나를 비롯한 86세대의 책임이 있다."

- 86세대를 향한 우리 사회의 비판의 원인을 따져보면 조국 전 장관이 86세대의 대표처럼 인식되면서 불거진 문제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국 전 장관 사태가 크게 불거진 건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전에 문제는 충분히 드러나 있었고, 그동안 쌓여있던 게 폭발하게 된 계기 정도라고 본다."

- '참보수',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 '합리적 보수' 같은 말들이 있다.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며 독자 행보를 보였을 때 혹시 저 말들이 현실이 될까,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말은 초라했다.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원대에 복귀했다.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에 합리적 보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솔직히 말해서 한국 사회에 합리적인 보수가 있나 싶다. 나는 진심으로 보수가 잘해줬으면 좋겠다. 보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브레이크를 걸어줄 때 진보의 성찰점이 된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자꾸 보수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연설문을 보면 자유라는 용어를 서른몇 번 쓰셨다. 이것이 이른바 자유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우리 사회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고, 과속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고, 우리가 빌려 쓰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잘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보수가 없다. 언사만 자꾸 과격해지는 것 같다."

- 이 책을 통해 지식인과 대학에 관한 문제부터, 세월호, 정치와 이데올로기, 빈민 문제, 민주주의, 노동자 문제, 공정, 능력주의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별도의 주제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다룬 모든 주제에 공통으로 포함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불평등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의 중심 의제가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공정하게 경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되어버렸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진 사람들을 모욕하는 정서가 싹튼다. 경쟁에 진 사람들도 공화국의 시민들인데 이들을 복지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신분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가장 중대한 변화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들이 정교사가 되는 걸 반대하는 현상 같은 것을 보면 좀 생각이 많아진다. 물론 전교조에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그분들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이엔가 우리 사회 논의의 틀, 사고의 틀이 바뀌었다. 이준석류, 조국 반대류의 공정성 담론이 전부가 아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정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에서 촛불로 이어지면서 역사적인 어떤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선생님 표현대로라면 이후 민주당은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찾아가는 것처럼 정권을 획득' 했고, '윤석열 정부 첫 내각의 각료들이 살아온 삶이 내로남불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 사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고, 여전히 각자도생의 논리대로 돌아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한 뒤에 말하는 게 좀 그렇지만, 여전히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시민사회, 혹은 민간사회를 보면 군사독재 시절에도 그랬지만 국가 권력이든, 폭력적인 질서든 자본주의적 논리든, 쉽게 숙이지 않는 강고한 모습들이 있다. 한국 사람이 특별히 위대해서라기보다 역사적인 조건과 특수성도 있었지만 어떤 역동성 같은 것이 늘 존재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런 일상의 역동성을 다뤘다. 일상의 재료로 이것저것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걸 가리키는 브리콜레(bricoler)나 실행지로 번역되곤 하는 메티스(metis), 버내큘러(vernacular) 같은 개념들이 생활에서 저항의 힘을 만들어내는 보통사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보통사람, 민중은 혁명의 주체나 순응하는 개돼지라는 이분법으로 재단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이 그렇게 일어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역사적으로도 그랬지만 지식인이나 관료들이 민중이 끝났네, 민중이 개돼지네 할 때, 민중들은 일어나서 행동을 보여줬다.

여당과 야당의 지지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문제, 정권의 획득 여부도 분명 중요하지만, 장기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잠재된 에너지가 있다. 가끔 그 에너지가 너무 뜨거워서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판받을 점도 적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고, 냉소해버리고, 물러서 버리면 진짜 희망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이 사회가 변화의 맹아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쩜오책방. 책방의 상근 직원인 일본인 챠미짱이 “챠미짱의 반짝반짝 책읽기” 녹화 당시 ‘컷’을 해주고 있다.
 쩜오책방. 책방의 상근 직원인 일본인 챠미짱이 “챠미짱의 반짝반짝 책읽기” 녹화 당시 ‘컷’을 해주고 있다.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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