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3 17:26최종 업데이트 22.08.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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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21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광주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분이 우리 사회에 일정 포션으로 있는데, '서민과 중산층?', '부자는 적인가?' 이런 게 있는데, 제가 아는 바로는 고학력·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이 우리 지지자가 더 많습니다. 저학력·저소득층이 국민의힘 지지가 많아요.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때문에 그렇죠. 언론 환경 때문이에요. 전 부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요새 '민주주의를 넘어 공화주의로 가야 한다' 이런 얘기도 많아요. '함께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세금 많이 내는 부자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난 7월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튜브 라이브에서 한 이 말은 많은 논란을 불렀다. '편 가르기', '선민의식', '이분법적 인식'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에서 대체로 저학력·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고학력·고소득층이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해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재명 의원의 발언에 담긴 이 이른바 '계급배반' 투표 현상에 대한 지적이 아니었다. 이 현상에 대한 그의 진단과 해법, 그리고 이 중차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민주당의 미지근한 반응이 놀라웠다. 

이재명 "부자 존중하는 사회 돼야"
     
그의 지적처럼 분명 보수 쪽으로 경사된 우리 언론지형도 이 현상의 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그간 정치학계에서 꾸준히 지적해왔던 계급배반 투표의 중요한 원인 두 가지를 도외시하고 있다. 

하나는 저소득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고연령층이 사회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를 중시해 지지정당을 결정하며 이는 보수정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저소득층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계급투표 성향이 강화되어 왔다. 이는 민주당이 이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만들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원인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란 표방과 달리 민주당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서 이들에게 자신들의 정당이란 일체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청·중년 저소득층의 상당수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불참하거나 혹은 무당파가 되는 데에는 이런 원인이 크게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 의원의 진단과 달리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계급배반 투표 현상에 대한 이 의원의 진단이 아니라 그 해법이었다. 언론이 문제라고 진단했으니 논리적으로는 언론개혁을 얘기할 법도 했다. 그런데 이 의원이 제시한 해법은 놀랍게도 부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니, 부자들로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케티에 따르면 고학력자이면서 고자산가인 사람들(상인 우파)은 여전히 대표적 우파정당에 투표하지만 고학력자들(브라만 좌파)은 대표적 좌파정당에 투표한다. 그 결과 주요 정당들은 모두 엘리트들만을 대표하게 되었다. ⓒ 셔터스톡


이 의원의 이런 대답에서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소득층의 좌파 정당 이탈과 극우화에 대한 토마 피케티의 분석이 떠올랐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 심화가 왜 계급정치의 강화가 아닌 외국인 혐오 포퓰리즘과 정체성의 정치(젠더, 종교, 장애, 민족, 성적지향, 문화 등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 또는 사상), 그리고 계급정당 체계의 동요로 귀결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세 나라를 사례로 대표적인 좌파정당의 지지자 변화를 그 이유로 지목했다. 이 좌파정당들은 60년대까지는 저학력자=저소득자가 투표하는 정당이었으나 점차 고학력자=중간 이상 소득자가 투표하는 정당으로 변해왔으며, 이에 따라 이들 정당의 정책 역시 지지자들의 이익과 정서에 맞게 변해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고학력자이면서 고자산가인 사람들(상인 우파)은 여전히 대표적 우파정당에 투표하지만 고학력자들(브라만 좌파)은 대표적 좌파정당에 투표한다. 그 결과 주요 정당들은 모두 엘리트들만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것이 좌파정당이 심화되는 불평등에 대한 민주적 대응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이유이자, 극우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원인이다.

브라만 좌파화가 대안인가?

따라서 피케티에 의하면 좌파정당들의 지지기반 변화(그리고 두 지지기반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점차 브라만 좌파의 정당이 되어간 것)는 이 정당들의 위기의 해법이 아니라 원인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위기의 해법은 강력한 재분배 정책이다. 좌파정당이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민주적 통제를 달성할 때 저소득층의 분노가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가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때보다도 양극화되었던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강남좌파'와 '수도권 지지층'의 지지상실 때문에 민주당은 '대중정당화', 즉 포괄정당적 성격의 강화를 모색하게 됐을까? 그러나 이미 민주당은 충분히 포괄정당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를 배제하지 않는, 부자도 대변하는 정당으로 향한 한 걸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브라만 좌파화가 민주당의 대안인가? 한 정당이 부자와 사회경제적 약자를 모두 대변하는 것이 가능한가? 민주당은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인가?

연달아 큰 선거에서 패배하고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지금 민주당에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을까 싶은데 막상 당 내부에서는 당헌 80조 개정이 훨씬 더 중요한 현안인 것 같다. 민주당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김영순 ⓒ 김영순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영순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관심영역은 한국과 유럽의 복지국가와 복지정치, 젠더와 복지국가, 복지태도 등입니다. 한국사회정책학회장을 역임했고, 주요 저서로는 <복지국가의 위기와 재편>, <코끼리 쉽게 옮기기>,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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