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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학교 급식 조리사다. 세금을 제하고 200만 원 조금 넘게 받고 있다. 9명의 조리사가 있는데, 전체 식수는 800명이 넘는다. 근무시간 9시간 동안 한 번도 앉지 못하고 일을 한다. 메뉴가 어려울 때는 단 1분의 여유도 없다. 3식을 하는데 아침 끝나면 바로 점심, 점심 끝나면 바로 저녁을 준비한다. 아프더라도 쉴 수가 없다. 학교에서 사람을 안 구해 준다. 쓰지도 못한 연차비는 안 주다가 작년부터 5개 한도로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연차비를 안 준다면서 무조건 쉬라고만 한다. 조리된 음식통을 배식대에 옮겨야 하고, 배식 도우미 일도 한다. 배식도 직접 한다. 80kg 잔반통을 나르고 버린다. 2개 층에서 배식을 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사람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단 말을 하곤 한다."

"3년 차 병원 급식 조리사다. 환자 아침 식사 때문에 새벽 4시에 출근한다. 교통수단이 자전거나 택시밖에 없는데, 교통비 지원이 없다. 밥 무게를 저울에 달아야 해서 일이 까다롭고 어렵다. 당뇨, 투석환자 등 환자별 특이사항을 반영해서 음식을 조리한다. 설거지 양과 세척실 스팀 분출량도 엄청나다. 한여름에도 스팀을 모두 견뎌야 하며, 에어컨도 설치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환자 급식은 필수 업무인데 위험성을 감안하면 조리사 급여가 올랐으면 좋겠다."

"12년 차 국토부 급식 조리사다. 출장소에서 조리, 청소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출장소가 도로 한복판에 있어서 무조건 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주유비 지원이 없다. 직원식사를 준비하고, 출근하자마자 청소한다. 복도 청소도 포함이다. 영양사가 없어서 식단도 짜고, 식재료 배달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마트나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1주일에 두세 번 장을 직접 본다. 청소, 조리, 식재료 구입 등을 모두 혼자서 한다. 따로 업무분장은 없다. 직원 회식한다고 하면 회식 준비를 해주기도 한다."


급식 노동자들의 임금차별

'공공기관 조리직종 임금실태 조사'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급식 노동자들의 낮은 보수는 공공영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임금 공정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업무 분장에도 없는 다양한 무급 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 연차미사용으로 인한 수당 미지급, 무보수 연장근로 발생 등 법률 위반 사례도 빈번하다.

근무 여건에 따라 급식 노동자들의 보수에 대한 애로사항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업무량이나 업무강도에 대한 고려 없이 임금이 결정된다는 점, 경력에 따른 임금인상이나 근속 수당이 없다는 점, 업무분장표도 없이 일한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지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 임금수준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기본급 표가 이미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조리 직종은 과거에는 기능직 등으로 편제되어 영양사들과 함께 정규직으로 근무했다. 조리 노동자들이 외주화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정책 때문이었다. 2017년부터 다시 정규직이 되었지만, 정부는 공무직이라는 직종을 신설하여 채용하였고 경력 인정 없이 호봉제 적용에서 배제되었다. 10년의 세월을 잃어버리고 그저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것이다.

그동안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조리 경력은 사라지고 보수는 다시 최저임금이다. 고용보장과 복리후생이 공무직이 얻는 메리트로 언급되는데, '조리 직종'의 특성상 이미 5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신규로 들어오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의 의미가 퇴색된다. 유학 학비 지원 등 공공기관의 복리후생제도를 신청하는 조리사들은 없다.

급식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지만, 단협에 의한 임금 인상률 역시 적용받지 못한다.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아서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식대가 통상임금에 반영되어 실제 기본급이 인상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이에 노동조합에서는 임금수준을 올리고, 호봉제로 임금체계를 바꾸며, 직급이나 승진체계를 만들어 숙련 노동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미하게나마 숙련급이라 하여 근속 수당을 만들었는데, 사실상 2년에 2만 원 인상에 최대 6만 원 수준이다. 이렇게 반복되어 익숙해진 차별은 모욕이나 조롱에 가깝다.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Berkman et al. (2014), 한국의 차별경험과 건강 연구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사회연구」(2015)에서 재인용.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Berkman et al. (2014), 한국의 차별경험과 건강 연구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사회연구」(2015)에서 재인용.
ⓒ 보건사회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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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

레슬리 도열은 많은 여성이 식당, 청소, 공장, 병원에서 미숙련 노동이나 단조로운 일을 한다고 간주되며, 주변화된 일자리에 몰려있다고 분석한다. 급식 노동에 대한 임금차별도 유순하고 순종적인 고령의 여성이 일하는, 쉽게 자를 수 있고 가치 없는 노동이라는 인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음식 조리나 청소는 전문성이 없어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인식, 급식 노동자는 화장실 청소도 좀 할 수 있다는 인식,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강도의 노동을 감내해도 최저임금을 받아도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찮은 노동 취급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약하게 만들고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차별이 정신 건강 악화를 가져오는 것은 잘못된 대우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차별의 경험이 스트레스, 인지 기능 저하, 불안, 우울, 약물 사용에 영향을 끼쳐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들도 많다. 한 달에 두어 번 이상 정기적 차별을 겪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 질환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약 25% 더 높으며,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을 가능성은 2배 더 높다.

차별을 자주 경험하는 것은 각성제나 신경안정제 등 약물의 사용과도 관련이 있다. 구조적 차별과 같은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신체는 만성적으로 긴장/고양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반복, 지속되면 비만, 심장병, 고혈압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도 발생할 수 있다.

급식 노동자들의 직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공기오염, 미끄러짐, 중량물 취급 등 물리적 환경이 자주 이야기된다. 이에 더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감 결여,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보상, 경력개발에 대한 기회 부재 등 차별적 환경 역시 얘기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상과 차별 없는 대우는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송윤정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자건강권팀에 함께 하고 있는 공인노무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_노동자, #급식_노동자, #차별, #건강_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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