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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생겨난 지 벌써 3년째가 되어 간다. 해마다 여름이면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최근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면 해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 제주살기를 해왔다는 것.

매년 동서남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제주에 가면 꼭 가야할 버킷리스트를 하나둘씩 지워나갔다.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뿐 아니라 주상절리, 성산일출봉, 산방산 등 빼어난 경치 덕분에 눈을 즐겁게 하던 곳은 어느정도 알겠는데, 올해는 새로운 것을 탐방하고 싶었다.

서귀포에 가면 습관처럼 들렀던 전통시장이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올레시장'. 그런데 내가 찾던 곳은 시장에서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나. 지금까지 이곳을 스쳐지나간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서귀포의 대표적인 문화명소로 꼽히는 이곳은 서귀포 관광지도의 맨 윗칸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곳을 담은 것은 제주살기 3년차에 비로소 처음이었다.
 
이중섭거리의 400미터에 이르는 바닥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으로 보도블럭을 깔았다.
 이중섭거리의 400미터에 이르는 바닥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으로 보도블럭을 깔았다.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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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장 핫한 전통시장과 맞닿을 정도로 이곳은 연중상시 인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입구에서 언덕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의 미술관에 다다른다. 거리로 치면 약 400미터에 이르는 곳이다. 이곳은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화백이 실제로 거주했던 거처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중섭거리'(서귀포시 이중섭로 4-1)를 말한다.

대한민국 미술사를 놓고봐도 가장 유명한 화가로 손꼽히는 이중섭(1916~1956)의 이름을 붙인 거리이다. 불혹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단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11개월간 잠시 거주했던 초가집을 중심으로 1997년 9월에 복원됐다.

이후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그의 삽화가 들어간 다양한 기념품과 수공예품이 거리의 양쪽을 가득 메웠다. 이제는 서귀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부상한 만큼 수제버거와 커피숍 등 인스타그램 성지들도 즐비하게 늘어섰다. 또한 서귀포에 머물며 세기에 남을 명작을 남긴 이중섭 화백이 살았던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작가의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다.

이중섭이 실제로 거주했던 곳을 중심으로 제주시에서 선제적으로 거리를 조성했다. '이중섭거리'가 시작되는 초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가 살았던 초가집 한 채가 눈에 띈다. 인터넷의 여기저기에는 그가 살았던 '생가'로 오기되는 곳도 몇 군데 있지만, 여기는 이중섭과 그의 일본인 아내, 그리고 두 아들까지 네 식구가 6.25 피난길에 잠시 거주했던 곳이란다.
 
6.25 피난길에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11개월 동안 잠시 거주했던 1.3평 남짓한 방이 그의 거주지의 전부이다.
 6.25 피난길에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11개월 동안 잠시 거주했던 1.3평 남짓한 방이 그의 거주지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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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이는 초가집 전체가 아니라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작은 단칸 셋방살이가 그와 관련된 전부다. 1평을 갓 넘긴 이 손바닥만한 곳에는 그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과연 이곳에서 어떻게 네 식구가 거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낸 채 이곳에서 평생을 나고자란 한 어르신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손녀딸을 데리고 잠을 자다가 피난민들이 밀려들었어요. 이 분이 동네 반장을 했기 때문에 우연히 인연이 된 거 같아요. 그러면 여기라도 내줄테니까 와서 살아라 한 것이죠. 할머니는 여기에 합쳤어요. 예전에는 이불만 들어가면 같이 살았잖아요?(하하) 이 좁은 곳에서 네 식구가 살았어요. 여기에선 단 11개월만 살고 다시 부산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산에 가서 이중섭 화백은 부둣가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부인은 조금 아파서 일본 수용소에 가 있다가 그해 7월에 삼모자가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때문에 따로 살게 됐는데, 실제로 이중섭 선생이 여기 산 것은 잠깐(11개월)이 전부입니다. 지금도 부인은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이중섭이 잠시 거주했던 초가집을 나와 언덕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그와 관련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이중섭 미술관'(이중섭로 27-3)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서귀포에서 체류하던 시절의 아름다운 풍광, 현지인을 모티브로 그린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면서 유독 그와 연관된 이미지로 쉽게 떠올리는 '소'에 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놓고 혼자 한국에 남아 생활을 하면서 '소'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는 후문이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의 곳곳에는 그의 작품과 관련된 '소' 이미지로 만든 조형물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심지어 이중섭거리의 바닥에서도 관련된 이미지가 보도블럭을 장식했다.
 
이중섭거리의 중간쯤 오른편에는 서귀포시 최초의 극장인 '서귀포 관광극장'이 오래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중섭거리의 중간쯤 오른편에는 서귀포시 최초의 극장인 "서귀포 관광극장"이 오래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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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거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꼽히는 곳이 여럿 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멈춘 듯한 광경을 자랑하는 '서귀포관광극장'(이중섭로 25)에 들어가볼 것을 추천한다. 서귀포시 최초의 극장이란다. 이중섭거리의 중간쯤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극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잠시 정체되어서 그렇지 그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영화 상영회나 공연, 전시와 같은 프로그램이 상시로 열렸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은 극장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보낸 해설사의 설명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서귀포 관광극장도 1963년에 지어진 곳이에요. 이곳이 문을 열 때,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이 와서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드리헵번과 닥터지바고 등과 같은 영화들도 많이 상영했어요. 중학교 때 몰래들어가서 선생님에게 걸려서 혼났던 기억이 나네요.(하하) 나중에는 티브이가 생기면서 이곳의 인기도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원래는 천장이 있었는데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모두 불탔습니다. 이제는 천장 없이 이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이중섭 거리가 조성된 것은 제주시에서 1997년에 복원한 것에서 시작됐지만 '이중섭거리'라는 이름을 타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의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의 일환으로 추진된 <마을미술 프로젝트> 덕분이다.

2009년에 시작한 이 사업에서 서귀포시가 이 프로젝트가 당선된 것은 201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지역의 예술가들이 동네 곳곳에 예술작품들을 설치해 지역 주민들이 언제 어디에서도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국 단위에서 펼쳐진 이 사업은 2012년 당시에 총 11곳이 선정됐는데, 그중에서 제주도 서귀포시는 당시의 공모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원하는 공모1의 행복프로젝트에 선정된 것이다.

대규모 미술마을을 조성하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서귀포시를 대표하는 마을미술의 거점으로 자리잡은 이중섭거리의 오래된 추억을 해설사는 이렇게 들려줬다.

"이중섭 거리는 예전에 상당히 높은 동산이었습니다. 주로 서민들만 살던 곳이었어요. 대로변 큰 길 아래에는 일본 사람들이 살다간 적산집들이 있고, 소똥산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비유가 과할진 몰라도 그곳은 서귀포의 명동이라 불렀습니다. 반면에 여기(이중섭거리)는 서민 중에 서민들만 살던 곳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이쪽으로 안다닐 정도였거든요. 너무 높아서 그렇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금 이중섭미술관 앞에 신사참배동산이라고 일본사람들이 참배하던 곳이 있었어요.

우리는 학교 갔다 오다가 '야 우리가 신사동산가서 놀자' 하고 얘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밑에서 쭈욱 올라오는 계단이 있는데, 그것에 올라가보면 서귀포 앞바다까지 보입니다. 길도 많이 깎았어요. 1997년에 이중섭로를 만들면서 깎고 또 깎아서 이제는 이렇게 예쁜 길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초가집도 있었고, 여기는 장사하는 곳도 없었고, 서민들만 살던 곳이었는데요. 울퉁불퉁했던 곳인데 많이 깎아서 이렇게 변했네요."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공모를 진행하여 대전 중구, 대전 대덕구, 경남 하동 등지에서 진행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황진수 시각예술부장은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있는 동네에서 창의적인 예술가의 도움으로 지역 주민 스스로가 예술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마중물 사업이다. 여기 중심에는 여전히 역사를 통해 문화를 일구었던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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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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